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맹 Jun 20. 2022

내 양육의 목표는 자식의 독립

장애 아이 부모의 미래도 모두와 같기를.

우리 가족 중에는 고양이도 한 마리 있다.

그 아이 이름은 "탱구".

2014년 봄에 태어나 우리 집에 왔으니 벌써 8년을 넘게 산 어른 고양이다.

리액션이 극도로 부족한 남편과, 아직 발화가 안 된 곰이, 그리고 "야옹"과 "그르릉"밖에 하지 못하는 탱구까지,

나는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농담을 하곤 한다.


"우리 집에서
말을 할 줄 아는 건
나 밖에 없어."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건,

무한한 애정과 돌봄을 대가 없이 줄 수 있다는 거다.

자식을 키우는 것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사람이 사는 집 안에서 동물이 훈련을 통해 소화할 수 있는 신변 문제들은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나는 탱구와 죽음으로 이별하는 그날까지,

화장실 모래를 치워주고

사료와 물을 채워주고

씻겨주고 발톱을 깎아줘야 한다.

또한 끊임없이 떨어지는 털을 매일 치워내야 나머지 가족이 쾌적하게 집에 있을 수 있다.

그건 함께 살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감당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일이다.


아이는 달랐다.

당장은 돌보기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성장할 테고,

결국은 모든 일을 스스로 하거나, 가르치면 흉내라도 낼 정도는 될 예정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렇게 되니까.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힘들어도 할 만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시간이 흘러도 곰이의 성장은 제자리걸음이었고

가르쳐도 안 되는 게 너무나 많았다.

어쩌면 몸이 다 자라 성인이 된 후에도

사회인으로서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이

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르겠다.

탱구랑 너무 닮았네, 이 녀석.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대변 문제를 해결 못 해

주말마다 온 식구가 똥과의 전쟁을 하게 될 줄,

정말 몰랐는데.

매일 아침 등교하면서 엄마가 옆에 없으면

실내화를 갈아 신고 들어가기도 어려운 아이일 줄,

미처 상상해보지 못했다.


받아들이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내 자식이 다 커서도 내 품을 떠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니 사실은, 절망적이었다.

이게 뭔가, 내 인생이.

억울하고 분해서 내 부모의 이기심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나는 지금도 그런 마음들의 연장선 상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이 엄마로서 내가 목표하는 양육의 최종 도착 지점은

다른 엄마들과 같다.

곰이의 독립.


2019년, 얼마가 될지 모를 휴직에 들어가며

나는 휴직의 목표를 아이 장애 진단을 없애는 걸로 잡았었다.

지금 내가 양육의 목표를 아이의 독립으로 잡는 일이,

휴직의 목표처럼 실현 불가능한 일이 되려나.

모르겠다.

결국 그렇게 된다 해도

나는 내 미래가 다른 부모들의 미래와 같기를 바란다.

곰이는 탱구가 아니니까.





작가의 이전글 완벽하게 준비된 신입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