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해가 수평선 너머로 넘어간 지 한참이 돼서야 퇴근길에 오른다. 터덜터덜. 날이 화창할 때는 마냥 가볍기만 하던 발걸음이 달빛 아래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렇게 30분을 걸어 도착한 집 앞. 그 앞에 서서 고개를 젖히고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나, 둘, 셋. 오늘 하늘을 빛내는 별은 세 개로구나. 평소와 달리 기분이 두둥실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마음이라는 호수의 침전물처럼, 고여 있을 뿐이었다.
"하늘이 맑아서 너 생각이 났어. 오늘은 웃으며 출근하겠구나, 하고."
언젠가 천문대에 데려가 주었던 따뜻한 인연이 나와 우연히 마주쳤을 때 했던 말이었다. 그때 알았다. 내가 남들보다 하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하늘이 맑으면 미간에 힘이 풀리는, 어찌 보면 참으로 단순한 사람이었다.
끝이 어디일지 알 수 없는 광활한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 어쩌면 내 몸뚱이까지 간섭이고 통제라고 느껴지는 내게 하늘은 도피처였을지도 모른다. 숨을 단전 끝까지 들이마셨다가, 더 이상 혈액에 산소가 남아 있지 않다고 느껴질 때까지 하늘을 보고 숨을 내쉬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특히 어두운 단색의 밤하늘을 좋아했다. '여기서 저기까지'라고 경계선을 정해놓지 않은 검은 도화지에서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별을 세는 행위를. 그와 함께 갔던 천문대에서는 사실 별을 보지 못했다. 하필 구름이 많은 날이라 별과 달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 기억이 가물거리며 난다. 별을 잔뜩 볼 생각에 신나 대기하다가 마주 보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던 그 때의 우리도 기억 한 편에 남아있다. 그 때 보지 못한 별을 보러 어느 날엔 캠핑장으로 향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우리는 화로에 불을 피워두고 캠핑 의자에 앉아 담요에 몸을 파묻었다. 고개를 젖혔을 때 마주하는 별무리에 마음이 설렜다. 그렇게 우리는, 하늘에 콕콕 박힌 별들이 어둠을 밝히는 희망이라고 시시덕거리며 몇 개의 희망이 머리 위에 떠 있으려나 세 보곤 했었다.
물론 지금 내 옆에 그는 없지만 여전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이 설렜기에, 높낮이가 없어진 내 감정들이 어색했다. 희망을 찾기 위해 올려다본 하늘이었건만, '칠흑 같은 밤하늘에 떠 있는 별 세 개'라는 사실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지쳐서 그렇다고, 조금 쉬고 나면 다시 내가 느끼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토닥였다. 조금은 두려웠던 것도 같다. 작은 것에 느낄 수 있던 행복을, 작은 것에 행복해했던 나를 잃게 될까 봐.
영화 '인사이드아웃 2에서 기쁨이는 말한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기쁨이 줄어든다는 것일지도 몰라." 영화를 볼 때에는 납득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인정하기 싫은 문장이었다. 일상에서 소소한 순간에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순간을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그 문장이 떠올라 버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정말 그런 걸까. 뾰족하고 날카로운 경험들이 여린 마음을 헤집어 결국 굳은살이 배기고 어떤 경험에도 무딘 사람이 되는 것. 누군가는 '성장'이라고 말하는 그 과정으로 감정이 희석되는 것이라면, 나는 유예하고만 싶었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도 새로움을 느끼는 어린이와 단단한 어른, 그 사이를 배회하고 싶었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희뿌옇게 빛나는 가로등이 눈에 들어온다. 온전히 검었던 공기가 탁한 회색으로 물들어 가는 장면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