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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다솜 Aug 21. 2022

클레임과 컴플레인에 대하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슈퍼바이저로 수십 개의 매장을 관리하다 보면 여러 업무를 복합적으로 하게 된다.

점주님들을 응대하고, 매장을 방문하여 점검하고, 신메뉴 출시 시 레시피 교육 및 발주를 안내하고, 매출을 관리하고, 매장에 인입된 고객 클레임 또는 컴플레인을 해결한다.

많은 업무 중 가장 예민한 부분은 바로 ‘컴플레인 응대 및 처리’이다.


담당 매장에 고객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CS 부서로부터 연락이 온다.

본사 홈페이지 내 ‘고객의 소리’로 방문한 매장에 대한 문제점 지적 또는 불만이 인입된다.

담당 바이저는 최대한 24시간 내에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피드백을 전달해야한다.

매장에 내용을 전달하고, 매장 입장을 듣는다.

중간 입장으로 어떤 문제로 일이 발생했는지 확인 후, 필요시 매장에 매뉴얼 준수 또는 서비스 교육을 진행한다.

그러나 간혹 말도 안 되는 컴플레인을 거는 고객들도 있다.


우리는 클레임과 컴플레인의 개념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클레임과 컴플레인은 언뜻 보면 같은 의미로 보이나, 차이가 있다.


클레임(claim)은 객관적인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다.

예를 들면, 제공받은 음식 내에서 이물질이 발견되었을 때 클레임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러한 클레임이 인입되었을 때, 담당 바이저는 매장에서 어떤 경로로 이물질이 들어가게 되었는지 바(bar) 위생 점검 및 위생 교육을 진행하게 된다.


컴플레인(complaint)은 불만족스러운 고객 서비스, 직원/점원의 태도 등 주관적인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다.

예를 들면, 매장에 방문하였을 때 점원의 불친절한 태도에 대한 지적이다.

이런 경우, 바이저는 매장 점원의 의견도 들어본 후 재발 방지를 위하여 서비스 교육을 진행한다.


클레임과 컴플레인은 더 나은 서비스 제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다.

긴장감을 놓지 않고 청결도를 유지하며 근무자 서비스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고객은 항상 올바른 클레임, 컴플레인을 제기하는 걸까?

특히 주관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컴플레인’은 말의 온도에 따라 갑질로 변질되곤 한다.


담당 매장에서 받았던 황당한 컴플레인 몇 가지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목이 따가우니 공기청정기를 구비해주세요.


매장 내 환기가 부족해서 목이 따가울 수도 있다. 쾌적한 공간을 제공해드리지 못한 점은 죄송한 부분이며, 매장에서 개선되어야 하는 부분이 맞다.

그러나 매장 내에서 공기청정기를 구비하는 것이 필수는 아니다.




카페 아르바이트로 어린 친구들을 고용해야 손님들이 오고 싶지, 주부 같아 보이는 분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하다니 실망이네요. 해당 근무자 퇴사처리 요청합니다.


해당 근무자의 서비스가 불친절했다면 당연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지만, 근거도 없는 무례한 주관적인 입장의 컴플레인이 인입되었다.

이런 말을 당당하게 본사 고객의 소리함에 올리는 태도도 놀랍다. 컴플레인이라는 명분으로 익명성이라는 벽 뒤에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말을 서슴없이 하는 그 사람의 태도에 컴플레인을 걸고 싶었다.




제가 먼저 왔는데 뒤에 온 사람 음료가 먼저 나갔네요. 순서에 혼돈이 있어 미안하다고 하시지만 사과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세요.


해당 내용은 매장의 잘못이 명백했다. 그러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건네었으나 무리한 요구를 하며 갑질을 하는 컴플레인이었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진정성이란 무엇이며, 누군가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동이 올바른 해결책일까?




해당 말은 순화하여 작성하였다. 실제로는 비속어도 서슴지 않고 컴플레인을 작성하는 고객도 비일비재하다.

이밖에도 무리한 요구, 특정 근무자 모욕 등 컴플레인이라는 단어로 위장한 다양한 갑질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다.


물론 고객은 왕이 될 수 있으며, 고객이 있기에 브랜드가 존재함은 인정한다.

서비스와 품질이 나아질 수 있도록 올바른 지적은 필요하나, 본인의 감정을 쓰레기통처럼 버리는 수단으로의 컴플레인은 회의감만 남을 뿐 개선이 될 수 없다.


일을 하며 다양한 클레임, 컴플레인을 마주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 역시 사람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순간이 많았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고 있는 감정노동은 언제쯤 나아질까?

성숙한 어른으로서 올바른 말로 컴플레인을 하길 바라는 마음은 욕심일까?


최근 읽고 있는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책에서 이런 내용이 나온다.


다른 사람 종이 멸종하는 와중에 호모 사피엔스를 번성하게 한 것은 초강력 인지능력이었는데, 바로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이다.

친화력은 타인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게 하며, 지식을 세대에 세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우리의 친화력에도 어두운 면은 존재한다.

우리가 아끼는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위협이 되는 무리를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연민하고 공감하던 곳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공감하지 못하므로 위협적인 외부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적대성과 공격성이 강해지는 세상이 아닌, 관용과 포용력이 넓혀지는 세상을 바라며 나부터 다정한 사람으로 거듭나자고 다짐하는 마음으로 읽고 있는 책이다.


공격적인 언어로 문제를 차갑게 얼려 깨뜨리기보다, 명확하지만 다정한  한마디로 문제를 녹이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sommem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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