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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Oct 06. 2021

80대 프랑스인
블로거에게 배운 꾸준함

늦지않았다. 나도 당신도 

La persévérance finit toujours par payer. 
꾸준함은 언제나 보상받게 되어있다.


한국에 70대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80대 블로거 할머니가 있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를 처음 만난건 2017년 크로아티아 여행을 할 때 였다. 티비를 켜도 알수 없는 방송만 나오니 숙소에서 무심코 켜봤던 유튜브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계모임 메이크업 튜토리얼' 같은거였는데, 한마디로 말해서 너무 신선했다.유쾌한 할머니의 입담과 손녀딸의 위트있는 편집까지 더해져 나는 그 뒤로도 쭈욱 영상을 한번씩 찾아봤더랬다. 


프랑스어 이야기를 하다가 별안간 박막례 할머니를 이야기를 한 이유는 프랑스에서도 나에게 박막례 할머니 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을 주신 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9년 처음 블로그를 개설해서 프랑스어를 주제로 포스팅을 이어가겠노라고 야심차게 선언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블로그는 OO건재, OO인테리어 같은 온갖 광고성 블로거들의 이웃추가가 한창 이어지던 참이었다. 


당시에 회사에서 나의 앞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그래도 내가 잘 할 수 있는 프랑스어를 살려보자 싶어 조금씩 포스팅을 시작했다.  그리고 늘 생각만 해왔던 일을 행동으로 옮겨 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인지, 그리고 그 사람들은 어떤 컨텐츠를 원하는지 알아보자 싶어 포스팅을 하나씩 해가면서 조회수가 많아지면 그 쪽으로 컨텐츠 방향을 잡아보자 싶었다. 물론 처음에 무턱대고 시작했기 때문에 도무지 알 수 없는 황량한 사막에 던져진 기분을 여러번 맛보던 중이었다.

시도는 하고 보는 나의 도전정신이 어느정도 통했던 것일까.  초반에는 포스팅이 규칙적이기도 했고, 또 사람들이 궁금해 할 만한 일상속에 프랑스어 같은 이야기를 올려서 몇번 블로그 메인 화면에도 소개되기도 했었다. 점차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뭐가 있을까 싶어 고민하다가, 내가 프랑스어를 한창 배울때 알고 싶었던것들 위주로 올려보기로 했었다. 카테고리가 외국어이다보니, 단연 외국어 공부법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다양한 공부법 중에서도 듣기능력, 말하기 능력을 함께 키울 수 있는 팟캐스트를 소개해보자 싶었다. 


정말이지 까마득한 학부시절만 해도 투박한 녹음기로 들려오는 성우의 목소리가 전부였는데, 이제는 프랑스인 앵커의 목소리와 패널들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니 공부할 수 있는 컨텐츠는 정말이지 많고도 많았다. 그 중에서 당시에 내가 즐겨듣던 방송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우리나라 라디오 처럼 사연을 소개해주고 각 주제마다 관련 전문가가 함께 패널로 참석해서 이야기를 듣고 또 함께 토론도 하고 대부분이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만한 표현이 많이나오는 방송이었다.  대학원 때부터도 매번 핵무기니, 유가파동이니 온갖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텍스트에  뉴스에, 시사토론에 지칠때면 휴식처럼 찾아서 듣던 프로였다. 




올해 7월을  끝으로 근 10년간 장수하던 프로그램은 막을 내렸지만, 다시듣기는 아직 유효하다! 출처:https://www.rtl.fr/sujet/on-est-fait-pour-

En attendons-nous trop des autres?

(다른 사람에게 너무 기대하는 걸까?)

Ces femmes qui nous inspirent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여성들)

Se remettre avec son ex:fausse bonne idée?

(ex와 다시 시작하는것, 잘못된 생각은 아닐까?

















제목만 봐도 흥미로웠던 주제들을 프랑스어로 들을 수 있다는 점에 꽤나 자주 듣던 프로그램이었다. 



글쓰기가 더 나은 삶에 도움이 되는가?
(Ecrire peut-il nous aider à mieux vivre?) 


실시간 까지 찾아듣는 열정이 없어도, 팟캐스트 리스트에 지난 방송이 주제와 함께 올라오니 관심있는 주제가 나오는 날에는 한번씩 클릭해서 듣기가 편했다. 한번은 방송 주제가 글쓰기였다.  


글쓰기가 더 나은 삶에 도움이 되는가?

(Ecrire peut-il nous aider à mieux vivre?) 


블로그도 시작한데다 글쓰기가 주제라니 나를 위한 방송인가 싶을정도로 흥미가 생겨서 더 재밌게 들었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작가이자 감독이 패널로 나왔고 청취자 인터뷰로 더더욱 흥미로운 분이 나왔다. 


모니끄(Monique)할머니는 2009년부터 블로그를 시작해서 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레시피며 서평과 같이 본인에게 기쁨을 줌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포스팅을 하고 계셨다. 당시가 2019년이었으니, 그때 82세라고 하시면  72세에 시작하셨다는 이야기인데 일단 시작 시점도 놀랍지만 그 이후에도 무려 10년이나 넘는세월을 블로그를 운영해 오셨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20대가 한창일 무렵 학부졸업을 남겨두고, 그때도 나는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은것같다'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꽤나 자주했던것 같은데. 그런생각이 얼마나 쓰잘데 없는 일인가 하는걸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그렇게 신선함에만 그쳤다면 이렇게 까지 글로 풀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거다.

어쨋든 내 블로그에 할머니 이야기를 싣고 싶었고, 그래서 블로그에 찾아가 글을 남기기로 했다.


한국에 사는 김오뚝인데, 할머니의 이야기를 포스팅하고싶다고.

머나먼(?)한국에서 프랑스어로 글을 보내주는 이가 많지는 않았을것.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글을 남겼는데 금새 답이 왔다.10년을 넘게 이어오는 블로그지만 나이가 나이니만큼 한번씩 그만 둘까 생각을 하다가도 글을 쓰고 나누는 기쁨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또 계속 해오고 계시단다. 


그렇게 할머니의 허락을 얻어내어 블로그도 캡처하고 링크도 달았다. 답장을 받은 사실만으로도 좋았지만, 내 이야기를 또 본인의 블로그에도 올려주셔서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신기하다, 놀랍다'는 반응을 보는것도 재미있었다. 


박막례 할머니가 그랬듯 꾸준하게 영상을 올렸던 것 처럼, 할머니도 꾸준하게 글을 올리고 블로그를 유지해오면서 라디오 방송사에 연락을 받았고 그렇게 해서 한국에 있는 김오뚝이에게까지 그 소식이 전해지는 쾌거(?)를 만들어 낸것이다. 


글쓰기는 글을 쓰는 자신에게도 기쁨을 선사하는 작업이자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임과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영감을 갖게 하고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일이 분명하다. 

글을 쓰면서도 나이가 있으시니 2년 새에 혹시라도 하는 마음으로 들어가봤는데. 이게 웬걸. 오히려 2년 전보다도 블로그는 더 발전해 있었고 이제는 메인에서 할머니 얼굴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출처:https://mere-grand.over-blog.com/


프랑스어를 했을 뿐인데, 유튜버는 아니지만 프랑스판 80대 블로거도 만나고, 또 그나라 언어로 소통도 할 수 있고. 참 꾸준하지 못한 내가 한가지 꾸준한게 있었다면 프랑스어가 아닐까 싶은데, 그렇게 이어온 프랑스어가 삶의 곳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결실을 맺어가는 것 같다.


 다시한번, 언어는 과연 나의 세계를 풍부하게 해주는 도구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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