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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Jun 03. 2019

교생선생님의 진심2

사랑하는 교생선생님들께

 선생님들 다들 좀 쉬었어요? 하나둘씩 학교로 돌아갔다고 단톡방에 연락을 주고 있어요. 다들 어디 있나 좌표도 찍어 보내주고 있고요. 이제 다들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네요. 저는 금요일에 교생실습 끝나고 그 다음날 바로 서울 올라왔어요. 있잖아요, 나 마지막 날 같이 롤링페이퍼 쓸 때 내 진심을 다 전하지 못한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는데, 그냥 쌤들이랑 같이 있다는 사실에 또 잔뜩 신나가지고 집중도 잘 못하고 진지한 마음속 진심을 별로 이야기하지 못한 것 같아서 내내 아쉬웠어. 그래서 나 여기에 내가 모두에게 하고팠던 말들 다시 적어보려고 해요. 사실 조금 부끄럽긴 한데, 나랑 진지함이랑 어울리나 싶어서 더 올릴까 말까 고민되기는 한데, 이렇게 적어놓지 않으면 나중에 교생실습이 어땠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질까 봐 반은 일기, 반은 편지의 느낌으로 글을 써 봐요. 괜찮죠?(문영 버전) 좋죠?(fancy선생님 버전) 다 읽을 거죠?    


 저는 선생님들이 누구보다 좋은 선생님이 될 거라 확신해요.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는 모습도 정말 멋있었지만, 학생들과 상담을 하며 방과 후에도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들, 같이 운동장에 나가 뛰어노는 모습들, 예쁜 사진을 남겨주던 모습들, 학급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 상심하며 고민하는 모습들에서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정말 크게 느껴졌거든요.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난 절대 못할 것 같은데. 수업 준비만으로, 실습일지 작성만으로 하루가 버거웠을 텐데. 매일 집에 가면 피곤함에 바로 뻗는다고 말하던 선생님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급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었기 때문에, 학생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학생들과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행복했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하는 그 이상을 해냈던 거였잖아요. 그리고 서로의 과목들을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을지, 더 좋은 방법은 무엇일지, 학생들의 고민을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우리 선생님들 정말 멋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마지막날, 편지공장 풀가동


 또 선생님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정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누가 기뻐하면 다 같이 뛰어가서 기뻐해주고, 누가 슬퍼하면 다 같이 뛰어가서 슬퍼해주고, 바쁜 와중에도 서로의 고민을 따뜻하게 들어주는 선생님을 보면서 나, 정말 많이 배웠어요. 사실 몸 부딪히고 좁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다보면 누구든 토라지거나 속상한 상황이 올 수 있는데, 그러고도 남는데, 가족이라도 싸울 텐데,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아끼는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선생님들 덕분에 우리 교생부(ㅎㅎ)는 매 순간 끈끈하고 따뜻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들은 뭐가 가장 중요한지, 옆 사람이 아플 때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세심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인가 봐요. 아주 가끔가다 한 번씩, 제가 정말 우울했던 날이 있었잖아요, 그때마다 선생님들은 제가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려와 위로를 해주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하고, 이마트 힐링 노래를 틀어주기도 했죠. 평소에 잘 울지 않는 제가, 선생님들이 그렇게 위로해줄 때만큼은 너무 고맙고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도 많았어요.

우리, 체육대회날

 흠, 조금 더 속 깊은 곳에 있는 얘기를 하자면, 모두 그렇겠지만, 저는 올해 중에서 교생실습을 했던 5월이 가장 즐거웠어요. 사실 나, 원주여고에서 늘상 좋은 일만 있던 건 아니었어요. 어릴 때부터 인간관계에 있어서 고민이 정말 많았단 말이에요. 야자 끝나고 혼자 엉엉 울면서 집에 간 적도 있고, 내 뒷담화를 공개적으로 하고 있던 학급 문을 열었을 때 일순간 싸해지는 정적도 경험해봤어요. 쌤들 이런 거 경험해봤어요? 되게 슬퍼요. 한없이 낮아지는 자존감. 외모 때문이었을까, 심성이 지나치게 착해서였을까.(TMI에요) 마땅히 잘못한 것도 없었는데 가끔가다 한 번씩 몇 아이들의 뒷얘기의 표적이 되곤 했어요. 뭐 그 나이 때가 다 그렇긴 하지만, 17살의 나도 위로해줄 것 투성이었어요. 물론 좋은 친구들도 주변에 정말 많았고, 좋은 추억도 너무 많아요. 지금 이 글을 읽는 내 친구들이 있다면 ‘엥, 너가 힘들었다고?’할지도 몰라요. 난 원래 어릴 때 남에게 힘든 걸 잘 말 못 했거든요.(지금도 좀 그렇긴 해요!) 아마 제 이 충격고백에 의문을 가지는 친구들은 내가 힘들었던 순간을 한 번도 꺼내놓고 이야기한 적이 없는 친구들일 거예요. 그렇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사실 마냥 웃을 수는 없었어요. 대학교 4년 내내 중, 고등학교 때를 생각하면 마음에 응어리 같은 게 남아있었고, 항상 그때를 생각하면 뭔가 아쉽고 서글펐어요. 원래 그렇잖아요. 강렬한 기억은 잘 잊히지 않잖아요. 근데 나 이제 원주여고를 생각하면 더 이상 응어리 같은 게 남아있지 않아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선생님들과 원 없이 웃었고, 원 없이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기억들 모두 선생님들과 함께했던 새로운 기억으로 덮였어요. 치료가 됐다는 말이 더 어울리려나. 제게 교생실습은 ‘선생님이 될까, 취직을 할까’ 하는 미래지향적인 고민을 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때 힘들었다면 힘들었을 기억들을 한 장 한 장 되읽어보며 웃으며 ‘안녕’하고 떠나보낸 시간이기도 했어요. 다시 원주여고 갈 때 사실 걱정도 되게 많이 했어요. ‘그때 힘들었던 게 기억나거나, 같이 오는 선생님들 중에 혹시라도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도 들고. 근데 그럴 새도 없이, 그런 걱정을 했을 필요도 없이 정말, 정말 행복했어요. 그게 누구들 덕분이었는지 알아요? 바로 선생님들 덕분이었어요. 항상 따뜻했던 선생님들, 웃으면 같이 웃고, 울면 같이 울고, 힘들면 같이 힘들어해 주던 사랑스러운 선생님들 덕분에 내게 원주여고는 가장 그리운 곳, 가장 따뜻한 곳이 되었어요.


 교생실습 내내 ‘우리 교생실습 끝나고도 만나자, 연락하자’ 수없이 말했고,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가 되었지만 각자의 삶에 치이고, 공부가 바빠지면 혹시라도 언젠가 연락하기 애매한 사이가 되어 버릴까 봐 많이 걱정돼요. 근데 선생님들 보고 싶으면 내가 먼저 단톡방 끌올 해도 되죠? 우리 중 누군가가 쭈꾸미집 가자, 강릉 가자, 파티룸 빌리자, 해돋이 보러 가자 할 때 임용 준비 때문이면 어쩔 수 없더라도 귀찮아하면 안 돼요. 약속해요!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다가 또 아기들 보러 원주여고 집합합시다. 그때까지 다들 제가 여러분을 진심으로, 가족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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