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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길작가 Jul 04. 2020

여자 나이 마흔, 사색이 필요할 때

몸과 마음이 자주 등을 돌릴 때 필요한 것

<잃어버린 영혼>이란 책을 보면 영혼을 어딘가 멀리 두고 온 지 오래인 어떤 사람이 나온다. 일을 아주 많이, 빨리 하면서 가끔 수학 공책 모눈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잘 살고 있는 그다. 어느 날 출장길에서 몸속에 이미 어떤 사람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의사를 찾아간다.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이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큰 혼란이 벌어져요. 영혼은 머리를 잃고, 사람은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거죠. 영혼들은 그래도 자기가 주인을 잃었다는 걸 알지만, 사람들은 보통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조차 모릅니다."라고 말하며 의사는 자가만의 어떤 장소를 찾아 편안히 앉아서 영혼을 기다려야 한다고 처방을 해준다. 그 이후 그는 언제 잃어버린지도 모르는 영혼을 기다리기 위해 수염이 허리에 닿게 될 때까지 기다린다. 어느 오후 드디어 지치고, 더럽고, 할퀴어져 있는 영혼과 만나게 된다. 다시는 영혼이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조심하며 그들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엄마 나 영혼을 잃어버린 것 같아"  둘째 아이가 학원으로 바쁘니 내뱉는 말이다. 이 책을 본 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주인공이 떠올랐나 보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그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이와 난 왜 영혼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생각한 걸까.


논술 교사인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주고 김 빠진 사이다 같은 모습으로 우리 아이들을 만났다. '엄마, 눈 풀렸어" 둘째가 말해준다. "얼른 잘까?" 종종 이럴 때면 한없이 엄마로서 미안해진다.


많은 것을 움켜쥐려고 했다. 시계는 빨리 지나가고  내가 가진 항아리에  무엇인가 분별없이 채워 넣기에 바빴다.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편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논술 수업을 하고, 작가가 되겠다고 새벽에는 글을 쓰고 또 주말에는 강연을 들으러 나가고, 지금 아이들은 무조건 엄마를 응원해준다고는 하지만 조금씩 견고했던 일상이 흩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새벽에 깨서 빈종이 앞에 우두커니가 되어 어제 하다만 생각을 이어서 해본다. 무엇을 위해 나는 내달리고 있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내 시간을 그것으로 다 채웠건만 왜 한숨이 지어지는 것일까? 영혼을 잃어버린 그처럼 이미 내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이 텅 빈 느낌이 무섭게 엄습해온다. 나의 속도가 빨라 영혼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지 아이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고 글 쓰는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마음에 빨간 불이 켜지는, 양보가 없는 두 마음의 다툼이 아이들 싸움만큼 잦아진다.


그렇다. 틈 없이 채워진 일상이 문제였다. 내 몰 아치 듯한 일들로 점점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위한답시고 했던 많은 것들은 진정 나를 위한 것이었을까? 엄마로서 나의 행복의 근원인 아이들과의 시간이 나의 꿈을 위해 지불되고 있었다. 아이들의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는데 지금 그 시간들이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 내손에 아무런 추억이 남아있지 않을까 두렵다.


내가  내 삶을 겉돌게 하는 이 바쁨의 정체는 무엇일까?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이 되기 위해서  애쓴 것들이, 어쩌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도하게 증명하려 애쓰는 것은 아닐까? 꼬리에서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공회전된다.


견고한 일상 위해서만이 이상을 위해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성장을 이야기할 수 있다. 실은 모든 위험한 은 작은 균열에서 시작된다. 내 삶과 나, 나와 내 영혼 그리고 나와 아이들  사이 건강하게 느껴지지 않는 금이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점검이 필요하다는 신호음이 들려오고 있다.


잠시 생각해본다. 내 달리고 있는 나를. 그리고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내가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지나온 것들, 시간이 지나서도 없으면 안 되는 것들, 지난 뒤에 후회가 깊을 것들을 생각해본다.




이렇듯 몸과 마음이 자주 등을 돌릴 때가 있다. 몸과 마음이 등을 돌리지 않도록 그 사이 틈이 너무 벌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잃어버린 영혼을 기다리기 위해 어떤 장소를 찾아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이 나한테도 유효하리라, 그 처방처럼 어떤 장소에  편안히 앉아서 영혼을 기다리는 일은 나에게는 글을 쓰고, 달리기를 하며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나이가 듦에 따라 지금처럼 몸과 마음이 한통속이 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몸보다 느린 속도인 영혼이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마음의 추를 겨우 가운데로 데리고 와본다. 아슬아슬한 떨림으로 되찾는 마음의 균형점을 놓치지 않으려 글을 쓰던 펜을 잠시 내려놓고 운동화 끈을 매고 달리기 위해 길 위에 서 본다.


달리면서 금 내게 필요한 것과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지나고 나면 후회가 클 것은 무엇인지, 구분해서 바쁨의 정체를 해체해서 중요한 것을 다시 분별 하 시간을 가져본다. 어낸 자리에 지나쳐와 후회되는 것을 끼워 넣기로 했다. 놓치면 안 되는 것,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몸과 마음이 한통속이 되어 내가 내편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달리고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내 영혼이 나를 놓치지 않을 속도로 가기 위해. 순간에 존재하기 위해. 그 멈추지 않는 시간은  어쩌면  영혼을 기다리기 위한 또 다른 멈춤의 시간이자 비움의 시간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행복하게 살았다'는 마지막 페이지가 되기 위해 하루 한 페이지 분량만큼만 그렇게 살겠다고. 오늘도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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