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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un 20. 2024

글이 먼저일까? 아니면 책이 먼저일까?

오랜만에 에세이클럽 3기 글동무들과 온라인 모임을 가졌다. 그동안 있었던 삶의 근황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에세이클럽의 다른 기수가 최근에 낸 책이 화두에 올랐다. 이 도서는 출판사를 끼고 낸 터라 오래전부터 우리 기수의 관심 대상이었다. 막상 나온 책을 보니 작년에 출판했던 우리 POD 출간 책보다 훨씬 좋아 보여 내심 질투가 났다. 괜히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마냥 자랑스러웠던 작년의 결과물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사실 우리 기수가 공저 책을 출판사가 아니라 POD 출판으로 결정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 문우들은 책을 대량으로 인쇄해 재고로 쌓아두기보다는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개별적으로 인쇄하여 배송하기를 원했다. 대부분 우리 기수는 책 홍보를 드러내 놓고 할 만큼 외향적이지도 않았고, 다들 본인들의 생업으로 너무 바빴기에 출판사와 계약하기를 부담스러워했다. 둘째, 우리 기수는 매년 에세이클럽의 이름으로 다른 주제의 글을 써서 공저 책을 꾸준히 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여러 가지 신경을 써야 하는 출판사와의 계약보다는 POD 출간이 우리의 목적과 맞았다.


 그렇게 문우들이 만장일치로 한 선택이었지만, 막상 나온 공저의 결과물을 보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른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물건에서 드러나는 겉표지의 차이라고 할까? 물론 그 속에 있는 알맹이는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대기업과 같은 출판사가 마음먹고 포장한 책은 우리의 공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려했고 눈에 띄게 반짝거렸다.


 시무룩한 사람들의 그런 기색을 살피며 항상 우리 기수의 중심을 잡아주는 한 문우가 말했다.

 “사실 어디에서 책을 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저 글을 쓰겠다는 마음 그리고 매일 꾸준히 생각을 정리하는 노력이 중요하지 않겠냐? 우리 기수는 처음 결심했던 것처럼, 매년 다른 주제로 한 권의 책을 내겠다는 마음, 그리고 계속 글을 쓰는 그 목표만 이루면 된다.”


 문우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왜 나는 글을 쓰는가?’의 질문이 마음속에서 또다시 생겨났다. 수많은 작가가 자문했고, 베스트셀러 작문법에도 여러 번 언급되었던 단골 질문이다. 이 물음은 항상 쓰는 이의 마음을 쉴 새 없이 흔들어 놓는다. 글을 쓰기 힘든 상황에도, 글을 쓸 수 없는 경우에도, 그리고 글을 쓰는 방향성을 읽어버렸을 때도 ‘왜 나는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은 쓰는 이의 생각 가장자리를 오가며 비수를 꽂는다.


 글은 생각을 담은 옷이요, 책은 그 글들을 넣어둔 옷장이다. 일상을 살아가며 느낀 여러 생각들이 쌓여 글이 모이면 ‘책’이라는 멋진 옷장을 하나 장만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고민의 시작이다. 하루하루 생각들로 글만 쓸 때는 몰랐던 것들이 작품을 내겠다고 결심하는 순간부터 신경 쓰인다. 우선 어떤 성격의 출판사를 골라야 우리가 가진 ‘글옷’의 맵시가 잘 살지 알 수 없다. 지금의 형편으로 어느 정도 수준의 출판사와 거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출판사가 우리 ‘글옷’과 잘 어울리는지 그 이후의 문제이다. 급기야는 독자들이 우리 ‘글옷’이 둘러싼 ‘책 옷장’을 보는 시선들도 너무 신경 쓰인다. 결국에는 책을 내는 이유를 잊어버리고 지금까지 잘 쓰던 글쓰기마저 잃어버리기 쉽다.


 글을 쓰는 것과 책을 내는 것은 다르다. 글쓰기는 생각을 정리하고 본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작업이지만, 책 출판은 홍보와 마케팅과 영원히 멀어질 수는 자본주의의 결정판이다. 사실 출판사 입장에서도 ‘맨땅에 헤딩’하듯 아무 도서나 찍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택한 도서가 먼저 많은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돈’이 될 만한 책이어야 한다. 출간하려는 책이 시장의 황금을 끌어모을 수 있는 ‘화제성’이 있어야 하고, 그 도서를 구매할 만한 시장이 형성되어야 한다. 문장의 모양새가 좋고 나쁘고는 그 이후의 문제이다. 글은 순수한 ‘선비 정신’으로 유지할 수 있는 마음의 결정체라 할지라도, 책은 자본주의로 포장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품이다.


 그런 상황에서 계속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나는 왜 글을 쓰는가?’의 물음을 되새기며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글이 먼저일까? 아니면 책이 먼저일까?’의 질문에도 명쾌히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정답을 찾지 못한다면 ‘책을 내기만 하면 베스트셀러’이라는 망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글쓰기를 영원히 놓고 말 것이다.


 글쓰기는 지금 가진 생각을 다듬어 그 너머를 성찰하는 사람이 되는 작업이다. 글을 쓰는 도중에도 쉴 새 없이 마음의 부침을 느끼고 책을 낼 때도 수만 번의 번뇌와 고통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 길을 가고 싶다면, 쓰는 인간이 되고 싶은 이유를 붙들고 가면 된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많은 사람이 쓰는 인간의 가면을 쓴 채 지루한 현실을 견디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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