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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놀다 주머니시 Mar 24. 2020

연병장의 고라니

김선률

<연병장의 고라니>


연병장을 가로지르는 고라니를 생각한다

잘 닦인 연병장에 사열된 병사들은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고라니가 지나간다는 걸 알 수 있지 고라니의 울음은 너무나 신경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곧이어 병사들도 연병장을 뛰기 시작한다

너른 연병장을 둥글게 달리는 병사들 하지만 연병장을 가로지르는 고라니는 될 수 없다


너는 고라니를 좋아한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왜 고라니가 되지 않았을까


줄지어 모든 병사들이 엎드린다 누구도 이족보행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는 점이 이곳의 맹점이다 다시 너른 연병장을 네발로 뛰는 병사들

고라니의 울음소리는 마치 아이가 우는 것 같아


윗동네에선 어제로 백오십육 마리의 멧돼지가 죽었다고 했다 그래도 고라니는 죽지 않았으니까 어떤 게 더 좋은 것일까 네 발의 사람은 생각하지만


죽은 돼지를 옮기는 것만으로 일이겠구나 땅을 더 파야겠네


예 그렇습니다


곧이어 고라니가 사열대로 나타나며 죽은 멧돼지 네 발의 사람에게 소리친다


부대 차렷


부대


차렷


전방에 대하여 경례


하지만 누구도 경례할 수 없다 지금은 손이 없잖아 그래서 죽은 거야 넌

조종간을 단발로 놓은 병사가 웃으며 말한다 탄알집을 인계받았다 좌상탄 확인 이상무

아니 우상탄 열 발인데 어떻게 좌상탄이지 병사는 놀라 총을 놓친다 떨어지며 노리쇠 풀리고 당겨지는 방아쇠



죽은 것을 옮기는 것만으로 일이겠구나 땅을 좀 더 파야겠네


예 알겠습니다.






#매주의글_5회차


#전쟁 #묵음
#김선률
@sep.twenty.f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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