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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맹 Jul 16. 2020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면서요.

내 아이만은 맡아줄 수 없다는 보육복지의 사각지대에 서서.

"아이에 대해 알기는 하면서 어린이집에 보내시는 건가요?"


"아이가 누워만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다른 어떤 이야기를 해드릴 수 있겠어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지 않으니 무조건 아침에 흔들어 깨워서 일찍 등원시키라는 담임교사의 요청이 있었다. 이후 하원을 할 때면 낮잠을 안 잤다는 한숨 섞인 만 반복한다는 친정어머니의 얘기를 전해 듣고, 우연히 마주친 원장에게 낮잠 얘기만 계속하시니 집에서도 스트레스가 있다고 하자 나온 답변이다.

그리고 곰이에 대하여 20여분 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조심스럽지도 정중하지도 않은,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당신 아이를 맡고 있는데 불평씩이나 할 수가 있느냐는 항의와도 같은 하소연이었다.

곱씹어보면 아이 보기가 힘드니 퇴소하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 말을 직접적으로 들었어도 나는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냥 그렇게 짧게만 얘기해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때 들은 긴 이야기와, 담임교사가 알림장을 통해 표현했던 감정적인 후속 대응은  오랜 시간 나에게 상처로 남아 있다.


당시의 곰이는 가만히 눕거나 구석에 앉아서 특정한 빛이나 사물의 측면을 보며 시각추구에 열중하는 좋아했다. 두 돌이 좀 지나서였으니 호명 반응도 많지 않았을 거다.

그런 시각을 아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세상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는 없다.

얼핏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오랜 시간 함께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는 건,

지시 수행이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에 답답해하느라 아이가 진짜 보고 있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할 여유가 없다는 거다.

학기 초라 대안이 없었지만 쫓겨 나오듯 퇴소했다.

그리고 그즈음 아이의 발달검사 결과가 나왔다.

"장애"라는, 상상해본 적도 없는 진단을 받았다.



"어머니, 죄송하지만 장애아동은 아이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 당시 나는 복직 반년만에 부서 이동 발령을 받아서 야근도 모자라 주말 출근까지 해야 했다.

이사를 하고 계속 엉망인 집안 정리를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급하게 장애통합반이 있는 어린이집을 알아봤지만 학기 시작 두 달만에 자리가 있을 리 없었고,

다행히 단지 내 어린이집에서 가을 오기 전 통합반 1개를 더 개설할 계획이라기에 당분간 그냥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보내기로 했다.

아이는 평일에 할머니와 집에 있다가, 주말에는 엄마 직장과 치료실에 함께 출퇴근하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냈다.

본인은 편안해했지만 아이를 그렇게 두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그래도 뾰족한 수를 내지는 못했다.

정신없는 직장생활과 어수선한 집안일, 장애 진단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내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나는 이미 과포화상태였다.


그러다 어머니도 잠깐씩 나가서 바람도 쐬고 은행일이라도 보시라고 아이돌봄 서비스를 신청했다.

친정에 드리는 생활비도 만만하지는 않아서, 일주일에 3일만 네댓 시간씩 도움을 받았다.

우리는 소득이 초과되어 비용을 모두 부담하는 이용자였지만 그래도 저렴했고, 무엇보다 사람을 구하고 검증하는 데에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했으니 그걸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오후 시간에만 도움을 받아서 아이 밥이나 목욕 같은 일은 부탁할 게 없었지만,

그래도 오셔서 스케치북에 그림 그려주고 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어머니의 표정도 좀 편안해지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처음, 내가 국가의 도움을 받는구나 라는 실감을 했다.

출생신고 후 처음 양육수당을 받으면서, 무료 예방접종을 시키면서, 매달 어린이집 보육비를 결제하면서, 그리고 아이돌봄을 쓰면서.

너무나 감사했다.


그렇게 한두 달쯤 지났을까.

아이돌봄 담당 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혹시 아이에게 장애등급이 있나요?"

공단에서 장애등급 판정을 내리고 결정통보서를 받은 게 며칠 전인데,

복지 시스템이 이렇게 빠른가 놀라며 무슨 일이신지 물었다.

돌보미 선생님 말씀으로는 장애가 있는 아이인 것 같다는데, 중증장애 등급을 가진 아동은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기에 확인차 연락드렸다고 한다.

아이가 진단받은 지적장애는 경증장애 등급이 없다. 가장 낮은 등급이 3급, 즉 진단되면 모두 중증장애다.

돌봄 도우미 분이 느낄 수 있을 만큼 아이의 상태가 남에게는 도드라져 보이는 거였나...

그렇지는 않았다. 우연히 집안 서랍을 열어 보다가 내가 저녁에 꺼내 읽던 <지적장애 아동의 언어치료> 책을 발견하고 기관에 물은 거란다.


기관 담당자는 친절했다.

아이돌봄 대신 장애아 가족 양육 지원사업이 있다는 걸 알아봐 주고, 아직 시스템에 장애 등급이 뜨지 않으니 당분간은 담당자가 이 사항을 모르는 걸로 하고 그냥 아이돌봄을 이용하시라는 배려를 해주었다.

그렇게 감사한 배려를 받고 서비스를 옮겨 다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이용하실 수 있는 다른 사업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장애아 가족 양육 지원사업의 서비스 대상자는 기준중위소득 120% 이하의 가정이었다.

우리는 서비스 비용을 부담해도 되는데, 대상 자체가 안 되니 소용없단다.

장애인 활동 보조 서비스도 있다는데, 그건 만 6세 이상 대상이라니 12월생인 아이가 초등학교에나 들어갔을 때 이야기다.

친절한 아이돌봄 담당자는 도청에 여러 번 문의하는 수고까지 해주었지만 결국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비장애아동의 부모는 소득이나 재산과 상관없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도움을, 아이가 장애인이 되면서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도움을 받으려면 실직을 하거나 월급이 줄어서 소득이 적어져야 한다.

장애인 보육에 대하여 따로 교육받은 적이 없는 일반 돌봄 종사자가 중증장애인을 돌볼 수 없다는 원칙에, 예외가 없음이 못마땅하지만 동의한다.

그렇다면 대안이 있어야 한다.

그래 잘 벌면 특수교육받은 사람을 구해서 수고비를 비싸게 주고 아이를 맡기면 되겠지.

그런데 그런 사람을 어디 가서 찾을 것이며, 게다가 일주일에 2~3일 몇 시간씩만 돈 안 되는 일을 하러 여기까지 와줄 조건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우리는 중간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월급쟁이 부부일 뿐, 대단한 자산가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가 아니다.


친정어머니 좀 힘드시라고 하면 된다.

내가 더 열심히 살면 된다.

그래 길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분통이 터졌다.

하루아침에 내 아들이 장애인이 된 것만도 가슴 미어지는데,

이제 장애인인 네 자식은 네가 알아서 해야지 뭘 남의 도움씩이나 받으려 하냐고 조롱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기약 없는 휴직을 했다.

물론 일주일에 몇 시간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해서 휴직을 한 건 아니다.

추가 개설한다던 통합반은 결국 해를 넘기고도 생기지 않았고,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애전담 어린이집을 보내며 서류를 들고 지역 구석구석을 떠돌아다니는 긴 고생 끝에 통합반이 있는 시립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도 있다.

그럼 된 것 아닙니까?

예, 이것만도 감지덕지지요.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통합반 아이들 3명을 전담하는 담임교사가 한 분 계시지만 그분도 퇴근을 해야 하는데 나 직장일 끝나고 올 때까지 계셔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원칙적으로 어린이집은 4시부터 통합보육이니 담임반과 상관없이 당직교사의 몫이다. 선생님들 모두 좋은 분들이니 기꺼이 아이를 봐주시겠지만, 그래도 장애통합반 아이를 통합보육으로 저녁 7시까지 매일 맡긴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맡길 수도 없는 것이, 통합반 아이들은 치료를 받으러 다니느라 너무나 바쁘다.

대부분 오후 한두 시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더 일찍 하원 해 치료실에 가야 한다.

공공기관인 지역 복지관의 치료 일과는 정확히 오후 6시면 모두 끝나고, 사설센터가 1~2시간 더 늦게까지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니면 어린아이들의 컨디션 때문에 늦게는 치료를 잡지 않는다.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 치료를 오후 7시에 잡아 퇴근을 뛰면서 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나도 힘이 들지만 그 늦은 시간 치료실을 오가는 34개월 된 아이의 피곤한 얼굴을 보는 건 할 짓이 아니었다.

결국 적게는 주 4회에서 많으면 7~8회 이상도 되는 치료실 픽업을 대신해줄 사람이 없으면,

엄마의 직장생활은 불가능하다는 게 내 경험의 결론이다.

그 부분을 가족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휴직을 했어도 그렇다.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아이의 원거리 등하원과 빡빡한 치료 일정을 대체해줄 사람이 없다.

아이 본인이 아파서 치료를 빠지는 것도 시간이 아까운데, 내 사정 때문에 치료를 미룰 수는 없으니 방법은 하나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자식을 키우기 위해 철인 28호가 된다면, 장애 아이 엄마는 죽지도 지치지도 않는 좀비라도 돼야 한다.

복지관에서, 치료센터에서 마주치는 엄마들 대부분은 그렇게 좀비처럼 아이만 쫓아다니며 살고 있다.

아니면 엄마의 연로한 부모님이 다 같이 매달려있거나.


대답해줄 사람이 있다면 묻고 싶다.

장애 아이의 엄마는, 부모는,

자식을 키우기 위해 비장애 아이의 부모보다 더 큰 희생을 해야 하는 건가요?

장애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에게 매달려 있는 게 당연한 일인가요?

Yes. 라면 죄송합니다.

죄인 주제에 제가 양심이 없었습니다.


육복지가 보편화되고, 요즘은 지역사회에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로 표현하며 마을교육공동체와 같은 사업을 꽤 많이 진행하는 것 같다.

나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와도 같다.

아파트 단지에 함께자람센터가 생겨 초등 아이들의 돌봄 공백을 메운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함께 자라지 못하는 아이라 할 테니 그 또한 남의 얘기다.

온 마을이 정성을 들여 키우는 그 한 아이에 내 자식은 없다.

온 책임이 부모에게 지워져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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