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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Jun 02. 2019

오랜 학생의 진심

존경하는 선생님께, 답장

선생님, 저 오랜 제자 문영이예요. 교생실습으로 선생님과 다시 담당교사와 배우는 자로 함께 했던 행복한 4주 동안 편지로 두어 차례 제 마음을 표현했었는데, 말로 쉽게 표현되지 않는 어떤 깊은 마음은 아무래도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지만 알려지지는 않은 제 공간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언젠가 꼭 선생님께서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보여 드릴게요.

선생님, 맞아요. 학교다닐 때부터 이미 수도 없이 표현했지만 선생님께서는 제 인생에 정말 큰 영향을 주신 분이에요. 부끄럽지만 사실 전 중학교 때까지 학교 수업을 흥미롭게 들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수학을 가장 좋아했지만 수학 수업은 좋아하지 않는 모순된 학생이었어요. 아마 제가 중2병 걸린 학생들의 철부지 없는 모습에 상처 받으신 선생님들의 위축된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더 철없는 학생이기에 그랬겠죠. 그런데 선생님의 첫 수업에서 저는 제 고1 생활과 앞으로의 수학 공부를 한껏 기대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제가 그토록 선생님의 수업을 좋아했던 이유가 선생님과 제 코드가 잘 맞고, 저희 학년과 선생님이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는 나이 차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때까지 제 수학선생님들은 모두 부모님 뻘 이상 되시는 분들이었거든요. 그저 ‘쌤 짱!’이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선생님의 에너지 넘치시는 수업과 재미있는 수업 분위기, 반을 휘어잡는 선생님의 능력이 선생님의 연습과 훈련의 결과였던 사실을, 수업을 들으면서 해주시는 초임 시절 이야기들을 통해 듣게 되었고, 학생들을 생각하시는 마음이 어린 제게도 전달된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을 더 존경하게 되었고, 수학 시간이 가장 행복했어요. 에이~하시겠지만 진짜예요! 공개적인 공간에 말하기 부끄럽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의 관계로부터 이런저런 상처도 많이 받았고, 지금까지 연락 닿는, 선생님이 떠올리시는 그 친구들 말고는 당시에 마음 기댈 곳이 반에 딱히 없었거든요. 그랬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수학을 쌤께 정말 행복하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죠.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되어서도 내내 선생님을 존경했어요. 그땐 아침마다 혼자서 칠판에 수업하는 척도 해보며 선생님과 비슷한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보기도 했던 것 같아요. 말도 안 되는 문제를 들고 가서 선생님을 괴롭혔던(?) 순간들마다 제 속마음에는 선생님에 대한 무한 신뢰, ‘우리 선생님 최고’ 이런 생각이 깔려있었던 것 같아요. 아, 근데 그렇게 선생님께 찾아가는 게 제가 엄청 감사드려야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교생 기간 동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공부하고자 하며 상담을 하는 2학년 2반 친구들에게 저는,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과목 선생님께 많이 질문하라고 이야기해주었어요.(혹시 친구들이 쌤께 너무 많이 찾아와서 쌤이 힘드시다면 죄송해요ㅠㅠㅠㅠ) 제가 학생일 때 선생님께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하시는 것을 보면서 저는 그 자체로 많이 배웠었고, 선생님과 같이 문제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학생인 제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들도 그런 경험을 통해 공부를 재밌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듯 옛 생각 많이 나던 교생실습이 어느새 끝이 나버렸네요.

 선생님, 교생실습 마지막 날 제게 써주셨던 편지에, 고등학교 때 제가 많이 힘들었음을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선생님, 저는 그저 선생님께 수학을 배우고 수업에 참여하는 그 시간만큼은 그런 고민들에서 해방되는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진심으로 행복했고, 그래서 제 고민들을 알아채기 힘드셨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수학 시간이 아니라고 해서 힘든 티를 팍팍 내는 학생은 아니기도 했지만요!(그러니 선생님 미안하다는 말씀은 거두어주세요) 그런데 저는 그 말씀에서 제 고등학교 시절을, 7년 후의 제가 아닌 한 선생님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어요. 본인의 아픔을 웃음으로 가리는 아이, 티 없는 듯한 발랄 속에 외로움과 불안함을 가진 아이. 그때의 저는 그런 아이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런 제 모습이 조금 불쌍하고 연민이 들었는데요. 만약 그런 학생에게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7년 후 학교현장에 나온 그 학생은 학교에서 친구들의 해맑음을 순수함으로만 보았을 거고, 차분히 공부 열심히 하던 한 아이 속의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에 공감하지 못했을 거예요. 오히려 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교생실습 기간 동안 학생들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고, 그 아이들을 보며 과거의 저도 스스로 다독이고 위로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선생님 저 다 컸죠? 임고 봐도 될까봐요!)

그리고 선생님, 저는 앞으로 선생님을 만나 배우고 성장할 아이들이 정말 부럽습니다.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과 식사를 하시는 내내 학교 현장과 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시는 모습, 제가 교생 중에 수업이 정말 힘들었던 순간에 선생님께서 저를 다독여주시는 모습, 학생들의 자라온 배경(자유학기제, 고교평준화제 등)을 생각하시며 수업을 바꾸어보시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이라는 말보다 ‘스승’이라는 말이 더 맞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 정성과 노력을 제자인 저희들이 어떻게 헤아릴까요.

이 4주 동안, 저는 ‘교사의 마음’에 대한 제 인식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선생님들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신경을 쓰시는 것만큼 학생들과 그들의 인생을 생각하시고 많이 사랑하고 계신다는 점, 알아도 계속 공부해야 한다는 말은 진짜였다는 것, 수업 때 학생이 단 한 명이라도 따라오지 않으면 마음이 아프다는 점, 수업 때 대답이 없으면 그렇게나 속상하다는 점, 아,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수업을 구성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교사의 작은 말과 행동이 학생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저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아이들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까 궁금합니다.
 눈물과 걱정으로 지도하시는 스승의 은혜가 하늘 같다는 말을 교생이 되고야 실감했습니다. 선생님, 은사님, 존경합니다! 앞으로 제게 가르침을 주셨던 선생님들께 감사하며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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