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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빛 May 19. 2022

2. 그저 받아들이면 돼

택시를 타고 하노이 시내에 처음 나갔던 날, 너무나도 무질서한 도로의 풍경에 입이 쩍 벌어졌었다.

중앙선과 차선이 있지만 자동차들은 거의 차선을 지키지 않은 채 자유롭게(?) 운행하고 있었고

예고 없는 끼어들기와 밀어붙이는 차들 때문에 흐윽! 하고 작은 비명을 지르게 되는 건 다반사였으며

중앙선 반대쪽에 차가 없으면 중앙선을 넘어가는 것은 인지상정이요,

자동차 사이로 기본 4~5대 정도의 오토바이들이 서 있다 보니 분명히 4차선이었던 거 같은데 10차선은 되어 보이는 도로의 모습에 어질어질했다.

분명히 빨간 신호가 들어왔는데도 내달리는 오토바이와 택시들,

횡단보도에 녹색불이 들어와 사람들이 길을 건너는 데도 빵빵거리며 지나가는 승용차,

좌회전 신호(직좌 신호가 아니고요)지만 직진과 우회전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혼돈의 카오스 같은 교차로를 유유히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까지.


게다가 인도는 저렇게 엉망진창인지.

인도가 있지만 좀처럼 인도를 따라 걸을 수는 없는 환경에 또 놀랐다.

기본적으로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가 거의 없을뿐더러, 날씨가 좋아 한 정거장 정도는 걸어가고 싶다 해도 가다 보면 인도가 끊겨 있거나, 오토바이나 차가 주차되어 막혀 있거나, 보도블록이 깨지고 부서진 데다 쓰레기가 투척되어 있어 지저분하고, 거대한 가로수 뿌리가 길을 들어 올려 울퉁불퉁해 잘못하면 넘어지기 십상인 인도를 보게 된다.  


너무 놀라 계속

"어머머머, 왜 저래? 다들 미쳤나 봐. 저러다 사고 나는 거 아니야?"

"여기는 길이 왜 이래? 걸어가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하며 투덜거리자 남편이 한 마디 했다.

"여긴 한국이 아니야. 이해하려고 하지 마. 그냥 받아들여."

그래도 나보다 먼저 와서 살았다고, 남편은 짐짓 하노이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저렇게 보여도 저 안에 다 질서가 있다고, 다들 저렇게 별일 없이 매일매일 다닌다고.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거리모습에 놀라 심장이 벌렁벌렁했던 5개월 전에는 사람들이 저렇게 무질서하게 다니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해진 신호대로 차근차근 가면 서로 안전하고 좋을 텐데 저런 아비규환을 매일같이 겪는다고? 길거리를 조금만 더 정비하면 좋을 텐데 이렇게 놔둔다고?  

도대체 왜?  

그러면서 계속하게 되는 말은

'여기는 왜 이러는 거야? 이해할 수가 없네'였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안다.


버스나 지하철(얼마전에 하노이 전철의 노선 하나가 개통했다!엄밀하게 말하면 지상철이지만.) 같은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고, 가정에서 자동차를 소유하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은 하노이에서는 사람들의 발을 대신해 주는 것이 바로 오토바이다. 모든 것은 오토바이를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오토바이를 타던 습관으로 운전을 하게 되다 보니 그럴 수 있을 것 같고, 오토바이로 가게 앞까지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니 인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날씨는 또 얼마나 더운지! 아마 길에서 걸어다니겠다는 사람 자체가 없을 것이다. 비록 얼마 안 되었지만 살아보니 받아들여지게 된다. 무질서 속에도 질서가 있다. 그리고 그 속에도 여전히 삶은 계속되고 있다.


내가 평생을 살며 만들어진 기준, 시선들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밖으로 나와보니 그건 그냥 그 땅 안에서만 유효한 것들이었다.

무엇이 더 좋다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각각 이루어 온 삶에 대해

무엇이 우위인지를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위생이 걱정된다고 이곳의 음식을 안 먹을 수 없고,

품질이 의심된다고 이곳의 물건을 쓰지 않을 수 없고,

날씨가, 먼지가 걱정된다고 집에만 있을 수도 없다.

이곳에서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려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태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를 꼭꼭 접어 마음속에 잘 넣어두고

오늘도 밖으로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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