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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an 15. 2020

무기력이 짓누르는 날엔

카페를 갑니다

#
호박차를 마시며 무기력을 퇴치하고 있다.
오늘의 기분은 불만과 무기력이다.
어제는 분명 30대의 안정감과 행복에 대해 썼는데 말이다.
같은 사람 맞아요.
휴 업로드 안 하길 잘했지.
하루하루의 현실은 대체로 이렇게 왔다갔다 합니다.

무기력을 느끼는 날은 뭔가 해야지 싶은데 당장 할 기분은 안 드니까 일단 맛있는 무언가를 먹어서 기분을 조금 풀어준 다음에, 아 그런데 먹고 나니 잠시 눕고 싶네, 잠시 누워있다 보니 눈이 심심하잖아, 인터넷 서핑을 마구마구 하다 보니 아니 왜 이리 시간이 훌쩍 가지, 운동도 해야 하는데 밖은 너무 춥잖아, 그래 오늘은 쉬고 그냥 내일부터 하는거야, 이런 날도 있지..


이게 며칠 혹은 자주 반복되고 나면 슬슬 내 스스로가 미워지는 거다. 흐트러지긴 쉽고 핑계 대긴 더 쉽고, 자기합리화의 달인인 나는 ‘이게 다 인생의 여유지’ 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여유 좋은데, 그런데 나는 건강한 여유를 만들고 싶다.

건강한 라이프 말이다!
퇴근 하고 꼼짝없이 누워 밍기적 거리다가 그러다 저녁이 되면 또 눈이 말똥말똥 해 져서 늦게 잠이 들고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생활은(찔린다) 건강에도 혈색에도 기분에도 좋은 여유가 아니다.
그래 아는데.....

생각과 몸이 일치하지 않으니 나이탓인가 체력도 가늠해 보고, 절대 손이 가지 않는 영양제 바구니를 방문 앞 잘 띄는 곳에 배치하지만 역시나 여전히 먹지 않고 있고(대체 왜 안 먹는거냐고), 내가 너무 일이 많나 곰곰이 떠올려 보니, 맞네 어제는 촬영이 늦게까지 있어 힘들긴 했지, 그런데 그보다 이 정신 사나운 방 때문인가 방정리도 해 본다. 비중의 정도지만 하나하나 다 들어 맞다.

그런데 말했듯이 나는 일만 하다 죽기 싫다.(이 글이 먼저가 아닌데 먼저 올라와서 그렇지 아직 안 올라온 먼저 쓴 글에 있어요) 일 하고 돌아와 체력, 시간 핑계를 대다 다시 내일을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다보면 그냥 딱 일만 하다 죽을 수 있는 거니까.


#
밖은 어두워졌고 고민한다.
어두워진 하늘만큼 내 기분도 꿈뻑 꿈뻑 가라앉아 있다.
이도저도 아닌 무기력한 기분에 휩싸이며 부정적인 생각들이 스멀스멀 옭아매 온다.
이 기분에 굴복할 것인가 뭐라도 할 것인가 심적 갈등을 벌이는 중이었다.

이럴땐 작은 동기가 필요하다.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하게 만들 동기.

동네 카페를 검색했다.
‘반려견 동반 가능’이 눈에 들어온다. 본래 산책도 나가려 했는데 이거 괜찮은 방법이구먼.

세수를 하며 이제야 짙은 방송 화장을 지운다. 더 늦게 밤 12시에 지우는 날도 있다. 피부는 무슨 죄여.
앞머리를 시원하게 올려 똥머리로 야무지게 틀어 올리고, 다시 에센스 바르고 수분크림 바르고 파운데이션을 살짝 올려주고 입술도 살짝 바르고 기왕 한 건 눈썹도 살짝 채운다. 돌아와서 세수를 다시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민낯인듯 민낯 아닌, 이정도면 동네를 나가도 외출하는 듯 스스로 가볍게 기분 낼 수 있는 낯이다.

두꺼운 패딩으로 무장을 하고 보니 털을 깎은지 얼마 되지 않은 희망이는 이 추위에 이대로 나가면 동물학대라고 비난 받을 수준의 여리한 몸이다. 털옷을 꺼내 입히는데 동거인의 손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으르렁 대다가 손에 가볍게 이빨의 온도를 알려준다. ‘이게 다 너 좋고 나 좋자고 하는데 왜 협조를 안 해주는 것이냐’ 서운한 마음에 복수로 나가지 말까 생각하다가 눈빛은 또 엄청 간절해서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번엔 단호박 어조와 재빠른 손길로 결국 옷을 입히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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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운명설을 아는지.
만날 카페는 언제든 만나고 만다.
그러니까 굳이 검색을 해서, 강아지 동반이 가능한 지 한번 더 확인전화까지 한 이 카페는 지난번 언젠가 다른 산책 루트를 찾아봐야지 하고 걷던 중에 마음에 들었던 그 카페였던 것이다.


됐어, 이미 마음에 들 준비가 다 되었다. 하지만 집에서 걸어온 거리가 길지 않았으니 들뜬 동반견을 위해 조금 더 걷다가 들어가기로 한다.

꽉 막혀 있는 출근길 도로를 보면서 지코의 ‘아무 노래’를 듣는다.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
-그러니까
‘왜들 그리 재미없어?’
-그러니까22

그래서 내가 지금 업 되고 재미를 찾으려고 동네 카페를 가는 중이라니까요.

#
호박차를 마시며 다행이 기분이 괜찮아졌다.
동반견은 이곳이 낯선지 자꾸 나만 쳐다보고 몸을 조금씩 부르르 떨곤 한다. 여기가 털을 깎으러 온 곳은 아닌지 의심스러워 하는 눈치다.
안심시키기 위해 무릎에도 앉혀서 이마에 스윗하게 뽀뽀도 해 주고, 미리 챙겨온 막대간식 두 개도 주었다. 다음엔 집에서 담요를 챙겨와서 깔아줘야지 생각한다.

테이블의 높이도, 호박차의 맛도, 음악도 마음에 든다.
카페 사장님도 마음에 들었는데 여기에 오는 손님들은 더 마음에 든다.
죄다 쿨 해 보이는 여자야...!

이곳에 온 덕분에 무기력에서 벗어났고, 산책도 했고,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에서도, 일상에서도, 카페는 행복에 많은 영향을 준다.
별볼 일 없었던 하루를 괜찮게 만들어 주는 데도,
무언가를 시작하게 하는 데도,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데도,

이 정도면 5천원 값은 충분히 넘치게 하는 것 아닙니까.


#호박차마셔서 #내일아침부기안녕


*사진은 카페와 무관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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