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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다솜 Feb 28. 2022

보통을 닮은 하루가 있기에 우리는 살아간다.

[서평] 시선이 닿는 모든 순간에게 - 김해안



부끄럽지만, 독립출판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독립출판물들을 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다.

나의 독립출판 경험은 단순한 호기심에 시작되었고, 휴학을 하고 해보고 싶은 일들을 해보자는 다짐 아래 그중 하나였던

‘독립 출판하기’를 실현하기 위해 나는 독립출판 서포터즈 활동을 시작했다.

그 활동을 통해 나는 다양한 독립출판 작가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나 역시도 꾸준히 글을 모아 책을 출판해보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책을 출판한다는 일은 실로 엄청나 보이기에, 그것을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버킷리스트의 한 항목을 힘차게 체크했다.

그 뒤로 나는 복학을 했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준비를 하며 코로나 시국에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하여 일에 적응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2년의 시간이 흘러 있었고, 조금은 일에 적응한 나는 다시금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가져보았다.


어느 날은 혼자만의 휴식을 보내기 위해 책 한 권을 골라 카페에 가려고 책장 앞에 섰다.

최근에 산 책들을 보니 전부 다 주식, 부동산, 청약 등 경제 서적들만 수두룩했다.

일을 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독서’라는 스스로에게 주는 숙제가 있어,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꾸준히 책을 사곤 했다.

퇴근길 들리는 서점은 대형서점이었고, 베스트셀러 칸에 머물러 책을 고르고 있었다.

나의 취향은 배제된 직장인이라면 알아야 할 트랜드, 경제 등의 책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물론, 대형서점에도 위로와 힐링이 주제인 에세이가 넘쳐나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여유가 없었기에 누군가의 행복하고 활기찬 일상이 담긴 에세이를 읽을 여력이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더 클 것이다.

작년의 나는 처음으로 1년이라는 시간을 회사생활을 하며 보냈고, 그 속에 나는 없었다.

사회와 회사에 대한 못난 마음이 가득한 직장 1년 차 미생이었다.


2022년 새해가 밝았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코로나 시국처럼 올해도 작년과 똑같겠구나 싶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어른답지 않은 어른’이 될 것만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답지 않은 어른은 세상에 불만이 가득하고, 그렇다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또 없는 모습이다.

나의 소중한 27살을 헛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작년과 똑같은 한 해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다시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단단해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하며,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자꾸 나를 보내야 했다.


좋아하는 공간을 생각하니, 주저 없이 서점이었다.

대중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똑같은 내용을 찍어내는 듯한 책들이 즐비한 대형서점이 아닌,

독자보다 저자 스스로에 집중되어있는 책들이 가득한 동네서점.

정확히 말하면 서툴지만 솔직한 독립출판물이 가득한 책방이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갔는지, 책을 출판했는지 조금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읽어 내려간 책은 ‘시선이 닿는 모든 순간에게’이다.

나의 책 ‘사소한 사서함’과 많이 닮아 있는 책이라 공감과 위로가 많이 되었다.

작가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지만 꿈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글쓰기를 선택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일하는 동안이었다면 그냥 흘러 보냈을 보통의 하루들도 기록하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처음 할 때는 감사했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 감동받았던 순간 등 빛나는 순간들을 써 내려간다.

그게 더 수월하고 쓰는 동안 행복하니깐.

그 뒤로 글쓰기가 어느 정도 습관이 되고 나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하지 못할 말, 외면해두었던 상처들, 말로서는 굳이 꺼내지 않을 주제들을 소재로 글을 써내려 가곤 한다.

글이 조금씩 깊어진다.

글을 쓰며 암흑 같던 일들을 수면 위로 올리는 순간 상처에 쓰라리지만 이윽고 단단해진다. 꼭 상처가 사라지기 전 굳은살이 베기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책을 읽다 보니 별거 아닌 순간에도 글 소재를 찾아 행복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글쓰기를 하며 하루하루 같은 일상에도 작은 의미를 부여하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스스로에 솔직해지고, 주변이에 따뜻한 안부를 묻는 여유가 있던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보였다.

나이를 먹고, 직장을 다니는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만은 그때의 나보다 솔직하지 않고, 서툴고, 넓지 않다.


p. 174 | 가장 보통의 하루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독립출판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독립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그때의 나는 책 출판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글을 썼다.

어쩔 때는 억지로 소재를 찾고 글을 꾸역꾸역 써 내려갔었다.

책 출판 목표를 달성한 뒤로 나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글을 쓰더라도 나의 생각이 담긴 글보다는 남들이 보면 좋은 글, 도움이 될만한 글의 소재를 찾아 써내려간다.

 

나와 반대로 저자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꿈을 외면하지 않고, 결국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글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 스스로에 집중했다.

계속해서 모든 순간에 시선을 둔 덕분이 아닐까?


그때의 나와 닮은 저자의 책을 읽으며 지난날의 내가 아련해진다.

모든 시간에 이유가 있다는 저자의 말에 위로를 받고, 다시 작지만 소중한 일상의 부분을 어루만지고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내가 독립출판을 좋아하는 이유는 친구를 만드는 기분이 들어서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저자이지만, 글을 통해 많은 것을 공유한 오래된 친구인 기분이 든다.

저자의 책에도 인용된, 소설가 다니엘 클라타우어의 ‘가깝다는 것은 거리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극복하는 것이다.’ 말처럼

우리는 책을 통해 저자의 삶을 유영하고 내적 친분을 쌓을 수 있다.





삶이 무채색으로 가득하고, 퍽퍽한 처럼 느껴진다면  책을 추천한다.

당신에게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생기를 선물해주고, 우유를 건네줄 것이다.


“시선이 닿는 모든 순간에게.” - 김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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