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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보리 Feb 23. 2024

이제는 뒤돌아 보지 않아

시골 소녀 같았던,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이 있었다. 가끔은 아무 걱정 없이 강아지, 고양이와 함께 뒹굴거리며 마루에 앉아 기타를 치던 어린 시절의 내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한 번만 더 그 평화로운 하루를 살아볼 수 있다면, 하고서.


행복한 기억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과거의 '내가 좋아하는 나'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들, 나만의 철학, 나의 성격 등 모든 것이 여전하다고 믿었으며 외모 또한 그때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20대 초반의 내가 싫어했던 것을 20대 후반인 내가 좋아하게 되어도, 그때 어울렸던 것들이 지금은 내게 어울리지 않아도, 그때의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은 알고 있어도,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나는 어떤 사람이며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지 않고,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떠올리며 모든 것을 선택했다. 내가 싫어하던 것은 시도해보지도 않고 나는 원래 그것을 싫어한다고 말하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전혀 없을 거라는 듯이 한 번쯤 고민해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부터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나'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나의 '역할'에 집중하게 되었다. 나는 어떠한 역할이 되어 무엇을 해내고 싶은지, 우리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어느 곳에서 어떠한 삶을 사는 것이 더 우리가 행복할 것 같은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이제는 나 개인의 행복보다는 우리 모두의 행복 그 속에 내가 있는 것이 곧 나의 행복이 되었다.


엄마와 아내와 며느리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잘 해내는 내 모습을 그려보게 되고, 그러한 삶에서는 내가 싫어하던 것들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고, 좋아하던 것들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새로운 삶에 적응하며 사랑하고 사랑받는 내 모습이 너무 예뻐 보이고 좋아졌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은 과거에 있지 않고 미래에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요즘에는 그 시절의 내가 잘 생각나지도 않을뿐더러, 떠올라도 그립지는 않았다. 혹 그 소녀와 눈이라도 마주친다면, 그때는 정말 즐거웠다고 멀리서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너를 놓아주고, 나는 여기서 내 삶을 살기로 했다고. 이제는 뒤돌아 보지 않겠다고.




나의 인생은 결혼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후로 나뉘지 않을까. 자녀라는 존재는 지금까지의 내 삶과, 성격과, 고집을 뒤로한 채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렇게 해야만 하고, 그렇게 되도록 도와준다. 자녀라는 빈자리를 마련한 순간부터 우리는 부모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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