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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 청메이 May 10. 2019

스위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멘붕의 스위스

포르투 이야기를 먼저 써야 순차적으로 맞지만 난 지금 스위스에 와 있고 지금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스위스에 온 지는 6일쯤 된 것 같다.

루체른 근처 자르넨이라는 곳에 숙소를 잡았는데 이곳은 정말이지 숨소리하나 조차 내기 힘들 정도로 적막한 곳이다.

야외에 자쿠지가 있는데 그 자쿠지에서 와인 한잔을 들고 바라보는 수천개의 별들은 숨막히게 아름답다.

저기 차 한대 주차되어 있는 집이 내가 묶는 숙소다


하지만 나흘 전, 융프라우를 가던 길 알게된 사실에 나는 아직도 정신을 온전히 차리기 힘들다..


사람을 이제 정말 믿으면 안되나보다.

지난 트라우마가 극복이 다 되기도 전, 훨씬 더 큰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큰...

이제는 사람이 무섭다...


정말 상처가 됐던 것은 화가 나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소리치는 나에게 그가 한 말이었다.

"내가 정말 많이 참고 있는데 너 선 넘으면, 내가 지금 너한테 말하지 않는게 있는데, 그땐 너도 무사하지 못해"

어이가 없고 허탈했다.

정말 나를 아끼고 본인의 잘못을 안다면 적어도 그 순간엔 내가 무슨 소리를 해도 그는 '내가 죄인이다'했어야 했다.

이 사람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나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동안 이 사람에게 내가 최우선순위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다못해 날 때린 놈도 최소한 말로는 내가 다 책임지고 모든 걸 받아들이겠다고 했는데...

그래, 자기 방어가 가장 우선일 수 밖에 없는 삶을 살아왔으니 내 뾰족한 말들을 가만히 들을 수 없었겠지...


그리고 다음 날 마지막 5분만 이야기 할 수 있냐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요약하면 결국은 자기도 살아갈 수는 있게 해달라는 거였다. 양해라고 했던가

결국 전 날 나에게 윽박지르던 그 이야기를 좀 둥글게 얘기하는 거였다.

또 허탈했다.

적어도 마지막 말은

'너가 받은 상처, 회복하기 어렵겠지만 그게 뭐가 되든 회복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빠르게 극복하길 바랄게.' 였어야 했고, 굳이 불안했다면

'다만 정말 염치없지만 그 순간 내 입장을 한 번만 살펴봐주면 좋겠다.' 였어야 했다. 

나랑은 매우 많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이 순간이 되어서야 깨닫는다.


알았다고 했다. 진심으로 공격할 마음은 없다.

다만 내가 이걸 극복해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들은 다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글을 쓴다. 불특정다수에게 내 이야기를 전하고 위로를 받는 것이 은근히 도움이 많이 된다는 것을 지난 번 사건에 깨달았으니까.

그래서 이 일을 겪고 바로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의 마지막 부탁이 신경쓰여서 며칠을 참았다.

근데 이름을 밝힌 것도 아니고 디테일한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것이니 이 정도는 해도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제발 본인이 얼마나 큰 잘못을 한 것인지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앞으로 살아갈 걱정 이전에

본인때문에 극복하기 힘든 상처가 생긴 날 먼저 생각하기를 바란다. 아직 내가 느끼기에는 본인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는 것 같다.


스위스는 눈치없이 너무 아름답다.

맨날 비가 온다고 했는데 물론 소나기가 가끔 오지만 해가 반짝이는 순간이 더 많다.

루체른 근처라 설산과 호수의 조화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좌) 리기산 산악열차   (우) 자르넨 어딘가의 일몰

 

필라투스의 좌측과 우측.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상반된 뷰

산에 오르면 그나마 좀 괜찮아서 리기산도 가고 필라투스에도 갔다. 이런 걸 좋아하던 그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해지기도 하지만 집에 가만히 있는 게 더 힘들고 시내는 복잡해서 싫다. 물론 이겨내겠다고 멘탈 붙잡고 움직인 게 사실 멘탈이 온전치 못했는지 갑자기 숨이 콱 막혀서 핸들을 꺾어 벽에 돌진했다. SUV라 망정이지..

저걸 뭐라고 하더라, 페니던가. 여튼 달랑거리더니 결국 날아갔다. 앞범퍼는 말할 것도 없다.



속도 안좋고 역류성 식도염이 재발했는지 목이 콱 막히고 먹으면 조금씩 계속 토해서 뭘 먹고 싶은 맘이 없다.

그래도 내 일을 아는 친구들이 밥은 먹었냐, 뭐 먹었냐, 맛있는 거 먹어야 한다 매일 체크하는 바람에 계속 뭔가를 해먹고는 있다. 스위스는 비싸고 맛없어서 그냥 해먹는게 이득이다. 그리고 자꾸 술을 먹다보니 평소 안하던 군것질을 엄청해서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더 먹는 기분이긴 하다. 스위스 초콜렛 그 두꺼운걸 한자리에서 다 먹으니 할 말 다 했다.(술 아니었으면 안먹었을 텐데, 술의 긍정적 측면이라 할까)


이번 여행은 모두 망가졌다. 스위스는 어딜 가나 그 생각뿐이고 아직 베를린 일정이 남아있지만 뭘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래도 거긴 아는 언니가 있으니까 좀 나을거라 믿는다.

자취를 했다면 그냥 바로 한국으로 돌아갔을 거다. 적어도 지금의 마음은 좀 추스리고 부모님을 봬야 내가 눈물을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버텨보기로 한다.


조만간 포르투와 스위스 여행기를 쓸 수 있길 바라며...

오늘은 와인 두병쯤 비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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