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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민 Aug 30. 2020

도전의 미학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런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운동회 때는 저학년이라면 꼭두각시 춤을 꼭 추었는데, 나는 어떻게든 반에서 좋아하는 남자친구와 함께 짝을 이루고 싶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 결국은 그 남자친구와 짝이 되어 춤을 췄던 기억이 있다.

고학년으로 올라가서는 당시 월요조회마다 방송실에서 상장을 받던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학교에서 개최한 대회에서 가장 좋은 상을 받아, 전교생이 보는 화면에서 상장을 받는 그 친구들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근사해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시 가장 자신 있었던 글쓰기 부문을 쉴 틈 없이 연습하고 갈고 닦으며, 결국엔 대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물론 그토록 바라던 월요조회에서 상장을 받는 일도 톡톡히 해냈었다.

중고등 학생이 되었을 때는 공부를 정말 못했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전교생이 200명이라면 나는 그중에 전교 180등을 할 정도였다. 공부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시험 기간이 언제인지, 시험 범위가 어디부터 어디인지조차 알고 있지 않았었다. 성적표를 받으면 온통 ‘가’ 아니면 간혹 ‘양’으로 도배 되어 있었고, 등급으로 따지자면 7등급, 8등급이 떴었다. 성적이 나빴던 것이 나에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고, 그다지 신경 쓰이는 부분도 아니었다. 그런데, 학년이 거듭될수록 성적으로 사람을 가르는 부류, 무시하는 부류를 만나게 되면서 어떻게든 성적을 올려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결국 전교 끝 무렵에서 놀던 나는 전 과목의 등수를 30등대로 올렸고, 과학 관련 과목은 모두 10등대로 올렸다. 그때 당시, 살면서 이뤄본 것 중에 가장 큰 것을 성취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온몸에 작은 벌레들이 기어가는 듯 소름이 일었었다. 그때 느꼈던 기분이,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를 보면 다시금 전율 되어 퍼지기도 한다.

 재수생이 되었을 때는 급하게 진로를 변경하여, 실기 준비를 3개월도 채 하지 않았지만, 기적적으로 학교에 합격하면서 또다시 큰 성취감을 느꼈었다.


 이토록 크고 작은 일에 도전하며, 나름의 성취감과 열락을 매번 누렸다. 돌이켜 생각해 봤을 때는 ‘그땐 그랬지.’라고 웃으며 넘길 수 있지만, 아마도 당시에 나에겐 큰 부담감이 있었고,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때의 일기장을 펼쳐 읽어보면 이 생각이 더더욱 확실해진다.

 실기를 준비했던 당시는 가장 최근의 기억이기 때문에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새벽에 혼자 2,000자 분량의 소설을 쓰면서 내내 울었다. ‘보잘것없는 글밖에 쓸 줄 모르는 한심한 인간, 쥐뿔도 모르면서 펜을 잡고 글을 쓰는 형편없는 인간, 넌 분명 실패할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그때의 울었던 기억을 되새기면, 다시 그 시절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당시의 난 힘들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때의 일들이 마냥 힘들었던 기억으로만 남아있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그러한 일들을 지내며 나는 더욱 견고해지고 단단해진 거니까. 남들이 보면 한없이 작고 초라한 도전일지라도 당시의 나에겐 가장 중요하고 막중한 도전이었으니까. 이러한 길을 지내오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니까.


 나는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중이다. 조금 더 어려운 길일 수도 있고, 지난날의 나보다는 게으른 내가 해내기에는 다소 높은 벽의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들 저러한들 어떤가.
지금의 도전이 실패로 이어진다고 해도 내가 단단해진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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