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ssian Nov 09. 2022

늑대가 나타났다

거짓말쟁이들의 마을 - 2


두 눈을 가린 손을 치우고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 마치 허상이었던 듯 착각이었던 듯 사라져 있지는 않을까. 집 앞 놀이터에 늑대와 같이 무서운 짐승이 나타날 리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본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소년은 어둑한 집이건 아무도 없는 집이건 좋으니 재빨리 돌아가 잠긴 문 뒤로 숨고 싶었다.


용기를 냈다. 한쪽 눈만 가늘게 뜨고 눈 덮은 손가락을 살짝 벌려 늑대가 다가오던 방향을 흘끔 보았다. 다행히 붉은 그네만 보일 뿐 늑대는 온데간데없었다. 소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 차례 놀이터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늑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해가 저물고 어둑해 가던 주위에는 가로등이 하나둘씩 불을 밝혀나가고 있었다. 소년은 다가오던 늑대의 샛노란 눈빛을 떠올리며 서둘러 놀이터 벤치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항상 웃으며 사탕을 나눠주는 경비원 아저씨는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바빠 보였다. 경비실을 지나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는데 소년은 태어나 처음으로 다리가 후들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늑대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까, 소년에게는 두근거리는 마음과 무사히 위험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공존했다.


현관문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자 평소처럼 문이 열렸다.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서던 소년은 그 자리에 다시 한번 얼어붙었다. 누군가가 현관 앞에서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놀이터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늑대였다.




"엄마.."


놀란 소년이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은 스스로가 비롯되었으나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소년이 태어나고 오래지 않아 엄마는 어딘가로 떠났다고 했다. 불러본 적도, 제대로 안겨본 적도 없는 엄마를 부른다는 것은 지극히 본능적인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집안에 거대한 늑대가 들어앉은 상황은 여섯 살 소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는지도 모른다.


늑대는 놀이터에서와 마찬가지로 몸을 일으켜 현관의 소년에게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네 발을 딛고 선 키가 소년보다 한 뼘은 컸다. 소년을 잠시 내려다보던 늑대는 눈을 감더니 소년의 앞에 엎드렸다. 갑작스러운 늑대의 행동에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소년은 적어도 이 짐승이 자신을 해치려 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졌다. 아빠와 큰 개를 쓰다듬었던 기억을 되살려 엎드린 늑대의 이마를 어루만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쓰다듬어주다 보면 사나워 보이는 늑대도 기분이 풀려 보금자리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조용히 엎드려 있다고는 해도 거대한 야수의 머리를 쓰다듬는 일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대개 여섯 살 소년들은 엉뚱한 일에 용감한 법이다. 엎드린 늑대의 미간 바로 위를 쓰다듬기 위해 소년이 손을 뻗는 순간, 갑자기 눈을 번쩍 뜬 늑대가 고개를 쳐들고 순식간에 소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너무나도 놀란 소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잔뜩 움츠린 소년의 이마에 따스한 무언가가 닿았다.

늑대의 이마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늑대가 나타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