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골목에 위치한 작은 서점에 기꺼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독립출판'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독립출판은 우리에게 생소한 단어였다. 그러나 독립출판과 독립서점의 관심이 점차 커지면서 출판시장의 판도가 달라지기도 했다.
독립출판물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바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일 것이다. 작은 방에서 홀로 써 내려간 독립출판물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다. 크라우드 펀딩과 동네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던 이 독립출판물이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대형서점에 입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출판이 진행될 때의 표지는 우리가 서점에서 보던 귀여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표지와 확연하게 다른 디자인이었다. 창가의 빛이 들어오는 침대를 보여주는 그림이 그려진 표지는 '혼자'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며 우울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채도가 낮은 색이 입힌 표지는 눈길을 끌만한 표지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공감이 가는 문구들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크라우드 펀딩이 성공하여 출판을 할 수 있었다.
1인 출판사 '흔'을 통해 내용은 그대로이지만 표지가 바뀌어 탄생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은 대형서점과 각종 온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로 등극되며 그야말로 대성공의 역사를 이루었다. 모순적인 제목으로 인해 흥미가 생기기도 했지만 이 책이 인기를 끈 이유 중 표지가 한몫을 했다. 귀여운 일러스트 그림과 톡톡 튀는 색감과 다르게 우울증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을 통해 독립출판은 더 이상 마니아 층만이 열광하는 장르가 아닌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독립출판물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중들은 '독립출판'과 '독립서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형서점과 다른 독립서점만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대형서점에 가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바로 베스트셀러 1위부터 10위 목록이다. 베스트셀러를 보면 최신 트렌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나의 취향은 철저하게 배제된 채 '대중적인'이라는 단어에 우리는 강요받는다. 물론 이를 통해 지식 습득에 도움을 받지만 우리의 취향은 점차 사라져 가게 된다.
나는 전공 과제를 위해 기획서를 작성할 때, 트렌드를 분석하기 위해 대형서점에 자주 들렀다. 한 번은 위에서 소개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 표지처럼 눈에 띄는 색에 귀여운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는 표지의 책들이 즐비한 것을 보며 '책의 유행'에 적잖이 실망한 경험이 있다.
그런 내가 독립서점에 처음 간 날 그곳은 정말 신세계였다. 독립서점마다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카페로 비유했을 때, 대형서점이 스타벅스라면 독립서점은 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동네 커피숍이었다. 나의 취향과 딱 맞는 서점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안락함은 굳이 찾아올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요즘은 독립서점이 더욱 세분화되어 생겨나고 있다. 사진 책만 진열되어 있는 사진 책방, 여성의 이야기를 나누는 페미니즘 서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긴 여행 서점 등 주제를 가진 책방들이 생겨나며 나의 취향에 맞는 서점을 알게 되는 일은 설레는 일이 되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하나의 서점을 통해, 비로소 나의 취향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서점을 찾는다는 것, 바로 나에 대해 알아간다는 행위가 되었다.
내가 처음 독립서점에 갔을 때 그곳은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다. 베스트셀러 칸은 없지만 책을 카테고리별로 묶어 진열되어 있었다. 보통 대형서점에서 보는 카테고리는 경영, 경제, 철학, 여행 등으로 나뉘어있다. 그러나 그 독립서점은 '마음이 병들었을 때', '퇴사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코너',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등으로 카테고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웃기지만 공감되는 카테고리를 보면 책이 더 와 닿았다. 공감이 가는 카테고리 속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지갑이 열릴 수밖에 없었다. 책을 들여다보면 사장님의 투박한 글씨로 적힌 코멘트도 인상 깊었다. '책을 정말 다 읽고 쓰신 걸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했지만 안 읽었으면 또 어떠한가! 책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 소개하고 있는 사장님의 모습에 충분히 진심이 느껴졌다. 서점에서는 투박하지만 정성이 담긴 큐레이팅하고 있었다.
독립서점을 너무 편애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대형서점도 자주 방문하며 좋아한다. 최근에 방문한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재밌는 북 큐레이션을 발견했다. 스테디셀러 칸에서는 '함께 보면 좋은 책'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오랜 시간 꾸준한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와 연관된 책을 추천해주니 둘 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대형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 최근에 나온 유명 작가의 신작만을 크게 홍보하여 관심을 뺏고 책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책과 내용에 집중하여 큐레이팅 하는 형태는 '책을 파려는 목적' 보다 '좋은 책을 알리는 목적'으로 다가와 진심이 느껴졌다.
화려한 홍보와 마케팅보다 중요한 것은 책에 대한 정성이다. 사람들은 책을 추천하는 서점의 정성스러운 태도에 감동받고 이는 책 구매로 이어진다.
어느 동네의 작은 골목에서 발견한 독립서점에 조심스럽게 방문한다. 조용하고 은밀한 이 공간에서 색다른 책들을 마주하고, 책들을 홍보하는 서점 주인의 정성이 흥미롭다.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 골라 안고 나오는 걸음에 마음이 풍족해진다. 하지만 그 작은 골목길을 다시 찾기는 쉽지 않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역 근처 대형서점을 찾거나 이제는 온라인으로 쉽게 구매하기 때문이다. 가끔 전에 갔던 독립서점이 생각나면 수고스러운 걸음을 옮겨 오랜만에 찾곤 한다.
독립서점은 '자주' 방문하기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독립서점을 '자주'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은 왜 수고스러운 걸음을 마다하면서까지 그곳을 방문할까?
독립서점은 '책을 판매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넘어 '책을 공유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많은 독립서점들이 독서모임, 워크샵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내가 자주 가는 동네의 독립서점은 '페미니즘 독서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정기모임을 부담스러워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요즘은 원데이 클래스도 운영되고 있다.
대형서점은 직원들이 일을 하기 때문에 서점의 마감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독립서점은 대부분 사장님이 스스로 운영하신다. 그곳도 역시 마감시간이 있지만 그 후의 시간은 사장님의 재량이다. 또한 운영시간 중 일부를 모임 시간으로 활용하여 그 시간 동안은 서점 방문이 제한되기도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독립서점에서 모임이 이루어진다.
독서모임이라 하면 굉장히 딱딱해 보이고 지루하다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생각보다 간단하고 즐거운 모임이다. 서로가 각자 책을 읽고 공유하거나, 같은 책을 한 권 선택하여 필사를 하기도 한다. 사실 '무엇을 하는지' 행위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다. 이곳에 모이는 이들은 '소통의 공간'을 찾는 것이다. 책과 소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일이 바로 은밀한 이 공간을 자주 찾는 이유이다. 한 번 시작된 모임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대형서점에서는 할 수 없는 독립서점만이 가진 매력이다.
이 글은 대형서점의 단점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독립서점의 장점을 이야기한 것이다. 요즘은 대형서점도 기존과 다른 다양한 형태의 북 큐레이팅, 온라인 서점을 통한 프로젝트 형태의 이벤트 등이 생겨나고 있다. 교보문고에서는 개인 출판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렇듯 대형서점도 늘어나는 '개인 창작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독립출판을 더 이상 '소수가 하는 것'이 아닌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길 바란다.
예전에는 성공하는 사람이 책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저마다의 인생은 하나의 여행이고, 여행 중의 에피소드를 글로 엮어내는 것이 바로 책이다.
'나도 한 번 글을 써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면 가까운 독립서점을 찾아 방문해보기를 권한다. 그곳에서 나의 취향을 찾아보고, '나도 책을 써볼 수 있겠다.'는 용기를 갖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