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Lovers - Mad World
그래서 난 속에 담아둬
어차피 미친 세상이니까
나는 그래도 괜찮아
어차피 미친 세상이니까
어린 시절 꽤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에 '너는 입으로 다 까먹는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이랑 제대로 말도 못 섞는 주제에 저런 이야기를 왜 이렇게 듣고 살았는지는 지금도 모를 일이다 마는, 여러 순간순간마다 저런 이야기를 뒤에서 듣곤 했다. 잘해놓고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까지 이야기했다나. 나름은 솔직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타인들로부터 배운 뒤에도 나도 모르게 울컥울컥 진심이 나온다. 보통은 비꼰다고 하거나, 비뚤어졌다고 한다. 요즘엔 그렇다. 잘한 것도 없이 심사가 뒤틀린 탓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까먹을 것마저 다 사라진 기분이다.
어제는 어쩌다 보니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보통은 집 앞 카페라도 나가서 뭐라도 끄적이거나 넷플릭스라도 보고 오는 편인데, 정말 머뭇거리다 보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그냥 집에 있기로 했더랬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대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싶기도 했고. 삼십 대 중반의 노총각 아들내미와 부모님이 한 집에 앉아 있는 모습은 사실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지 싶어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회사는 어떻냐는 아버지의 질문이 날아왔다. 결혼 질문(이라기보단 핀잔) 이 아니셔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냥 뭐, 별로예요. 정도로 답했다. 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요즘엔 회사에 눈칫밥 먹으며 다니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래도 1인분은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에는 그 1인분의 기준조차 모르게 된 것 같다며, 억한 심정에 옆에 더 못하는 것 같은 사람을 비하까지 해가며 퍽퍽한 회사생활을 토로했다. 몇 년 동안 이 일을 하는 것을 반대하셨던 부모님께 반항했던 아들 입장에서 할 소리 안 할 소리 다 했다. 결혼도 못하고 속 썩이지만, 그나마 사회에서 밥벌이라도 제대로 하고 있는 줄 알았던 아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갑자기 죄송스럽다.
프로 월급쟁이 선배인 아버지의 조언이었다. 다 안다고. 그런데 그것을 바깥으로 꺼내는 순간, 넌 눈칫밥도 못 얻어먹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적어도 그 말을 뱉으려면 네가 스스로 밥 정도는 지어먹을 수 있을 때 뱉으라고. 지금의 네 마음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회사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합리적인 곳이라고. 네가 '밥'을 지을 수 있는 기술이 있으면 회사는 , 조직은, 세상은 너를 살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저 나이가 들어 먹고 살 기술을 만드는 것만 생각해라. 그런 자존심보다 너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해라. 그 자신이 있다면 다시 이야기하자. 뭐 이런 이야기셨다. 그리고 이게 다 네가 결혼을 안 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라는 역시나 상투적인 맺음말로 부자간의 대화를 마쳤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장난스러운 말투로 타인을 향해 뱉는 이야기들은 그저 철없는 내 오기나 알량한 자존심 같은 것이었고, 그것이 내 삶을 바꾸어준다거나 그렇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정말 그 짧은소리가 나오는 순간에 위안을 얻는 것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정말 마음속에 있는 진지한, 진짜 생각을 말로 뱉지 못한 게 언제부터인가를 생각했다. 사회에서든, 개인적으로든 정말 하고픈 이야기는 속에 숨겨놓은 채 어린아이처럼 땡깡이나 부린 꼴 같아 에어컨을 틀어놓은 방인데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눈칫밥밖에 못 먹는 주제에.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기엔 역시나 나는 애새끼구나 라고 스스로를 빈정거리며, 암호가 걸린 곳에 일기를 써두었다. 뭐, 일종의 '밥 뜸 들이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적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시작하는 한 주는 눈칫밥이라도 맛있게 먹어보려 노력해야지. 입을 앙다문 채 꼭꼭 씹어먹으면 단 맛도 나는 게 또 밥이라는 거라. 나 주제에 찬 밥 더운밥 가릴 때냐. 그래도 속이 터져버리기 전에는 '내 밥'이 잘 지어졌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