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아, 장래희망은 아니었구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느낌은 좋았지만 그것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확인도 하지 않았다. 기적은 기적이다. 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라 불린다. 그렇지만 내게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일이 꿈틀댔다.
늦은 아침, 오전이 오후와 손을 맞잡을 무렵에 알림 소리가 나를 일으켰다. 어쩌면 희망이고, 불행이고 슬픔이자 새로운 시작이었다. 평범한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초조한 마음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확인 문자였다. 정확히 나의 중간 점수, 합격의 당락을 알려주는 메시지였다. 불쾌한 마음이 앞섰다. 어차피 아니, 당연히 내게 합격의 목걸이는 주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남들 다하는 시험 후 채점도 미뤄뒀다. 앞서 느낌이 좋았지만 그 기분이 끝까지 이어진 적은 많지 않았다. 경험으로 겁먹은 상태였다. 그래도 친히 문자메시지까지 왔으니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몸을 일으켜 주섬주섬 어딘가로 꾸겨버린 시험지를 찾았다. 행여 모를 희망을 찾으러.
빨간펜과 시험지를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초조했다. 익숙할 법도 하지만 무언 가에 떨어지고 좌절한다는 것은 내성이 생기질 않는다. 그게 사람이 하는 거절이든, 시험이 보낸 탈락이든. 용기를 냈다. 심호흡을 크게 한번 쉬고 모니터에 정답 번호를 쳐다봤다. 시험지를 한번, 정답을 한 번씩 번갈아 보면서 빨간펜을 들고 동그라미, 사선을 긋기 시작헀다. 춥진 않았다. 허나 몸은 사시나무 떨듯이 부르르 댔다. 어? 어? 숨죽이며 온 신경을 집중하던 내가 육성으로 소리를 내기 시작헀다.
예상과 달리 사선보다는 동그라미가 내 시험지를 뒤덮고 있었다. 걸린 시간이나 공부한 양은 항상 시험 앞에서 소심하게 행동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문제에 정답을 표시하는 동그라미는 그동안 수고했다고 나에게 안겼고, 틀린 것으로 나타나는 사선은 내게 이 정도는 괜찮다고 나를 토닥였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어쩌면 이 지긋지긋한 그리고 애매모호한 내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누구보다 이 기쁨에서 나를 반겨줄 부모님께 달려가리라. 방문을 벌컥 열었다. 기쁘게 소리쳤다. 엄마!
나보다 더 설레하셨다. 본인께서 합격한 것만큼 기뻐하셨다. 나는 이미 닳고 닳아 시험이라는 제도에서 좋은 것을 좋게, 슬픈 것을 슬프게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엄마는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한참 아무것도 아닌 일일수도 있겠지만 어머니께서는 아니셨다. 철부지 아들의 모처럼의 성공 가능성에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내 말에 집중하셨다.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어린아이처럼 맑았고, 세상 누구보다 초롱초롱했다. 맘 속 한구석이 숙연해졌다. 내가 아주 잠깐 눈물이 핑 돌았던 건 시험의 결과 따위가 아니었다. 엄마의 그 모습 때문이었다.
이게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출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