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이 지나간 집 안에 남아 있던, 느린 온도의 기억
(이미지출처 : 구글)
김장이 끝난 이튿날이면 집안이 유난히 조용해진다.
전날의 부산함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약한 젓갈 냄새가 남아 천천히 방을 돌아다녔다.
손끝이 멈춘 자리에는 이상하게 넉넉한 온기가 있었고, 그 적막이야말로 겨울이 본색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그때의 공기는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의 체온이 방 안에 오래 머물러 있어 바깥보다 따뜻해 보이곤 했다.
어린 나는 그 온도를 '겨울 냄새'라고 불렀다.
난로도, 높은 보일러도 없던 시절이었는데도 집 안 공기에는 사람들의 체온이 잔잔하게 스며 있었다.
겨울 오후는 흐르는 속도가 느렸다.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모든 일이 조금씩 미뤄지기 때문이었다.
장독대에 올라간 김장독은 하루 종일 그대로였고, 식탁에 놓아둔 채칼은 어머니가 치우기 전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이를 흐르는 시간은 얇고 고요했다.
깨트리지 않기 위해 손으로 감싸 쥐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겨울을 떠올리면 나는 늘 '멈춤'이라는 단어가 먼저 생각난다.
사람도, 집도, 심지어 냄새조차 잠시 멈춰 있는 듯한 오후.
우리가 괜히 목소리를 낮췄던 이유도, 그 멈춤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김장이 지나간 뒤의 겨울은 하나의 기술이었다.
무엇을 하지 않는 기술, 느리게 살아내는 기술, 지나치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기술.
누구에게 배운 적은 없지만, 모두가 몸으로 알고 있던 방식.
세상은 춥지만, 집 안의 숨결은 끝까지 식지 않았다.
그 온도는 난방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어른들이 말없이 이 계절을 견디던 방식은 결국 온도를 잃지 않는 법이었다.
창문을 조금 열어두면 찬 공기가 아주 천천히 흐르고,
그 사이로 사람의 체온이 얼마나 따뜻한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바깥에서는 겨울이 날카롭게 다가오는데도, 집 안의 분위기는 유난히 부드러웠다.
아마 그 온기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저절로 묻어 나온 것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겨울은 예전보다 밝고 빠르다.
지금 나는 난방이 잘 되는 아파트에 살고, 김치는 마트에서 사 먹는다.
그래서 겨울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도 잘 모른다
집 안도 더 따뜻하고, 창문 틈도 더 단단하며, 김장 같은 대작업도 대부분 사라졌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겨울은 시작점이 흐릿하다.
무엇이 겨울을 열어주고, 어디서부터 이 계절이 들어오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가끔 그 시절의 겨울을 떠올린다.
김장이 끝난 뒤 조용해진 집 안,
사람의 온도가 방 안에 머물던 고요한 오후,
우리가 소리 없이 겨울을 받아들이던 그 순간들.
그 기억을 꺼내놓으면 지금의 겨울도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몸이 기억하는 온도가,
사람이 견디는 계절을 어떻게 만들어주는지 다시 배우는 느낌이다.
Epilogue_겨울 오후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기록
이 글은 어느 해 겨울 오후의 공기를 더듬어 써 내려간 사적인 회상입니다.
어떤 정답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저 한때의 온도를 떠올려 본 것뿐입니다.
잠시라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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