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난로가 켜지던 교실

갈탄의 냄새와 도시락의 온도 사이에서

by 깊고푸른밤

(이미지출처 : 구글)


아침에 교실 문을 열면
먼저 보이던 건 교실 가운데 위치한 회색 난로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 안쪽이 뜨뜻하게 당겼다.
그 차갑고 얇은 공기를 깨우는 첫 번째 일은
언제나 주번(週番)의 '갈탄'이었다. (조개탄이나 목탄을 사용하던 학교도 있었다)


주번의 손끝에서 겨울이 깨어났다


주번이면 무엇보다 먼저 학교 창고로 갔다.
양은 빠께스(알루미늄 바스켓)에
검은 갈탄을 삽으로 퍼 담고
두 손으로 조심스레 들어와야 했다.
손등과 소매에 묻은 가루는
수업 시작까지도 잘 지워지지 않았다.


난로 문을 열고 갈탄을 붓고
쇠막대로 장작을 정리하면
불씨는 천천히 살아났다.


주번이라는 이름 하나로
아이들은 잠깐 어른처럼 굴었고,
더운 기운이 난로에서 올라올 때면
교실 전체가 하나의 숨결처럼 데워졌다.


(이미지출처 : 구글_경향신문)


난로 위의 도시락_겨울 교실의 냄새


난로가 충분히 달궈지면
아이들은 각자의 도시락을 꺼냈다.
은색 철 도시락을 상판에 차곡차곡 올리면
교실은 곧 하나의 식당이 되었다.


밑칸 도시락은 밥이 누르스름하게 눌어

고소한 향이 피어올랐고,
위칸 도시락은 은근하게 데워져
김이 자연스레 밥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냄새...
김치, 멸치볶음, 소시지, 계란말이...
데워진 반찬들이 한꺼번에 섞이면
특유의 겨울 교실 냄새가 되었다.


아이들은
"야, 너는 어제도 맨 아래였잖아."
그러며 도시락 위치를 슬쩍 바꿨고,
서운함과 웃음이 뒤섞인
작은 협상이 교실을 채웠다.


(이미지출처 : 구글_경향신문)


쉬는 시간의 법칙_말뚝박기, 분필가루, 그리고 명단


쉬는 시간이 되면
교실은 다른 세상이 되었다.


한쪽에서는
책상을 발판 삼아 뛰어오르는
말뚝박기의 소리가 터졌고,
어깨가 부딪혀도
아무도 큰 소리 내지 않았다.


다른 한쪽에서는
주번이 칠판지우개를 들고
창문 밖 벽에 '퍽퍽' 소리를 냈다.
분필가루는 햇빛 아래
얇은 눈발처럼 흩어졌다.


칠판 귀퉁이엔
'떠든 사람 명단'이 있었다.
누군가는 장난으로 이름을 지우고,
또 누군가는 다시 적었다.
그 작은 공방 속에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소란과 먼지와 장난이
그 시절 교실의 공기를 만들었다.


은빛 연통과 철사줄, 그리고 소란의 계절


난로에서 올라온 열기는
은빛의 아연도금 연통을 따라
창문 밖으로 길게 빠져나갔다.


늘어지지 말라고
철사줄을 여러 번 묶어 두었는데,
문제는 바로 그 '철사줄'이었다.


쉬는 시간의 아이들은
책상 위를 뛰어다니다가
철사줄에 걸려 뒤로 넘어졌고
연통은 크게 흔들렸다.
난로는 위태롭게 '쿵' 소리를 냈다.


그러나 모두가 웃었다.
그 나이의 몸은 뛰고 부딪혀야만
그 하루를 살아낸 것 같았으니까.


교련선생님과 바리깡_난로의 열기를 꺼버리는 또 다른 온도


겨울 교실엔 난로가 있었고
아이들이 만든 열기가 있었지만
그 모든 따뜻함을 단숨에 식혀버리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교련선생님이
불시에 교실 뒤에 서 있을 때였다.


머리가 귀를 가리면
"야, 너 이리 나와."
그 한마디면 난로의 열기도,
도시락 냄새도,
아이들 사이의 장난스러운 온기까지
모두 한순간에 식었다.


바리깡은 망설임 없이 머리를 밀었고
고속도로 같은 자국이
그날 하루의 운명이 되었다.


그 시대는
두려움과 이상한 충성심이 뒤섞여 있었고,
난로가 아무리 뜨겁게 타오르고 있어도
권력의 차가운 열기 앞에서
아이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 공기는 지금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사람들을 길러냈다.


(이미지출처 : 구글_시사저널)


그 시절 누군가에게는 기억하기도 싫은 기억이겠지만...


(그나마 최근 학생 인권에 대한 인식이 나아진 건 정말 잘 된 일이다.)




Epilogue


이 글은 어떤 세대가 겪었던
겨울 교실의 냄새와 소리를 떠올린
개인적인 기록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흐려진 장면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또렷한 공기일 것이다.


다만, 난로 위에서 눅눅하게 데워지던 도시락처럼
조금 고약하고 조금 따뜻한 기억이
어딘가의 하루를 조용히 데워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어딘가의 겨울 교실도
잠시나마 함께 따뜻해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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