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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난 신고, 그리고...

어느 중2 학생의 비싼 수업료



영어 과외 간 첫째가 전화를 하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영어 끝나고 나왔는데 자전거가 없어요."

"잘 찾아봐. 자전거 자물쇠로 안 잠갔니?"

"네... 수업 늦어서 급히 가느라 자전거 거치대에 세워놓고 갔는데 끝나니 없어요."


길 건너 아파트에서 영어 수업을 받는 첫째는 거리가 멀지 않은데도 꼭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다. 그날도 자전거를 타고 갔고 급한 마음에 자전거만 세워두고 수업에 간 모양이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아이가 축 처진 어깨를 늘어뜨리며 집으로 왔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자전거 못 찾았어요. 아파트 다 돌아봤는데 없어서 관리사무소에 가서 CCTV 볼 수 있냐고 물었더니 내일 엄마나 아빠 모시고 오래요. 내일 같이 가주실 수 있어요?"


일찍 서둘러서 학원 늦지 않게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그토록 일렀건만 결국 늦었고 자물쇠를 안 채워 자전거 분실까지 자초한 아들에게 한 소리 하려다 참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아들도 찾으려 노력했고 관리사무소까지 찾아간 게 가상했다.


"그래. 내일 엄마랑 같이 가보자."


다음날 아이와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방문하여 CCTV 열람 신청서를 작성하고 담당자에게 분실 시간대와 장소를 알려주고 초집중하여 봤다. 아들은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후다닥 뛰어 들어갔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2명이 자전거 거치대로 오더니 그중 한 명이 아들 자전거가 잠겨 있지 않은 걸 확인한 후 자연스럽게 타고 나가는 것을 봤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지나가는 사람이 봐도 그 학생 자전거인 줄 알 정도였다. 어깨부터 손목까지 2줄이 선명하게 있는 체육복 상의가 누가 봐도 아파트 앞에 있는 중학교 학생이다. 학생의 이동 경로를 보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좀 더 보여달라 요청하니 분실 사실을 확인했으니 이후로는 경찰을 대동해야 볼 수 있단다. 다른 사람들의 개인정보로 인해 더 보여줄 수 없다는 말에 알았다며 집으로 왔고 고민에 빠졌다.


'자전거를 내일이라도 가져다 놓지 않을까?'

'지금 도난 신고해야 하나?'

'철없는 중딩의 장난으로 시작된 걸까?'

'그 학생이나 부모는 신고된 걸 알고 나면 어떨까?'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더 큰 사고 치기 전에 버릇을 잡아줘야 하지 않을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저럴 수 있는데 아이를 위해서 교육적으로 신고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학교로 연락을 하는 게 더 나을까?'

'학교에서 소문나면 학교 생활에 영향받고 힘들어지겠지?'


잠시지만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남편과 상의 끝에 나도 아이 키우는 부모이고 내 아들이 저러고 다닌다면 그건 정말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경찰에 신고를 하기로 했다. 신고 전화를 하니 10분 내로 분실 현장으로 나와달라고 했고 사건의 자초지종을 듣고 난 후에는 도난 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개인 정보를 적고 어떤 처벌을 원하는지에 대해 작성해야 했는데 남편과 상의한 내용대로 "민사상의 처벌은 원치 않으며 학생의 진심 어린 반성과, 교육적 훈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자전거는 배상받기를 원한다."라고 썼다. 학생이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게 가장 컸다.


수사관이 배정되면 연락 줄 거라고 했는데 이틀, 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더 중요한 사건들도 많은데 자전거 한 대 분실한 거는 일도 아닌가 보다'는 생각에 맘을 접었다. 아들은 자전거가 필요한데 다시 사달라고 말은 못 하고 동생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녔다. 물론 자물쇠로 꼭 잠그고 말이다.


몇 주의 시간이 흘렀고 가족여행을 가던 토요일 아침에 모르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받았다.

"서울 00 경찰서 000입니다. 자전거 도난 신고하신 분이죠?

"네."

"자전거 훔쳐간 학생을 찾았어요. 그런데 자전거는 못 찾았습니다.'

"?  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찾다니요?"

"학생 말로는 본인도 학원 끝나고 나와보니 자전거가 없어졌다고 며칠 찾아봤지만 없다고 하네요."

"네. 학생은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나요?

"그.. 렇죠? 뭐..."


대충 돌아가는 상황이 파악됐다.

나의 사회생활 16년은 그 학생 또래의 중고딩들이 주요 대상자였고, 최근 몇 년 동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건들을 겪었기에 사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그 학생을 동정하거나 앞날을 걱정하는 것보다는 훔친 자전거는 도난품이니 버렸을 것이고, 최대한 유리한 입장에서 둘러댔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학생의 진심 어린 반성을 기대한 나는 씁쓸했고 자전거를 배상받아야겠다는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알겠습니다. 학생에게 잘못한 일이 분명하니 꼭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자전거는 우리 아이가 매일 타고 다니는 거고 꼭 필요한 것이니 배상을 원합니다."

"네. 그래서 학생 엄마가 통화를 원하는데 전화번호를 알려줘도 될까요?"

"네. 알려주셔도 됩니다."


여행 가는 내내 심란했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그 학생 어머니로 추정되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저 자전거 도난 신고하신 아이 어머님이시죠?"

"네.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어요.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학생 어머님의 죄송하다는 그 말에 나 역시 아이 키우는 부모로서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네. 본인 물건이 아닌데 왜 그랬을까요? 아이와 이야기는 해 보셨나요?"

"아들이 학원에 늦었는데 자전거가 버려져 있어서 급한 마음에 타고 갔다고 하더라고요."


아뿔싸!

학생은 내가 겪은 소위 문제 학생들의 변명 절차를 그대로 밟고 있었다.

부모에게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잘못을 그럴듯해 보이는 변명으로 포장을 했던 것이다.


"어머님, 저랑 아이, 관리사무소 직원들까지 같이 CCTV를 봤고 정확한 상황을 확인했어요. 제 아이는 자전거 거치대에 반듯하게 세워놨고 댁의 아드님이 세워져 있는 자전거를 이리저리 확인하고 자물쇠가 안 채워져 있는 것을 알고 자연스럽게 타고 가는 것을 봤습니다. 자전거는 작년 말에 애들 아빠가 사준 거고 매일 타고 다니는 거라 누가 봐도 버려진 자전거로 볼 수 없는 상태입니다. 제 말이 믿기지 않으면 어머님도 CCTV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제 아들 자전거가 동네 공유 자전거도 아닌데 본인이 학원 늦었다고 타고 가는 게 말이 되나요?"


학생의 변명에 속이 상해서 차근차근 사실을 확인시켜줬습니다. 그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하면 제 속도 속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죠.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면 안 되는데 잘못했죠. 지난번에도 친구가 다른 자전거를 타고 가라고 해서 그래도 되는 줄로 알았다고 합니다."

"네? 친구가 시켜도 친구 꺼도 아니고...."

갈수록 태산이었다. 호기심에 철없는 학생의 장난이었다고 아이가 많이 반성하고 있다는 말을 기대했는데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기분이었다.


"아드님 친구도 자전거 타고 갔는데 그 친구 꺼인지 모르겠네요."

"그건 그 친구 꺼라고 하더라고요."


이쯤 되니 담임이 선도 학생 어머님과 상담하는 기분이었다.

사실 관리사무소에 갔을 때 요즘 자전거 도난사고가 몇 차례 있었다고, 인근 중학교 학생들 같은데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설마 같은 학생일까 싶었고 더는 의심하기 싫었다.

그런데 학생 어머님의 말을 들으니 동일 인물이 아니더라도 신고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자전거는 어떻게 배상해 드릴까요? 자전거 구입 금액 알려주시면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저흰 돈이 아닌 자전거로 배상받길 원합니다."

"저희가 이 동네에 이사 온 지도 얼마 안 됐고 자전거를 안 사봐서 잘 모르는데 어떤 걸 사야 할까요?"

"아이가 중학교 가서도 계속 타라고 작년 말에 아이 아빠가 로드 자전거를 사줬어요. 남편과 상의 후에 다시 알려드릴게요."

"네. 죄송해요. 꼭 알려주시면 배상하겠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은 자전거를 좋아하고 봄, 가을에 한강으로 라이딩을 다닌다. mtb자전거로 라이딩을 하니 애들이 힘들어한다고 기존 자전거가 작아져 새로 바꾼 김에 아빠가 큰맘 먹고 사준 자전거인데 도난을 당해서 아이도 속상하고 걱정하던 중이었다.


1박 2일의 여행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집 근처에 있는 자전거 매장에 가서 로드 자전거 제일 싼 게 얼마인지, 아들이 타던 비슷한 사양은 얼마나 하는지, 얼마까지 주실 수 있는지 등등 직접 문의했다. 로드 자전거 자체가 가격이 나가고 최저가 20만 원대 중반이었다. 그동안 탔던 시간이 있어 새거 똑같은 걸로 받는 것은 우리 부부도 원치 않아 저렴한 걸로 알아봤고 학생 어머님께 문자를 드렸다.


"자전거 매장에 가서 알아봤는데 로드 자전거 최저가는 이 정도 하고, 아이가 타던 사양은 더 비싸네요. 인터넷으로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것으로 20만 원 초반까지 알아봤어요."

"네. 아들이 비싼 수업료 냈다고 생각해야죠. 그럼 자전거 금액을 보내드릴 테니 결제하시겠어요."

"아뇨. 현금 거래 원치 않습니다. 한 동네 살면서 좋은 일도 아니고 서로 얼굴 보고 만나서 받고 싶지도 않고요. 사이트 보내드릴 테니 결제하신 후 선물하기로 보내주시면 제가 주소 입력하고 집으로 바로 배송받을게요."

"그럼... 경찰에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네? 혹시 합의했다는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하나요? 저에게 선물 보낸 화면 캡처해서 제출하면 될 것 같아요. 혹시나 합의서가 필요하다면 연락 주세요."

"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경찰에 합의했다는 증거자료로 입금 내역이 필요했던지 계속 현금 입금을 해주겠다는 학생 어머님이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자전거는 며칠 후에 집으로 배송되었고, 도난 신고부터 배상까지 이렇게 끝났나 싶었다.






외출하고 귀가하던 중 우편함에 '서울 00 경찰서'에서 온 우편물이 있다. 경찰서에서 받을 우편물이 없기에 무슨 일일까 고민하던 중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자전거 사건이 합의되고 마무리됐다는 내용인가 싶었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결과를 받았다.



통지서 제목부터 무서웠다. 난 법 관련 용어는 어렵고 무섭게 느껴진다. 입건 전 조사 진행 상황 통지서였고, 아래 내용이 기입되어 있었다.


<피해품인 자전거를 가져간 학생(중학교 2학년생)을 검거하였으며 비행 사실 인정되어 사건 기록 일체 서울가정법원에 송치 결정하였다.>


'입건, 검거, 서울가정법원, 송치'


합의해주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내가 모르는 법적인 절차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경찰 지인에게 통지받은 내용을 물어보니 재판장에 나가야 할 거 같고, 판사 앞에서 잘못했다고 하고 반성문 정도 쓰고 끝날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 그 학생이 정말 진심으로 뉘우치고 여기서 끝났으면 하는 생각, 이번 일을 통해 앞으로는 절대 비행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들로 머리가 아파왔다. 갈수록 아이들 키우는 것도 어렵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도 어렵다. 좋은 엄마, 좋은 교사, 본받을 만한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내 맘과 뜻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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