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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보리 Dec 28. 2023

우리에게는 대충 쌓은 담이 필요하다

photo by @hellohere.jeju


이제는 제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제주에서의 힘들었던 순간들과 반복된 실패를 생각하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제주의 바람처럼, 우리의 관계에서도 늘 거센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그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렸고, 그러던 중 누군가에게 이 바람을 견뎌내는 방법을 듣게 되었다. 집을 지키기 위해서는 담을 쌓아야만 한다고. 그때부터 우리는 벽돌을 가져와 견고하게 담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바람에 담이 무너졌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정성스레 다시 쌓아봐도 우리의 담은 쉽게 무너졌고, 계속해서 무너졌다. 그렇게 담을 세우고 또 무너지고를 반복하며 우리는 점점 지쳐갔다.


”아무래도 이곳은 바람이 너무 센 것 같아. 차라리 바람이 없는 곳으로 가면 괜찮을 거야.“


담쌓기를 포기한 그때가 돼서야, 무너진 담 너머로 다른 집들의 담이 보였다. 울퉁불퉁한 검은 돌을 대충 쌓아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저렇게 대충 만들어도 바람을 견딜 수 있다고?'


마침 바람이 불어오더니, 돌과 돌 사이의 틈으로 흩어지며 자연스럽게 담을 통과했다. 돌담은 역시 그대로였다. 저 대충 쌓은 듯한 돌담에는 지혜가 있었고, 삶이 있었다. 빈틈없이 가득 채울수록 오히려 저항이 커져 담이 쉽게 무너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담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방법을 몰랐다.






삶은 그런 것이었다. 빈틈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빈틈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우리 사이에 바람이 불지 않았더라면 담이 필요했을까.


사실 우리는 그런 관계를 원했다. 굳이 담을 쌓는 수고로움이 없어도 괜찮은, 그러니까 말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서로의 선을 넘지 않는 그런 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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