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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an 29. 2020

매물, 달리기, 소공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feat.어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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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각에 꽂히면 손과 발이 엄청 부지런해진다.

몸살 기운이 살짝 돌았던 1월의 어느 주말, 책을 읽다가 ‘공간’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살면서 수천 번은 들었을 그 흔하디 흔한 단어가 책을 덮고도 한동안 맴돌더니 어느새 나는 ‘피터팬’ 어플을 깔고 있었다.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로망 아니겠는가. 처음 해 본 생각도 아닌데 이날은 그냥 거기에 꽂힌 거다. 사뭇 진지하게.

일단 수익활동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월급에서 월세 지출을 감당하는 걸 전제로 했다. 여기저기 카페에서 쓰는 돈과 외식을 아끼면 되지 않을까 셈을 굴려가면서. 친구 한두명과 함께 해도 괜찮겠다 상상하며 얼굴을 떠올리기도 했다. 가능할지 여부는 보고나서 판단해도 되니까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보증금과 월세를 설정해 매물을 확인 해 보았다. 딱 한군데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다 괜찮은데...권리금이 있었다. 800만원.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권리금까지 들이는 건 망설여졌지만 일단 발품 파는 게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내가 낸 권리금은 나갈 때도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매우 단순한 생각으로 문자를 보냈다. '혹시 내일 가게 보러 갈 수 있나요?’

다음날 그 매물을 찾아 우사단길로 향했다. 통화를 한 남자 주인 대신 맞은 편의 공방 가게 여자 사장님이 대신 맞아 주었다. 여 사장님은 이곳에 가게를 연 지 4년 정도 되었다 했다. 내가 찾은 매물은 깨끗한 펍 같은 느낌이는데 일단 심플하면서도 적당한 크기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꿈꾸는 긴 테이블을 놓을 수 있는 공간도 충분했고, 주방이 달려 있어 간단히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점도 플러스였다.


그런데..낮에는 조용하지만 저녁에는 다소 시끄러운 분위기가 예상 되었다. 나는 조금 더 조용한 동네를 찾고 싶었다. 손님을 초대한다 생각하면 주차도 마땅치 않았고 지하철역에서도 도보로 꽤 걸어 올라와야 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내 생애 첫번째 매물은 안녕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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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시작했다.
요조님 피드를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30분 달리기’ 어플을 통해서다. 어플을 깔고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첫 개시를 해 보았다. 기대 없이 시작했는데 이거 꽤 괜찮다.

30분 달리기 라고 해서 30분 내내 달리는 게 아니라 앞 뒤 5분씩 총 10분은 천천히 걷는 것이고 그 중간은 1분 달리고 2분 걷고를 반복하는 하는 식이었다. 달리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최종적으로 30분을 달리는 훈련을 하는 듯 했다. 일단 가뿐하게 첫 트레이닝을 마치고 도장을 받고 나니 8주를 다 채우는 것도 어렵지 않겠다 싶었다.


그동안 다양한 운동 어플을 깔아보았지만 결국 삭제되는 슬픈 결말 뿐이었는데 지금 2주차에 접어 들었다. 10번 카페 쿠폰도 거의 채 워본 적 없는 내가 과연 다 마칠 수 있을 것인가. 지금으로선 희망적이다.

달리기를 하다 보니 동네의 구석구석을 알게 된다.

지나가다 괜찮은 카페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한곳을 찜콩 해 두었다가 이튿날 주말 오전에 다시 찾았다. 우리 동네에 이런 힙한 카페가 있었나 놀라고 감각적인 젊은이들이 너무 당연하게 이곳을 찾는 것에 또 놀라서 주문을 하며 여기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것 맞죠 물었다. 3년 되었다 했다. 그동안 굳이 차 타고 다른 동네 카페를 다닌 본인을 반성했고 내가 좋아하는 뮤즐리 요거트 류의 메뉴가 있어 또한 기뻤다. 외국으로 여행을 가면 아침은 꼭 그렇게 해결하고 했었는데 그 메뉴가 있는 카페가 흔치 않았다.

이 글은 그 카페에 앉아 쓰고 있다. 메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지금은 저녁이니까 뮤즐리는 다음에 아침에 와서 먹을 것이다. 이 카페에서 300미터 정도 올라가면 ‘임대’ 딱지가 붙은 매물이 하나 있는데 여기는 우사단길보다 훨씬 마음에 든다. 내가 바라는 평화로운 분위기의 동네에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그런데 훨씬 널찍한게 분명 값이 더 나갈 것이다. 전화번호를 찍어놓긴 했는데 아직 연락을 해 보진 않았다. 한동안은 달리다가 혹은 지나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매물들이 사진첩에 담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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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휴 동안 영화 보는 어플을 깔았다.


최근 몇년 간 ‘영화는 영화관에서’ 였는데 문득 누가 추천해 주었던 영화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영화 보는 사이트를 찾다가 합법적으로 다운로드 받는 어플이라 해서 설치 한 어플이었다. 2주는 무료 사용이라니. 꿀이다.

일주일 사이 4편의 영화를 몰아 보았다. 이미 후기로 검증된 영화들이어서 모두 실패가 없었는데 그 중 ‘소공녀’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고민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
당연히 가져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없다는 것.
그러니까 ‘핑계 대지마’ 하는 것.

집을 포기하고서라도 ‘위스키, 담배, 그리고 너’

미소는 그렇게 말했다.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너무 멋진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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