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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 청메이 Jun 04. 2019

이런 남자는 주의하세요

나 같은 아픈 경험은 하지 않길 바라며

정말 많이 믿고 의지했던, 내 인생 최초로 결혼을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이

알고 보니 유부남에 아이도 있었다는 것을 함께 하던 여행 중에 알게 되었다.

그동안 누나와 조카라고 알고 있던 그녀와 그 아이가 사실은 그의 와이프와 아들이었던 것이다.

물론 고백한 건 아니고 걸렸다. 두 손이 파르르 떨리고 눈 앞이 캄캄했던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만난 지 3개월쯤 됐을 때 그는 나에게 사실 이혼을 했다고 고백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그 사람 하나만 보면 내가 충분히 덮을 수 있는 결점이라 생각되어

오히려 그 상처를 내가 보듬어 줄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더 많이 사랑했다. 그러면 우리의 사랑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에겐 말도 안 되는 진실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나를 집으로 불러 자신의 아들을 두어 차례 보여준 그의 대담함이

만약 내가 아직도 속고 있다면 어디까지 발전했을까 소름이 끼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빨리 잊고 털어버리라고 하는데(물론 날 위한 말이지만)

그게 그렇게 쉬우면 내가 벌써 했겠지. 저걸 가장 바라는 사람이 바로 나인데 왜 안 하겠니.

처음엔 의도적으로 괜찮아보려고 노력하다가 도무지 잘 되지가 않아서

이게 쉽게 잊히는 게 더 이상한 거라며 그냥 충분히 힘들어하고 조급해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어느새 6월이다. 그 일을 알게 된 지 벌써 한 달이 되어 간다. 그런데 여전히 마음이 쉽지 않다.



끝까지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날 사랑한 마음은 진심이었다고. Such a BULLSHIT.


그는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본인이 행복하기 위해서 내가 필요했던 거다.

진정 나를 사랑했다면 처음부터 이렇게 접근했으면 안 된다.

본인의 가정을 모두 정리하고 그걸 나한테 고백하고 그리고 내가 그걸 받아들인 후 시작했어야 했다.

적어도 본인의 상황을 먼저 이야기는 했어야 한다. 정리할 테니 기다려달라고. (하지만 이런 남자도 믿지 말길 바란다. 저런 말 지키는 남자 본 적 없다.)


그래도 사람에 대한 믿음은 그 와중에도 조금 있었는데

진실을 알게 된 후부터 그에게 오는 연락들, 나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본인이 이런 사람이란 것이 주변에 알려졌을 때의 창피함이 더 큰 그 사람의 태도에 남아있던 믿음과 아련함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결국 그에게 나는 없었던 거다. 그냥 본인의 행복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을 뿐.


무엇보다도 힘든 점은 그저 나는 성적 대상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

이건 정말 참기 힘든 모멸감과 수치심을 가져온다.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하나의 PTSD가 극복되기도 전에 또 다른 PTSD가 찾아왔다.

그래서 난 더 이상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믿지 못하겠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은데

정신과 선생님이 진짜 말도 안 되지만 비슷한 사연으로 찾아오는 여성들이 많다더라.

(그런데 나처럼 어리지는 않단다 하하 이것마저도 나는 빠르게 배운 건가 하하)

그래서 알리려고 한다. 뭇여성들이 이런 남자들한테 더 이상 당하지 않기를 바라며.


보통 유부남들은 티가 난다고 하지 않나. 이런 사람들은 그나마 좀 순수(?)한 타입이다.

주말에는 연락이 잘 안 된다든지, 밤에 통화가 잘 안 된다든지 뭐 이런 것들.

하지만 이 사람처럼 완벽히 위장술을 하는 케이스도 있다. 그는 주중, 주말 관계없이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항상 나와 함께 했다. 밤에 통화가 안 되기는 커녕 영상통화도 수차례 했다. 심지어 나와 여행도 자주 갔다. 해외여행도 꽤 자주. 아버지 병간호로 누나가 시골에 내려갔다는 날들에 난 그 집을 별생각 없이 방문했다. 이사 당일에도 혼자 이사를 해야 한다길래 찾아갔고 며칠 뒤에는 새로 주문한 조립식 책장을 함께 조립하고 만들었다.

이런 유부남이면 절대 그 누구도 눈치챌 수 없다.




그래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상한 징후들이 있었다.


자주 헤어지자고 했다.

진실을 말할 용기는 없지만 양심의 가책은 느꼈는지 그는 정말 자주 헤어지자고 했다. 솔직히 이유가 납득이 된 적이 한 번도 없다. 말하다 보면 이 사람도 나랑 헤어질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게 느껴져서 어찌 보면 내가 계속 붙잡고 매달리는 형국이 됐다. 사실 그게 서서히 지치긴 했다. 이러다 결국 헤어지긴 하겠다 싶긴 했다. 그게 그의 작전이었던 것 같다.


누나와 조카와 산다.

이혼한 누나와 조카와 산다고 했다. 본인도 이혼의 아픔을 잘 알기에 불편하지만 누나가 함께 살자 했을 때 쉽게 받아들였다고 했다. 나는 콩깍지가 씌어 그 말 그냥 믿었다. 하지만 실제로 남동생이 있는 언니는 그가 유부남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도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된 누나는 절대 남동생한테 신세 안 져. 둘 다 결혼 전에 서울 올라와서 같이 사는 남매는 많지만 결혼까지 한 사람이 이혼했다고 남동생이랑 같이 산다고? 누나가 남동생한테 그렇게 의지하고 있는 상태면 진짜 결혼하는 거 잘 생각해봐야 해."

그리고 정신과 선생님도 그러더라. 누나, 조카 케이스 많다고ㅎㅎ 도대체 세상 누나들과 조카들은 무슨 죄인지.


바람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어렸을 때 만난 여자가 여러 번 바람을 펴서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화가 난다, 본인이 바람피울 것 같은 이미지는 아니지 않냐, 바람을 피울 거면 차라리 자기를 떠나라 등. 나는 그가 바람에 대해 굉장히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진 바람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와이프에 아이까지 있는 유부남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이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조차 모르겠지만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참 열심히 노력해서 살아온 사람인데... 왜 그렇게 힘들게 쌓아온 본인의 업적을 이렇게 바보같이 무너뜨려 버린 건지 안타까울 뿐이다. 쌓아 올리긴 어려워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인데... 다시 쌓는다는 건 처음 쌓아 올린 것보다 배는 더 어려운 일인데...

하지만 이 모두가 본인의 선택이었고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본인의 인생이란 점을 꼭 잊지 말았으면 한다.


사람 감정 가지고 장난치는 것들은 모두 큰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글을 보는 분들은 그런 상처로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다시 의식적으로 이 일을 잊기 위한 노력들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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