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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 청메이 Apr 25. 2019

리스본의 마지막 날

내 최애 도시가 되어 버린 리스본, 안녕

어느새 리스본에 온 지 9일 째.

진짜 잘 골라왔다는 생각이 무척 많이 드는 도시이다.


따뜻한 햇살, 선선한 바람.

고기와 해산물을 둘 다 즐길 수 있는 풍부한 먹거리. 포르투갈은 유럽 내 과일을 가장 많이 먹는 나라이기도 하단다.


볼 거리가 너무나 많은 곳이고 물가가 정말 착하다.

무엇보다 친절한 사람들은 마음의 안정감을 준다.

치안도 좋은 편이여서 유럽을 혼자서 이렇게 밤늦게 다녀본 도시는 처음이기도 하다. (난 의외로 안전 제일주의자다.)


아직 마케팅이 너무 안 된 나라인데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나라라 구경할 게 많아서 의외로 너무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원래 관광객이 정말 없던 나라인데 2년 전부터 정부가 노력하고 있어서 여행객이 다소 많아졌다고 한다.

이제 점점 더 많아지겠지. 우리나라에서 오는 직항편이 생기면 한국사람들이 더 많이 오겠지.


지금은 꽤 많은 봄비가 내리고 있다. 4월에는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작년 4월엔 이틀빼고 매일 비가 왔다고..

(참고로 포르투갈 여행 최적기는 6월이라고 한다. 정어리 축제가 열려 도시 전체에서 정어리를 굽고, 납작복숭아를 포함한 과일이 가장 맛있는 시기이기도 하며, 이미 따뜻해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도 많은 시기라고.)

다행히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몇 분의 소나기가 스쳐지나간 다음 날씨는 더욱 화창해서 좋았다.

지금은 봄비가 처량하게 내리고 있다. 파두(Fado) 가수 아말리아 로드리게즈의 음악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 날씨인지 모른다.


오늘은 저녁 내 비가 온다고 하여 굴벤키안 미술관을 마지막 일정으로 오늘은 숙소로 일찌감치 돌아왔다.

보통 마지막 날은 정말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혼자 만찬을 즐기곤 하는데 여행의 마지막 날도 아니고 포르투갈도 마지막이 아니라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번 사놓은 남은 등심과 오면서 사온 삼겹살(2줄에 1.4유로밖에 하지 않는다),

그리고 뽈보(문어) 통조림, 그린 와인으로 일찌감치 마지막 만찬을 했다.

버섯과 가지 등 채소들을 다 합해봤자 15유로도 안 된다. 알콜중독돼지가 되기 십상인 나라다.



리스본은 안 좋은게 없었다.

보통 리스본하면 예쁜 해변과 골목과 해안을 달리는 트램으로 설명하고는 하는데 그걸로는 너무 부족하다.

내가 가장 좋았던 점, 그리고 나의 favorite places를 소개하겠다.


1. 친절함

그래도 보통 동양 여자들은 유럽 여행하기가 편하다. 기본적으로 여자한테는 매너가 있는 애들이고, 동양 여자에 대한 환상(?)도 가지고 있는 애들이 많아서 여행에 상대적으로 동양 남자들보다 유리하다.(동양 남자들의 순위는 백인 -> 흑인 -> 개 다음이라고 한다. I'm so sorry about it.)  근데 그런 친절함은 사실 동양인에 대한 무시로부터 온다. 동양인, 특히 한국인은 서양인이라면 다 좋아한다라는 전제로 행하는 친절이 많다. 친절을 당하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쁜 일들을 종종 겪는다. (그냥 기분일 수 있지만 굳이 숙소가 어디인지, 혼자왔는지 묻고 그 다음에 위험하니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것은 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애들 중에 댄디하고 잘생긴 애들은 없다.)

그런데 포르투갈인들은 다르다. 그냥 기본적으로 애들이 착하고 친절하다.

그냥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는 사람들. 설레게 자꾸 윙크하는 사람들(이거 그냥 인사이니 착각하지 말자). 긴장된 마음을 풀게 해주는 미소들이다.


우연히 들어간 핑크 스트리트의 어느 바,

 "여행 중이야?"

 "응"

 "얼마나 있는데?"

 "저 언니(동행으로 만난 한국 언니)는 내일 가는데 나는 총 10일 리스본에 있을거야"

 "그래? 그럼 너는 또 올거지?"

 "응, 반드시"

내가 리스본에서 우연히 콘트라베이스와 색스폰 연주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책과 음악과 와인이 있는 완벽한 장소다. 지금도 다시 갈까 망설이는 장소다.

@Pink Street <Menina e moca>


예약하지 않으면 기본 1시간 반은 기다려야 한다는 해산물 레스토랑 Ramiro

신트라 투어 동행했던 분에게 예약메일을 알게 되어 운 좋게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엄청 비싼 블랙타이거와 거북손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 (메뉴판에 1kg가격이 적혀있어 다소 비싸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인당 200g으로 나오는 점 참고하시길. 미리 알았더라면 둘다 시켰을거다)

내가 거북손을 처음 먹어봐서 일단 냅다 입에 다 넣었더니 점원이 깜짝놀라 나에게 왔다

 "그거 그렇게 통째로 먹는 거 아냐"

 "응 나도 먹어보고 알았어ㅠㅠ"

 "이렇게 하는거야"라며 직접 까서 나에게 먹여줬다. ㅎㅎ

 "고마워. 나 이거 처음 먹어봐서 어떻게 먹는 지 몰랐어"

 "응. 너 먹는거 보고 깜짝 놀라서 왔지"

다 먹고 나가는데 내일 또 오라고 말하는 점원

 "그러고 싶은데 여기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맞아. 근데 그냥 나한테 와. "

 "진짜? 진심이야?"

 "응, 그럼~"

다음 날 직접 찾아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가지는 않았다ㅋㅋ

하지만 일부러 한국사람들이 오면 와사비를 많이 넣어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긴다는 오사카의 시장스시, 저 멍청한 동양인을 보라며 비웃거나 굳이 아는 척 하지 않는 많은 유럽인들과 대비하여 그 많은 손님들 사이에서 날 굳이 챙겨주는 이 포르투갈 사람들을 내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조개스튜와 내 인생 첫 거북손, 그리고 그린 와인 @Ramiro


이 외에도 모든 사람이 친절했다. 서비스직이니까 그런거 아니냐고? 자, 유럽의 어떤 서비스직 애들이 그렇게 친절하더랍니까? 늘 '아, 얘네는 한국가서 서비스직 교육 좀 받고 와야 돼.' 였는데? 난 암스테르담 이외에는 이렇게 친절한 서비스직의 유럽친구들을 본 적이 없다.(그런데 암스는 훈련된 서비스직의 친절함이었다. 물론 그것도 좋았지만.) 파두 공연장엔 나이가 꽤나 지긋하신 분들이 서빙을 하는데 진짜 마치 손녀딸 대하 듯 날 대해준다. 외할아버지 생각나서 눈물날 뻔 했다.



SAUDADE. 우리나라의 '한(恨)'을 설명하기 어렵듯이 포르투갈에도 '사우다데'라는 정서가 있다. 그래서 포르투갈인들에게 우리가 정을 많이 느낀다고 하던데 그냥 내 생각은 애들이 그냥 여유가 있다. 그래서 남들의 불편함에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것 같다.

근데 포르투갈 서핑 강사의 말로는 리스본은 그나마 차가운 편이란다. 그럼 도대체 포르투는 어떻다는 말인가.



2. LX FACTORY

쉽게 말해 성수동 같다ㅋㅋ 공장지대를 바꾼 리스본에서 가장 힙한 곳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포르투갈은 그래봤자 자연이 아름답고 온화한 곳인 줄 알고 갔다. 근데 너무나 세련된 것들이 많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숙소에서 대중교통으로는 40~50분이 걸리는 곳인데(택시로는 20분이면 충분. 버스가 정말 아무때나 오고 속도도 자기네들 마음이다.) 두 번이나 갔다.

@LX FACTORY


진짜 그냥 감성팔이 대박이다.

하필 마켓이 열리는 일요일에 처음 가서 완전 반해버렸다.

아무것도 없는 무지 티셔츠에 원하는 문양을 고르면 바로 재봉틀로 박아주는 아저씨한테 완전 꽂혀서 결국 하나 샀다. 아마 미리 만들어가지고 와서 handmade라고 팔았으면 안 샀을거다.

이게 스토리텔링이고 마케팅이다.

또 만나고 싶다 이 아저씨


그리고 여기 이름이 너무 어려운 이 서점, Ler Devagar

내가 Lx factory에 두 번이나 가게 만든 주요 이유였다.

그냥 예쁘다. 괜히 오래 있고 싶다. 그래서 한국 책을 가지고 가서 죽치고 앉아있었다. 물론 낮맥 한잔에 이상하게 헤롱거려 책에 잘 집중은 되지 않았지만.

포르투갈 맥주 SUPER BOCK과 함께 하는 독서 @Ler Devagar


3. 알파마 지구

사실 리스본의 핵심이다. 28번 트램이 다니고 언덕 곳곳마다 너무 예쁜 리스본의 뷰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리스본의 특징을 보여주는 음, 우리나라로 치면 서촌, 삼청동 같은 곳이다(촌스럽게 자꾸 서울이랑 비교하게 된다) 내가 여기서 감동을 받았던 건, 골목을 걷는데 어디서 자꾸 음악소리가 들리길래 쳐다보니 하아, 건물 2층 테라스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육성으로 "미쳤다, 미쳤어. 이 동네 어쩌니. 왜 이렇게 좋니" 를 외쳤다.

가지고 있는 동전을 다 털게 만든 이 남자들. (근데 미안한데 2유로짜리는 나도 모르게 뺐어...)


그리고 서핑.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서핑을 할 수 있는 나라이다. 지중해는 너무 잔잔해서 서핑이 불가하다 한다. 반면 대서양과 맞붙은 포르투갈은 서핑족들이 꼭 한 번 찾고자 하는 비치라고. 특히 포르투에 있는 마토지뉴스. 물론 여기도 갈건데 나름 리스본 4월 25일 다리를 건너 있는 코스타 다 카파리카도 예쁘기로 유명해서 망설임없이 갔다. 내 인생 세 번째 서핑이었는데 매번 강습을 받았지만 일어나지 못했던 나는 이 곳에서 Rui의 설명 한 마디에 단번에 일어났다. Obrigado, Rui. 이제 완전히 어떻게 서야하는지 알았다.


그리고 나타(에그타르트), 또 포르투갈에서만 판다는 그린 와인 VINHO VERDE

얘네는 리스본만 있는 건 아니니 일단 생략하겠지만, 내가 리스본을 좋아하게 한 메인 이유로 빠질 순 없다.


도대체 안 좋은게 뭔가.

관광지로 가장 좋았던 곳은 상 조르즈 성, 벨렝탑, 그리고 굴벤키안 미술관.

그리고 근교 신트라를 비롯한 카보 다 호카, 카스카이스의 전경은 진짜 미친다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카보 다 호카, 카스카이스, 아젱 나스 두 마르, 헤갈레이라(페나성을 빠뜨렸군)


내일 아침 나는 포르투로 떠난다.

잘 있어, 리스본. 또 올게, 언젠가.

 

나에게 너무나 예쁜 도시, 리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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