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부르는 소리
12월 초,
바람의 결이 달라지면 제일 먼저 변하는 건 거리보다 부엌이었다.
누군가의 집에서 양념 냄새가 스며 나오기 시작하면,
그게 바로 겨울의 신호였다.
김장이라는 이름의 긴 하루가
동네 전체를 천천히 데우곤 하던 시절이었다.
(이미지출처 : 구글)
김장 날이면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고 들어왔다.
누가 먼저 부르지 않아도
서로의 집을 오가며 품앗이하듯 손을 보태는 게,
그 시절의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절여진 배추를 옮기는 사람,
파를 다듬는 사람,
마늘을 다지고 양념을 버무리는 사람.
모두가 자기 자리를 알고 있었고
그 조용한 분주함이
김장이라는 공동의 의식을 완성했다.
남자들은 주로 무거운 것을 들거나
장독대 주변 정리를 거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리 대단한 수고는 아니었는데도
그들이 옆에 있기만 해도
일이 훨씬 거뜬해지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김장은 배추를 버무리는 날이면서,
사람을 다시 섞어 놓는 날이기도 했다.
(이미지출처 : unsplash)
일이 마무리될 즈음이면
어디선가 돼지고기 삶는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김장 날의 하이라이트는
어쩌면 이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막 삶아낸 따끈한 고기 한 점에
방금 버무린 김장김치를 올려 먹으면
추위와 피로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이웃까지 함께 둘러앉아
"올해 배추는 속이 달다" 같은 말을 나누며 웃던 그 풍경은
노동이 끝난 뒤에만 주어지는 작은 축제였다.
(이미지출처 : 구글)
김치냉장고가 없던 시절,
김치를 지키는 일은 곧 겨울을 지키는 일이었다.
집마다 겨울을 견디는 방식도 조금씩 달랐었다.
마당 한켠에 김장독을 묻기도 했고,
찬 바람이 덜 드는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 두기도 했다.
독 위에는 헌 담요와 비닐이 덮였고,
눈이 쌓인 김장독은
그 자체로 든든함의 상징이었다.
김장만 마치면
연탄을 들여놓고,
우리는 겨울을 버틸 준비가 다 끝났다고 믿었다.
그 두 가지만 갖추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든든했던 시절이었다.
(이미지출처 : 구글)
지금 생각해 보면
김장은 단순히 김치를 담그는 일이 아니라,
계절을 함께 준비하는 방식이었다.
손끝이 얼얼해지던 찬물의 감각,
양념 냄새가 하루 종일 집안에 스며 있던 기척,
일이 끝난 뒤 찾아오던 조용한 피로감.
그 모든 것이 겨울을 견디게 만드는 힘이었다.
지금은 김장 문화도, 겨울의 준비 방식도 달라졌지만
그 시절의 온도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저마다의 방식으로
겨울을 맞을 자리를 만들어 간다.
이 글을 읽는 동안
잠시라도 그 시절의 김장날이 떠올랐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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