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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울림 Feb 07. 2021

#.18

주간 <임울림>

이전부터 덕질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잔뜩 미뤘다. 오늘이 과제를 해결하는 날이다.


나는 사실 서른 가까이 살고서도 마땅히 덕질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소속사 앞에서 죽치고 앉아 연예인을 따라다니고, 지하철 역마다 'ㅇㅇ아, 생일 축하한다'는 문구를  거는 심리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꼰대였던 것인가)


그런데 말입니다, 늦은 봄이 와버린 것일까. 특정 유튜버 덕질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물론 지출의 영역까진 아직이다. 단지 시리즈 정주행을 여러 번 하는 정도?


이게 얼마나 큰 변화냐면, 나는 명작 영화도, 너무 좋아서 왓챠평에 만점을 준 영화조차도 두 번 이상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콘텐츠 시리즈를 새벽에 누워 통으로 보고 앉아 있다. 말투를 밈으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대상의 Q&A 영상까지 찾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스터셰프코리아 시즌2 최강록 씨가 그 주인공이다. 물론 미디어를 거친 이미지일 수 있겠지만,  출중한 실력을 어리숙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숨기는 모습이 마치 ASMR 같은 안정감을 준다.


그가 하는 요리는 세상이 추구하는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다. 카레를 만들면서 다섯 시간을 쓴다. 요리를 위한 요리를 하는 요리사다. 만화 주인공의 서사를 가진 진정한 예술가다. 내가 콘텐츠를 자주 찾는 까닭은 이전부터 갖고자 했던 삶의 태도와 맞닿아 공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겐 일종의 치유다.


중학교 시절, 세상을 이기는 건 세상이 뭐라 하든 자신의 행복을 기반으로 나만의 길을 걷는 것이라는 문장을 본 적 있다.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물질적으로는 몰라도, 적어도 마음이 부족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후 사회에 뛰어들면서 많은 것들이 잊혔다.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은 강해지고,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습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 기본적인 재원은 필요하지만, 더한 탐욕을 노릴 때 마음은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삶은 중용의 가치를 둘 때 평안이 찾아온다. 변화의 기조 속에서 한 번쯤 스스로의 중심을 돌아보는 계기가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찾아오다니 참 신기한 노릇이다.


덕질이란 각자의 삶에서 기울어진 저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이거다.


'제목은 덕질로 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중용을 곁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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