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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 청메이 Jun 24. 2019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김영하 <여행의 이유>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

예전부터 김영하 작가를 좋아했다. 처음 접한 김영하 작가의 작품은 <엘레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는 어떻게 되었나>였다.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해 읽기 시작했던 그 책은 몇 달 동안 김영하 작가 책만 보게 만들었다. 사실 알쓸신잡에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난 김영하 작가가 어떻게 생긴지는 몰랐다. 글들이 좀 오싹한 소재가 많고 사고방식도 다소 일반적이지는 않은 느낌이어서 사실은 괜히 음산한 느낌의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근데 웬걸. 저렇게 댄디하게 생기신 분일 줄에야. 하긴, 맨날 잔인하게 사람 죽이는 영화 만드는 감독들도 외모는 선하신 분들이 많지.


여하튼 김영하 작가의 새 책이 나왔다길래 서점에 갔다. 사실 책 나온 지 꽤 됐는데 이 핑계 저 핑계 대다가 못 갔다. 약속 시간보다 일부러 좀 일찍 나와서 근처 서점에 갔다. 오랜만에 방문한 서점이라 관심 가는 책이 너무 많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여행의 이유>를 집었다. 와, 정말 오랜만에 수려하게 쓴 글을 읽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이런 표현들을 쓰지. 서점을 나올 때 내 손에는 비닐로 쌓인 <여행의 이유> 새 책이 들려있었다.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됐을까.

아마 미디어의 영향이 클 거다. 김영하를 몰랐던 사람들도 그를 많이 알게 됐고 글뿐만 아니라 말도 너무 잘하시는 덕에 이 사람의 새 책이 나왔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만약 지금 그동안 그가 주로 쓰던 일종의 스릴러를 발간했다면 이 정도로 집중이 모아지지는 않았을 거다. 작가지만 굉장히 현명한 마케터라는 생각이 든다. 타이밍을 너무 잘 잡았다. 그가 대중에게 알려지는데 크게 기여한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여행을 바탕으로 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그 여행지에 대한 역사, 문화를 다룬다. 그렇다 보니 대중은 자연스럽게 김영하라는 작가는 여행에 대한 주체적인 관점과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그걸 소재로 한 산문집을 냈으니 반응이 더 뜨거울 수밖에.


무엇보다 지금 현세대가 여행을 너무 좋아한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여행을 소재로 한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나오지만 망한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그런데 김영하라는 사람이 심지어 '여행의 이유'라는 제목의 책을 냈으니 이게 주목을 안 받을 수가 있나.



우리 세대는 왜 이렇게 여행을 좋아할까?

나부터 봐도 그렇다. 지난 몇 년간 1년에 3번 이상은 해외를 나갔고, 국내여행도 맛을 들였다. 제주도에 친구가 있을 때는 두 달에 한 번씩 제주도에 갔다. 여행의 기간도 연차가 쌓여갈수록 조금씩 늘려갔다. 특별히 소비에 큰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여행을 위해 돈을 번다고 할 정도로 기회만 되면 여행을 갔다. 계획도 없이 그냥 하루 전 비행기를 끊어서 주말 동안 다녀온 적도 있다.


주된 이유는 '그냥 빡쳐서' '머리 좀 비우려고'였다. 해외여행을 좀 더 선호한 이유는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공간에 나 혼자 있는 시간을 만끽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혼자 가는 여행이 두렵기는커녕 더 즐거웠던 때도 있다. 로밍보다 현지 유심을 좋아하는 것도 적어도 휴가인지 모르고 오는 업무전화는 안 받을 수 있으니까였다. 그걸 김영하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더라.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아, '그냥 빡쳐서'라고 말하는 나의 표현과 대비해서 이 얼마나 고급진 표현인가. 물론 김영하 작가는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저렇게 표현했지만 나는 많은 이들이 여행을 바로 저 이유로 하지 않을까 싶다.



서점의 다른 책들을 둘러봤다. 물론 한 때 한참 붐이었던 시절보다는 적어졌지만 여전히 베스트셀러나 신간에는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힘든 나에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2' 등 뭔가 위로에 대한 책들이 한가득이다. 서점에 서서 고작 몇 장 읽어봤을 뿐인데 막 고개를 끄덕이며 그 몇 문장에 위로를 받고 있는 나를 보았다. 왜 이런 책들이 인기일까. 사실은 슬픈 일이다. 다들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가며 살아가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받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의 이유'나 위의 언급한 류의 책들이 인기가 있는 것은 같은 맥락에 있는 듯하다. 이러이러한 것이 좋아서 여행을 한다기 보단 결국 상처로부터 벗어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으로 여행을 하는 거니까.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늘 웃고 있는 그 사람은 사실은 남을 너무 의식해서 미움받을까 봐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만큼 나약한 존재이지만 우리는 모두 현명하게 스스로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여행으로 에너지를 얻든, 독서로 위로를 받든, 무엇이 됐든 말이다.


<여행의 이유>는 200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얇은 산문집이지만 이 관점 외에도 너무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책이다. 많지 않은 글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이게 정말 좋은 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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