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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말 vs 직언

말에도 향기가 있습니다


친구들 단톡방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친구가 "빈말" 대한 따뜻한 글을 공유했다.


가족끼리, 지인끼리, 친구끼리 하는 빈말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글이었다.


"고마워요."

"당신 덕분이에요."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응원합니다."

"밥 한 번 먹어요."


빈말의 힘과 영향력을 언급하는 글이고 공감이 되기도 했지만, 나는 사실 빈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빈말을 할 때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빈말로 그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다. 그래서 진심으로 대하려 노력한다. 분명 진심으로 고맙고, 아끼고, 응원하는 일은 있으니까.


친구는 빈말의 의미를 세심하게 파악한 작가의 의도에 공감하며 나에게

"박작까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거지?"라고 묻는다.

따뜻한 시선으로 훈훈한 글을 쓰고 싶으나 전쟁 같은 현실에서 얻는 소재와 풀어지는 이야기는 따뜻하기가 쉽지 않다. 얼마 전에 겪은 일은 차라리 빈말이라도 들었으면 싶었다.




남편과 주말에 마트 가기 전 시댁에 들러 시부모님께 인사드리고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어머님께 전화드리니 운동 갔다가 놀이터에 쉬고 계신다고  차를 놀이터로 돌렸다. 놀이터에는 앞동에 사시는 시이모님도 함께 계셨고 오랜만에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모님, 잘 지내셨어요? 건강은 좀 어떠셔요?"

"응, 나야 뭐 그렇게 지내 지야. 아따, ㅇㅇ엄마는 살이 많이 쪄브럿다이?"

"아, 네~ 애들이 말을 안 들어서 스트레스받아서 쪘나 봐요~"

"남편이 잘해주니 편한 갑구만. 긍께 살이 찌지?"

"네. 그 말도 맞아요."



나도 코시국부터 ~찐자로 내 몸 뚱이 불어난   아는데 굳이 몇 년 만에 만난 조카며느리에게 돌직구를 날리시는 시이모님. 그것도 모자라 애들 키우느라 힘들다는 조카며느리의 투정은 아랑곳 않고 조카(남편) 힘들까 봐  마디 덧붙이신다.


마트 가는 길에 남편에게 시이모님의 화법에 대해 툴툴 댔다.


"울 시어머님도 나 살찐 거 뭐라 안 하시는데... 이모님 며느리는 날씬해? 몇 년 만에 봐도 하고 싶은 말씀 다 하시네. ㅎㅎ"

"이모 성격이 원래 그러시잖아. 이모인걸 다행으로 알아."

"이모가 울시어머님이었음 당신이랑 결혼 안 했지. 둘째, 셋째, 막내 이모까지 울 어머님과는 너무 다르지. 천만다행이야. 어머님이 내 시어머님이라서."






시이모님은 몇 번 만나지 않았지만 결코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첫째 아들이 돌 지날 무렵 시이모님 댁에 데리고 갔을 때의 일이다. 이모네 강아지는 짖어대고, 환경은 낯설고 힘들었는지 첫째가 엄청 울어대던 때가 있었다. 그 후 시간이 지나도 첫째 울보 이야기를 계속하시면서 애매한 돌려 말하기 신공을 발휘하신다.


"ㅇㅇ 아빠는 어려서부터 얼마나 순했는지 몰라야. 울음소리 한 번 안 내고 컸고 속도 안 썩였는데 누굴 닮아서 ㅇㅇ이는 그렇게 울어댄다냐?"


누굴 닮았는지 궁금해하시니 나 역시 내 입장을 전달했다.

"저도 순하디 순했대요. 공부밖에 안 해서 말 안들을 일도 없었다는데 대체 누굴 닮은 걸까요? 호호호"


남편이 한마디 거들며

" 장모님께서 ㅇㅇ(나) 엄마도 순하고 모범생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ㅇㅇ이는 누굴 닮아서 까칠한지 모르겠네요."라고 하자 시이모님도 멋쩍었는지 별말씀 없으셨다.


아니, 애니까 울고, 우리 아들인데 우리 닮았겠지, 남편 안 닮았으면 나 닮아서 울고 불고 고집부렸다는 건가 싶었다. 이해를 바란 적 없고 그때 우는 애 달래느라 고생한 기억밖에 없는데 이모님이 하시는 말씀은 매번 어딘가에 콕 박혀 자꾸 쉬이 흘려지지 않는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고.

아 다르고 어다르다 했는데.




빈말이라도 살찐 조카며느리 오랜만에 봤으면 '보기 좋구나' '행복해 보인다' 등의 말을 할 수 있고,

정말  말조차 안 나온다면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시지 대놓고 직언하시니 언짢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살면서 맺는 관계 속에서 친분을 떠나 빈말이나 인사치레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왕이면 긍정적인 말을 건네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빈말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빈말과 진심을 가려낼 줄 아는 지혜도 있었으면 좋겠다.



말에도 인격이 담겨 있고, 나이가 들수록 좋은 향기를 발하는 말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 보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툭툭 내뱉는 말이 아니라 좋은 언어 습관을 갖고 싶은데 요즘 나는 두 아들을 우아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과는 반대로 툭하면 욱하고 사는 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 



오래전에 읽었던 이해인 수녀님의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산문집이 생각났다. 나부터 먼저 웃는 얼굴로, 밝은 미소로, 감사의 말을 건네며 향기로운 삶을 차곡차곡 쌓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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