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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색 Aug 20. 2023

세상이 두쪽나도 내편에게

안녕, 부모님!

엄마아빠, 안녕. 둘째딸이에요.


이렇게 편지를 쓰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어릴 적에는 줄 수 있는 게 직접 쓴 편지밖에 없어서 그거라도 건네곤 했었는데, 이제 돈 좀 번다고 물질적인 것으로만 마음을 전달하려고 했네.

진심은 현물로 전해지는 것보다 직접 입에서 입으로 전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는 거, 이미 엄마아빠에게서 경험해서 알고 있는데 말이에요.


대학생 때 적어내려갔던 편지가 마지막이었나. 아니, 어쩌면 취업하고서 첫 월급선물로 드렸던 꽃 용돈박스와 함께 전달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아요. 그 편지에도 호강시켜드릴게요! 라고 자신만만한 글씨체로 적어놨으려나? 지금 생각하면, 아마 엄마아빠는 그 말이 기분좋은 거짓말임을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이제 이 아이가 돈을 벌고 내 가정을 꾸리게 되면 엄마아빠를 호강시켜줄 여유재산은 없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거라구요. 그저 아이가 부모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말이 '호강'시켜준다는 말임을 알고 기분만큼은 좋았던 거였을거라 생각해요. 벌써 아빠는 그렇게 말하곤 하잖아요. 나중에 우리 돈만 안 빼앗아 가면 다행이라고. 그건 다행이에요. 절대 엄마아빠에게 손 벌릴 생각은 없거든요. 하하.


내 생의 지붕이었던 엄마, 아빠. 물 들어칠라 꼼꼼하게 지붕을 막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요. 지금도 고생하고 있는 중이라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두분의 보살핌을 받아 한점 부족한 것 없이 자라났어요. 두분 밑에서 태어나 자랄 수 있었던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어. 혹시나 우리를 키우며 엄마아빠는 왜 우리를 낳았을까라고 생각한 적 있나요? 사실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엄마아빠는 힘들게 우리를 키워냈으니까. 그 과정에서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쳤을 수도 있다구요.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죄책감을 가지지는 말아요. 우릴 포기하지 않아준 것만으로 부모님은 훌륭한 부모님이었다는 걸 아니까요.


일년 전만 하더라도 집에서 독립하겠다고 발버둥치던 나, 모든 일의 원흉을 가족에게서 찾았던 나, 착한 딸이 되지 않겠다며 엄마에게 소리지르며 울던 나. 참 이기적이죠? 어제 사주를 봤는데 아저씨가 그러더라구. "너는 너 위주로 생각하며 사는 팔자야." 뭐, 맞는 말이라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래도 이제 마음을 고쳐 먹어볼 거예요.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서 내 불행의 원인을 찾지는 않을게요. 1년간 혼자 살며 느낀 바는, 내게 휴식처는 가족이라는 거였거든요. 본가에 갈때면 차려지는 엄마아빠의 사랑이 담긴 밥상, 하나라도 더 챙겨 가져가라며 쇼핑백 가득 쌓이는 먹을거리. 자취방에 뭐가 고장났다 하면 출동하는 아빠. 엄마아빠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도 가지 않아요.


항상 의지만 하고, 도움만 받아 미안해요. 나날이 나이가 들어가는 엄마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얼른 사회에서 자리잡아야겠다고 생각해요. 먼 미래에, 엄마아빠가 도움이 필요한 날이 온다면 항상 곁에 있을게요. 부모님에게 든든한 딸내미가 되어볼게요.


직접 전하지 못하고 오늘도 익명을 빌려 이렇게 글을 올리네요. 다음 돌아오는 엄마 생신에는 꼭 직접 쓴 편지를 가져가 볼게요.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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