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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양 Nov 23. 2020

닥터 헤이칼 (8)

다이버들의 명의

시나이산을 갔다 온 직후에, 귀가 갑자기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오르기 전부터 지속된 연습으로 이퀄라이징이 물속에서 잘 되지 않아 귀가 먹먹했었는데, 하산 후 다합으로 가는 차 속에서 귀가 팽창하는 느낌과 함께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다. 고막이 터진 건가, 난생처음 느껴보는 귀의 통증에 덜컥 겁을 먹고 다합에 도착하자마자 귀를 부여잡고 닥터헤이칼 병원으로 향했다. 헤이칼은 한국인들이 다합의 허준이라고 불릴 정도로 국적 불문 명실상부 다합의 다이버들에게 명의로 불린다. 세계적인 다이버들도 진료한다고 한다.


귀를 잡고 병원으로 뛰어 들어가 헤이칼을 소리 내 외쳤다. 곧바로 진료실로 무작정 들어가 짧은 영어로 귀를 가르키며 아프다고 연신 소리쳤다. 헤이칼은 침착하게 응급처치를 해주었고 귀와 코 상태를 보더니 코부터 시작된 염증이 귀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더군다나 바닷속에서도 충분히 귀가 무리를 했는데 높은 고도인 시나이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왔으니, 귀가 아플 만도 하단다. 어쨌든 일단은 한시름 놨다. 나는 헤이 칼의 말을 듣자마자 물어봤다. 그럼 다이빙은 언제부터 할 수 있는 거냐고. 헤이칼은 내 말을 듣자마자 엄청나게 빵 터졌다.

어떻게 아픈데 다이빙 얘기부터 할 수가 있냐는 얘기를 하며 웃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다 낫고 하라는 그의 말. 언제 다 나을지는 나에게 달렸다고 한다. 아.. 정말 가슴이 철렁하다. 다합을 떠날 날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 다이빙을 하지 못한다니. 자격증은 물 건너간 것인가.


털레털레 병원 밖으로 나왔다. 오늘따라 햇볕은 너무 뜨겁고 아름다운 홍해는 보란 듯이 넘실대었다. 마치 비웃는 듯했다. 파도가 내게 말한다. ‘거봐, 인마 바다가 호락호락한 게 아니야 ~’ 저렇게나 아름다운 바다인데, 바다는 쉽게 나에게 아름다움을 보여 줄 생각이 없나 보다. 당분간은 휴식에 휴식을 취하는 게 답인 거 같다. 하긴, 다합에 도착하고 지금까지 다이빙에만 매진해 왔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해봐야겠다. 내가 이 물에 안 들어가는 여유로운 다합을 즐긴 적이 있던가. 다이빙에만 빠져 ‘다합’이라는 여행지에서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잊고 지냈던 것 같다.


 다이빙을 내려놓고 라이트하우스 거리를 쭉 걸어본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아름다운지, 나와 마주치면 하얀 이를 보이고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들,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 세상 끝까지 있을 거 같은 바다와 함께 손을 꼭 쥐고 있는, 평생을 함께해온 듯한, 감히 그 세월을 짐작할 수가 없는 노부부. 넘실대는 파도에 부위를 띄우고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프리다이버, 산소통을 매고 점점 바닷속으로 사라져가는 스쿠버다이버. 아, 나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계획에 없던 뜻하지도 못했던 일을 통해 뜻밖의 경험을 하고, 이를 통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느끼게 되는, 그것들이 모여 나를 한층 더 밟고 일어날 수 있게 해주는, 이 또한 여행의 매력 아닐까. 여행지에선 항상 뜻밖의 사건들이 생긴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좋겠지만, 안 좋은 일이든 좋은 일이든 항상 변수가 생긴다는 것. 맘대로 되면 어찌 그게 여행이겠는가. 이렇게 뜻밖의 사건을 통해 그 안에서 무언갈 느끼고 새로운 용기와 기운을 충전할 수 있는, 계획 밖의 사건들을 잠시 음미해본다.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에 이유 중, 한 구절


‘우리는 모두 정해진 일정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라며, 안전하게 귀환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귀가 다치고 걸었던 라이트하우스의 거리는, 바로 그것이었다. 다합에서의 마법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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