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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a Kim Aug 29. 2022

초개인화 시대가 바꿔놓은 MD가 일하는 방식

상품기획자, MD

나는 10  브랜드& 상품 기획자(MD). 브랜드와 상품을 기획할 때는 많은 것을 고려한다. 제대로 working 하는 비즈니스 모델인지, 수익창출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지속 가능하기 위해 어떤 단기/장기적 전략을 잡을지, 소비자는 출시하는 해당 시점에 어떤 니즈가 어느 규모로 있을지, 손익계산(Profit and loss) 시뮬레이션을 수도 없이 돌려본다. 궁극적으로 이사업을 통해 기업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많은 수익과 가치를 창출할  있을지  순간 셈을 하는 셈이다. 따라서 어떤 브랜드와 상품을 기획하는 일은 트렌드와 환경의 움직임을 빠르게 캐치하는 기민함과 더불어 굉장한 정량적 분석력을 요한다. MD 뭐든지 다한다의 약자라는 소리는 마냥 우스갯소리는 아닌 것이다.



10년 동안 상품기획자였던 나는 아래와 같은 루틴을 지키며 업무했다.


1. 예산/목표 경영계획 수립

2. 과거 데이터 분석

3. 타사 레퍼런스 조사

4. 상품기획

5. 판매

6. 리뷰


상품기획자는 상품의 적중률을 높이기 위해 치밀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촘촘하게 계획을 수립한다. 전년도 동기간에는 어떤 상품이 잘 판매되었는지, 어떤 속성이 특히 대두되었는지, 판매 추이와 그래프를 겹겹이 겹쳐 보며 그 평균값을 찾아낸다. 과거 타사 브랜드는 어떤 베스트 셀링 아이템을 판매했는지 외부적 요인 분석도 빼놓을 수 없다. 완벽한 데이터, 완벽한 로직에 집착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 이곳이구나!' 하는 맹렬하고도 소름 끼치는 촉이 오는 지점이 있다. 너무나 완벽해서 흠잡을 데 없어 보이는 아이템 플래닝인 탓에 엄청 멋지고 대단한 결과물을 만드는 프로페셔널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하지만 그 소름 끼칠 만큼 완벽했던 데이터의 결론은 멋들어진 스타 아이템이 아닌 한없이 대중적인, 특색이 없이 mass 한 아이템으로 결론을 맺게 된다.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이 방식이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몇 차례 들었지만 이내 같은 방식으로 기획물을 만들었다. 이것이 수년간 나와 나의 선배들이 루틴 하게 상품기획을 해왔던 과정이었다.


이 방식이 적중률을 높이는데 꽤 도움이 되는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과거와 달리 mass라는 개념의 비중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세상이 지금보다 다양해지기 전에는 대중적인 속성이 높은 포션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과거와 비슷한 속성으로 전개해도 안정적인 플래닝을 할 수 있었지만, 최근처럼 초개인화로 다양성이 부각되는 시대에는 대중을 타겟하는 것이 절대 대중적이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과거의 데이터에 집착하면 이런 일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현상들을 절대 직시할 수 없다. 과거 데이터의 밸류가 이 전보다 많이 떨어졌다. 반대로, 과거의 경험보다 변화하고 있는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읽어내는 역량이 너무도 중요해졌다.


소비자가 선호하는 제품을 개인화 기술이 접목된 플랫폼 등의 발달로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된 것도 이 변화를 이끄는데 한몫했다. 이제는 많은 범람하는 선택지를 소비자가 일일이 비교하며 피로할 일이 적다. 내가 원하는 디테일한 속성들을 필터링하여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 수준이 높아지며 취향이 세분화됨에 따라 사람들은 점점 더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 지난 주말, 한남동 어느 카페테라스에 앉아 맑은 날씨를 만끽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고작 몇 개의 유행하는 아이템 이외 겹치는 스타일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다양하고 각기 다른 스타일들을 고수하는 개개인을 마주하니 상품 기획이 더욱 어려워졌음을 직감했다... 이런 'only 나'에게만 유효한 가치를 찾는 사람들에게 데이터적으로 평타 치는 제품만을 제안할 줄 아는 MD라면, 아무리 데이터와 숫자에 빠삭하더라도 역량 있는 기획자라 불릴 가치가 있나.


예전에는 MD가 감으로 상품기획을 한다고 하면 연륜 있는 상품기획자들은 비판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스스로가 객관화가 안 되는 MD를 보며 얼마나 자질 없는지를 지탄했나. 끊임없이 시대의 변화에 응하기를 요구하는 직업적 특성 탓에 나는 요즘 스스로 되뇌어본다. 데이터의 명성에 기대지만 말고 내 감을 믿자.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맥락 없는 우연에 운을 맡기자는 뜻이 아니다. 세상을 넓게 바라보고, 시대가 변화하는 현상을 예민하게 관찰할 줄 알며, 과거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융합적인 사고를 통해 얻어지는 감. sense는 그 자체가 역량이다. 이를 발휘해 상품에 접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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