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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an 28. 2024

화려한 별 무리가 수원 시내에 정착하다

며칠 전부터 집 근처가 많은 인파로 들썩인다. 새롭게 떠오른 별천지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서고자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다. 솔직히 ‘그까짓 별 마당쯤이야.’라고 고고하게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렇지만 평소에는 쉽게 보지 못하는 화려한 풍경과 요란한 유명세에 비굴하게 의지를 꺾고 만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향한다. 사람들이 풍기는 욕망의 흐름에 절로 따라가고 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별 무리, 저 먼 곳에만 있다는 그곳이 드디어 조용한 동네 수원 장안구 정자동에 정착했다. 바로 온 수원 시내를 들썩이고 있는 대규모 쇼핑몰 ‘스타필드’ 이야기이다.


 북수원에 자리 잡은 정자동은 무척이나 조용한 동네였다. 이 지역은 도서관, 몇 개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들, 그리고 학원가가 자리 잡아 ‘아이들 키우기에 나쁘지 않은 동네’ 정도만 알려진 곳이었다. 이름 있는 쇼핑몰이 있는 것도 아니고, MZ들이 좋아하는 이름 있는 맛집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부동산 관계자들이 보기에는 특별한 호재가 보이지 않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매년 집값은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는 답답한 가격을 유지했다. 그냥저냥 조용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사람들의 삶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평범하게 흘러갔다. 그러던 동네가 갑자기 ‘**지오’라는 대단지 아파트가 턱 하니 등장하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위엄 있는 새 아파트의 등장으로 주변 아파트들의 기를 죽이더니, 이번에 ‘스타필드’까지 등장해 주민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스타필드(star field)’, 나무위키에서는 이 단어의 의미를 ‘1) 별들 그 자체, 2) 별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구역, 3) 별시야 자체’ 3가지로 구분 짓고 있다. 이 대형 쇼핑몰 관계자들이 어떤 의미로 그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지만,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잘 지은 이름임은 틀림없다. 사실, 이 주변 근처에는 이름 있는 쇼핑지역들이 몇 군데 있었다. 수원역 근처에 자리 잡은 전통 강자 AK몰과 신흥강자 롯데몰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얼마 전 스타필드 개관 전부터 이 쇼핑몰들에도 매서운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품질 좋고 싼 곳만 찾아다니는 뜨내기 소비자인 나도 눈치챌 만한 아슬아슬한 긴장감이었다. 그 결과 롯데몰은 올 4월 오픈을 목표로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선언하며 과감히 작년 연말 대목 행사 기간을 포기했다. 그 쇼핑몰들의 우려처럼, 드디어 등장한 ‘스타필드’는 온 지역의 소비자들을 블랙홀처럼 끌어당기며 매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그야말로, 찬란한 빛으로 온 주변의 별들의 빛들을 모두 빨아들이는 곳, 사람들의 들뜬 소망을 쉴 새 없이 끌어당기는 마성의 장소였다.


 처음에는 이런 곳이 집 주변에 생긴다는 것이 기쁘기만 했다. 사실 수도권에 살고 있다고 해도 매번 번쩍이는 서울 강남, 번화가들을 오가기는 힘들다. 물론 이런 화려함에 익숙하지 못하고 집에 가고 싶은 천성도 원인이다. 이런 번화가들에 몇 시간만 있으면 어떻게 집에 갈까, 걱정이 먼저 앞선다. 그런데 언제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리에 별마당 ‘스타필드’가 생긴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역사적 산물인 ‘세계문화유산’이 아닌 세속적인 결과물인 지역 명소를 소개할 수 있는 것도 뜻하지 않는 기쁨이다. 그곳에 숱하게 광고하는 것처럼 서울 강남 코엑스에만 있다는 ‘별마당 도서관’, MZ들이 사랑하는 머무를 수 있는 멋진 여가 공간까지 갖췄다니 얼마나 행운인가. 가까운 서울의 번화가를 바라보며 남몰래 가졌던 수도권 주민의 지역 열등감이 조금은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화서역을 지나 화서 먹거리촌 사이로 난 좁은 도로를 통해 차들이 하루 종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도로는 화서역 대로를 지나 정자동 스타필드로 향하는 핑크빛 길이다. 별마당으로 향하는 외부 사람들에게는 이 길이 단 하나의 ‘붉은 벽돌길’처럼 보일 것이다. 도로시가 오즈의 마법사로 찾아갔던 그 지루하고 험난했던 길 말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차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 스타필드로 향했다. 엄청나고 좋은 일이 가득할 것이라는 호기심을 가득 품은 채 말이다. 은색 빛무리가 가득한 스타필드가 눈앞에 펼쳐진다. 한눈에 다 담기지도 못하는 거대한 규모이다. 그 속으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꾸역꾸역 들어가고 있다.


 많은 인파에 밀려 ‘스타필드’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곳곳을 포진하고 있는 까만 머리들의 행렬로 주변 풍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맛있다는 카페도, 식당도, 옷 가게도 온통 검게 물들었다. 높이 올라가면 좀 달라질지 싶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8층까지 올라갔다. 그곳도 이미 사람들에게 점령당한 지 오래다. ‘스타필드’에 들어오기 전, 입장문을 들어서는 순간, 8층까지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연신 사람들의 무리에 휩싸였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스타필드’의 어떤 점이 조용한 동네를 이렇게 들끓게 만들었는지 말이다. 서울에만 있다는 소위 ‘핫한 맛집’들이, 화려한 볼거리가 그리고 쇼핑거리들이 이토록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을 허겁지겁 한 곳으로 몰아넣을 만한 마력이 있었던 걸까?


 ‘스타필드’ 8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과거 바벨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떠올린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은 신의 권위에 맞서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들의 오만함의 상징이다. 사람들의 이런 모습에 분노한 신은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러 개로 분리했다. 이 정도가 지금까지 알려진 바벨탑의 이야기이다. 그 탑이 무너지고 흩어진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단숨에 신의 권위에 복종하며 살았을지, 아니면 여전히 그 옛날의 바벨탑을 그리워하며 살았을지 모를 일이다. 사람들의 욕망이 덕지덕지 묻어 있고 많은 이들의 호기심이 꽉 찬 별마당을 바라보니 괜스레 바벨탑이 연상된다. 그나마 지독한 교통체증과 소비자들의 얇은 지갑이 호시탐탐 노리는 탐욕의 신의 손길에서 불쌍한 중생들을 보호해 주고 있다.


 이 숱은 악조건에도 또다시 가고 싶은 심리는 역시 별마당의 한쪽 구석이라도 즐기고 싶은 호기심 때문일까? 역시 별의 화려함은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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