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
남편은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하고 우울증 약을 추가로 받아서 먹기 시작했다. 그 약은 효과가 좋았는지 남편의 우울은 빠르게 지워져 갔다.
남편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게 보였다. 식사를 하는 양도 늘었고, 한 달쯤 지나자 어느 일에는 웃기도 했다. 다섯 살 아이 특유의 재롱이 남편의 마음이 햇살처럼 퍼지기도 했고, 신부님과 하던 상담의 횟수도 점차 줄어들어갔다. 공황장애 증상이 올 때마다 긴급으로 먹는 약의 양도 점차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에는 그마저도 어느 날부터는 먹지 않는 날이 생겼다. 남편은 회사 사람들과 단절되고 나니 자신에게 집중하기 시작했고, 자신과의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는 만큼 집안의 분위기도 좋아졌다.
남편은 생각이 많아지면 머리로 열어 올라가는지 이마에 여드름이 맺혔다. 그러다가 생각이 사라지면 여드름도 사라졌다. 회사 다니면서 늘 춥다고 말하던 것들도 보약 2재를 다 먹고 나자 오히려 덥다며 땀이 많이 났다. 아무래도 혈액순환이 되는 모양이었다. 조금만 더워도 땀이 났지만 지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실업수당 신청을 하고 교육을 다니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고 한다. 이렇게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들이 많구나, 자신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 자신만이 부서진 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세상에 나만 부서져 내린 것 같단 생각이..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남편에게 자신만 그렇다는 그런 생각들은 한층 더 바닥으로 사람들 끌어내렸었던 듯했지만, 그런 생각들이 들자 세상에 혼자만 부서진 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에 뭔가 안심 내지는 동일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을 하기엔 아직 무리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로 복귀하기에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회사를 관두고는 회사라는 단어만 들어도 듣기 싫어하던 역력하던 사람이 요 근래엔 회사 가야지 하는 말을 종종 한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고, 본인도 의지가 있다는 것이 회사를 복귀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 같아서 옆에서 보는 나는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