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빛을 볼 수 있을까? 아직은 낯선 'CBD'에 대하여
새로운 시장 기회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만 열리는 것은 아니다. 한 국가의 사회적인 가치관이 변화할 때, 타 국가와의 관계 변화, 경제 상황 변화 혹은 법 규제 완화 등에 의해 새로운 기회가 열리기도 한다. 기존까지는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던 것들이 환경적 변화로 인해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받게 되는 것이다.
오늘 소개하려는 시장 역시 한국에서는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존재로 여겨졌다. 오히려 위법한 것으로 여겨져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철컹철컹' 법원행이 되었을지 모를 소재다. 어쩌면 당신은 이 존재를 신문이나 뉴스의 경제면이 아니라 사회 면에서 더 많이 봤을지 모른다. 오늘 소개하려는 주인공은 바로 '대마' 다.
물론 해시시, 마리화나 등 환각을 일으키는 대마에서 추출할 수 있는 마약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인 의료용 대마와 주 성분인 CBD, 칸나비디올(Cannabidiol)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식물의 한 부류인 대마는 20여가지가 넘는 다양한 종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각 종에 따라 환각성이 높은 종과 환각성이 낮은 종으로 구분된다. 대마에는 정서, 면역 기능 등 인간의 몸에 생리적인 영향을 끼치는 성분들이 함유되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을 많이 받는 성분은 THC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로, 인간의 정신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치는 성분이다. 흔히 '대마초' 하면 떠올리는 환각 증상의 원인이 바로 이 성분이다. 그 다음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성분이 바로 CBD로, 복용자에게 심리적, 정신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여러 질병과 증상에 대해 효능을 보이고 있어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마리화나'는 THC의 양이 높은, 즉 환각성이 높은 종을 가공한 것이다. 건강 기능 식품으로 널리 알려진 '햄프'는 환각성이 낮은 종을 가공한 결과물이다. 햄프는 THC의 함량이 낮을 뿐더러, THC의 환각 작용을 억제하는 CBD의 함량이 높아 그 동안 화장품, 건강 기능 식품 등 산업용으로 사용되어 왔다.
위의 긴 설명을 압축하자면, 결국 환각성이 없는 안전한 산업용 대마 '햄프'에는 환각을 억제하는 CBD라는 성분이 있다는 내용이다. 대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왠 CBD라는 성분으로 튀었냐고 물으신다면, 이 CBD가 바로 '의료용 대마'로 여겨지며 해외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마리화나의 합법 여부를 놓고 찬반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북미, 즉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오래 전부터 대마에 대한 연구가 이어져왔다. 그 동안 아무 기능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CBD는, 연구를 통해 항염, 항스트레스, 통증 경감, 그 동안 치료가 어려웠던 질병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연구에 힘입어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세계도핑방지기구에서는 2018년 CBD가 함유된 오일을 도핑 약물 리스트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다양한 CBD 의료용 제품이 출시되어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마약류 취급에 엄격한 중국 역시 CBD를 의료용으로 가공하여 수출하고 있다.
의약품, 오일류 중심으로 사용되던 긍정적인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CBD는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미용과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와 더불어, '대마'에 대한 Z-세대의 호기심과 흥미는 'CBD 식음료' 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효능 성분인 CBD를 함유한 경우도 있지만, 산업용 대마인 햄프(Cannabis Sativa Seed Oil)를 함유하여 CBD의 성분을 소구하는 제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1. 필요에 따라 양을 조절해가며 섭취하는 CBD 젤리
유명 자전거 사이클 선수 플로이드 랜디스가 도핑과 관련된 여러 스캔들을 극복한 후 설립한 기업 Floyd's of Leadville은 CBD 특화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운동 후 통증을 경감하고 회복을 돕는 CBD 오일류 제품군으로 시작해서 최근에는 보다 간편한 방식으로 CBD를 활용할 수 있는 간식, 간편식 제품군을 선보이고 있다. 가장 최근 출시된 제품으로는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는 CBD 젤리가 있다. 라즈베리, 애플, 딸기, 블루 라즈베리 맛으로 구분된 상품들은 각각 함유하고 있는 CBD 양이 다르다. 10mg, 50mg으로 구분되어 있어 일반 비타민제처럼 섭취를 원하는 양을 선택하여 구매하면 된다.
여담으로, Floyd's of Leadville이 제품을 홍보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기업이 설립된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는 대마 관련 제품에 대해 직접 광고가 어려워 해당 브랜드의 CBD 제품 역시 직접 홍보가 어렵다고 한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선수 스폰서가 되어 간접적으로 홍보하는 것. 전직 선수 경험을 살려 프로 사이클링 팀 "Floyd's Pro Cycling Team"을 런칭했다. 선수들에게 직접적으로 CBD 제품을 제공해줄 수 는 없지만, 팀 활동과 제공되는 활동복에 프린팅된 브랜드 명으로 간접 홍보 효과를 노리고 있다.
2. 피부를 위한 바르는 CBD 화장품
새로운 원료의 발견에 기뻐하는 업계는 많고 많지만 특히 이 업계에서 열렬히 환영하고 있는 것 같다. CBD가 오일 형태로 피부에 도포되어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살려, 피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화장품 업계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아직 모든 국가, 모든 지역이 CBD에 열려있지는 않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보다는 지역 기반 소규모 인디 브랜드에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예 CBD를 메인 성분으로 소구하는 브랜드가 등장하고 있다. 인디 화장품 브랜드 CBD DAILY에서는 CBD를 적용한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비건 화장품'을 내세우면서도 CBD라는 특이 성분을 적용하여 차별성을 가져가고 있다. 기본적인 오일, 오일 밤, 마사지 캔들류에서부터 시작해 얼굴 피부에 적용 가능한 로션, 크림에서부터 샴푸, 컨디셔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위에 사용 가능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비단 인디 브랜드들만이 CBD 시장에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성장 가능성은 높아보이는 이 시장에 살짝 '발을 걸치는' 정도의 대응은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색조 브랜드 NYX Cosmetics에서는 최근 새로운 기초 화장품 라인을 런칭했다. 'BARE WITH ME'라는 명칭의 신규 라인은 크림, 립 오일, 아이 브로우 제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프라이밍과 보습 기능에 초점을 둔 라인이다. 해당기능을 소구하기 위해 적용한 성분이 바로 대마에서 유래한 삼씨오일 (Cannabis Sativa Seed Oil)이다. 기존 화장품 브랜드들이 동명의 원료를 함유했을 때 '햄프(Hemp)에서 유래한 원료'로 커뮤니케이션했었던 것에 반해, 해당 제품은 직접적으로 '삼 (Cannabis Sativa)'에서 유래했음을 밝히고 있다. 법적인 규제와 제조 공정 상의 이슈를 고려하여 직접적으로 CBD를 함유하지 않으면서도, CBD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사례라 할 수 있겠다.
3. 마시고 즐기는 CBD 음료
바르고 먹었으니 이제 마시는 일만 남았다! CBD는 다양한 음료 속에도 적용되고 있다. 깨끗하게 정제된 물, 탄산수, 차, 과일 쥬스, 커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CBD를 적용한 제품들이 소비재로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CBD는 '술' 영역에 진출할 예정이다. 대규모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나파 밸리의 한 와이너리에서 실험적인 제품을 내놓을 에정이라고 한다. 럭셔리 와이너리를 지행하는 House of Saka에서는 CBD를 함유한 올해 신규 와인 제품군 출시를 발표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논알콜 스파클링 와인에 CBD와 THC를 배합한 제품이다. 법적으로 CBD, THC류의 성분은 알콜과 함께 배합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논알콜 와인에 적용하여 제품이 개발되었다. 술과 대마의 조합, 글자로 봐서는 굉장히 위험한 조합같이 여겨진다. 와인이라는 고급 이미지를 가진 제품군에 CBD 성분을 적용함으로서, CBD 성분의 가치를 높인 한편으로 와인 업계의 시각에서는 젊은 세대를 타겟으로 접근성을 낮추려는 사례로 볼 수 있겠다.
최근 국내에서는 대마 마약류에 대한 연예인과 사회 고위층들의 불법 투여 이슈가 붉어졌다. 다시 한번 '대마'에 대한 사회적인 '붉은 딱지'가 붙게 되었다. 그와 별개로, 한국에서도 CBD 합법화에 대한 청원은 계속 되어 왔다. 대중들에게 환각제로 알려진 '마리화나'와는 별개로 장기 투병을 하는 환자들을 중심으로 청원이 지속되어왔다. 의약품류가 아니더라도 CBD를 함유한 식품, 오일이 통증 경감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해외에서부터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지속되는 청원에 힘입어, 2018년 11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다만 의료용으로 사용되는 모든 CBD 제품에 대한 규제가 허물어진 것은 아니다. 식약처에서 발표된 의료용 대마에 대한 실질 시행법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실제 '의약품'으로 허가받은 4종에 대해서만 수입을 허가하고, 구매처 역시 한 곳으로 한정시켜 CBD 제품을 개방하였다.
이렇듯, 아직은 국내 CBD 시장을 가늠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다만 조금이나마 개방된 시장을 함부로 닫을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확대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진단할 수 있을 뿐이다. '금기'로 여겨지다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게 된 의료용 대마 시장에서 마이크로 트렌드의 힘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업이 등장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