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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음식

여름 되면 꼭 먹고 싶은 그것

나의 엄마는 전라도 음식 손맛을 자랑할 정도로 솜씨가 좋으시다.

학창 시절 내 도시락 반찬 중 햄, 소시지보다 인기 있던 반찬은 울 엄마표 볶음김치였다. 적당하게 익은 김치를 살짝 달달하게 볶거나 참치를 넣어 담백하게 볶아서 싸주시던 볶음김치는 친구들이 즐겨 찾는 메뉴였다. 사촌들은 저마다 울 엄마의 음식을 힐링 푸드로 생각하고 있다. 수제 식혜, 부침개, 낙지호롱이, 꽃게탕 등등.


성인이 된 후 타지 생활하는 딸이 본가에 방문한다고 하면 엄마는 영양 찰밥을 해주셨다. 밖에서 먹는 밥은 돌아서면 헛헛하다며 든든한 집밥을 손수 차려주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대추는 빼고, 팥이랑 밤만 넣고 밥은 무르지 않게 고슬고슬하게 해 달라는 까탈스러운 요구에도 엄마는 싫은 내색 없이 지어주셨다. 객지 생활 2년이 지나고 총 4번 정도의 찰밥을 먹었고 엄마는 그 사이 밖에 밥도, 햇반도 맛있다는 걸 아셨는지 더 이상 찰밥을 하지 않으셨다.^^


초등학생 입맛에 가까운 나는 나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컹한 식감과 나물 특유의 냄새들이 싫었다. 특히 가지나물과 오이나물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식감과 맛이었다. 그런데 한 번씩 엄마가 해 주시던 나물 반찬이 생각이 나서 내가 해보면 역시나 그 맛이 아니었다. 지금도 우리 집 반찬 중 나물은 식탁에 오르기 힘들다. 그 흔한 콩나물은 주꾸미 볶음 할 때 곁들여 먹는 정도이고, 숙주는 차돌박이 볶음 요리에 같이 넣는 재료일 뿐이다. 참, 시금치는 포항초와 섬초가 달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제철에 한 번씩 먹거나 김밥에 넣을 재료로 만들기도 한다. 요리 똥 손은 아닌데 나물을 데치는 것이 제일 어렵고 본연의 맛은 살리고 간을 하는 것 또한 어렵다. 잘하지 못하고 즐겨 먹지 않으니 우리 집 요리는 집밥 메뉴보다는 가정식 버전으로 분식, 일식, 양식이 대부분이다. 여러 가지 반찬을 꺼내 놓고 먹기보다는 메인 요리에 집중하는 일품(한 가지) 요리나 한 그릇 요리를 주로 한다. 요즘은 밀키트나 반조리 식품이 새벽에 배송되니 부담 없이 뚝딱 차려낼 수 있어 좋다. 






그런데 살다 보면 입맛이 바뀐다고 했던가.

결혼 후 친정 엄마가 해 주신 전라도 스타일의 고구마순김치가 여름만 되면 생각나고 먹고 싶어졌다. 여름철에 친정 내려갈 일이 있으면 엄마가 다른 반찬은 안 하더라도 고구마순 김치는 꼭 해주셨는데 바빠서 못 가게 되면 고구마순김치를 못 먹는다는 생각에 아쉬웠다. 엄마가 택배로 보내주시기도 했지만 여름철이라 배송 도중 상하기도 해서 그마저도 못하게 됐다.


여름철이 다가오고 김장 김치가 지겨워져서 엄마한테 김치 좀 담가서 보내달라고 했다. 택배를 받으니 열무김치, 배추김치, 마늘장아찌, 매실장아찌까지 엄마표 음식들이 한 상자 가득이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순과 양념도 들어 있었다. 저녁 반찬으로 당장 만들어서 먹을 생각에 엄마께 전화해서 데치는 방법, 시간 등을 코치받아 드디어 내가 원하던 고구마순김치가 완성됐다. 살짝 덜 익은 감이 있지만 올해 처음 먹은 고구마순김치는 너무 맛있었다. 남편에게 내가 만든 거라며 자랑했다. 김여사표 고구마순김치 밀키트를 제공받은 셈이지만 말이다. 아직까지 여름철 나의 힐링 푸드 1위는 울 엄마표 고구마순김치이다.





친정에서 서울로 귀가하는 날이면 아침부터 엄마는 분주하셨다. 깨, 참기름, 들기름, 밑반찬, 과일 등 냉장고를 다 털어줄 기세로 박스마다 챙기고 계신다. 집된장, 고추장까지 있는지 물어보시며 한 마디 하신다.


"엄마 없으면 나중에는 이런 거 어떻게 먹을래?"

"엄마, 다 사먹으면 돼. 된장, 고추장 장인이 만든 것들 다 시중에 팔고 맛도 좋아."

"엄마 맛이 아닐텐데 그게 어찌 같다냐."

"그렇긴한데 지금도 엄마 힘드니까 그만해. 혼자 다 먹지도 못할 거 자식들 준다고 힘들게 고생하지마셔. 다 알아서 사먹고 더 잘 먹고 사니까 엄마 건강 생각하고 드시고 싶은 거 다 드시고 사셔."


엄마 말의 의도는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이렇게나마 챙겨 줄 수 있고 당신이 해 줄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낙이라는 것도. 따뜻한 말로 공감해주고 감사하다고 말하면 되는데 돈이면 된다며 고생말라는 말이 참인 마냥 못되게 말한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고 자식을 키워가다 보니 엄마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알게 되고, 나의 대답이 정답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정말 엄마 없으면 엄마 음식 못 먹게 되고 챙겨주시던 것들 다 사먹게 되더라도 그 맛이 아닐거란 걸 알아버렸을 땐 너무 후회됐다. 참기름, 들기름은 엄마가 수고스럽더라도 방앗간에 가서 직접 짜는 걸 보고 소주병에 담아주는 그 맛을 따라가지 못했고, 국산 고춧가루를 사 본 적이 없어 그렇게 비싼 줄 몰랐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엄마 손맛을 빌리고 엄마표 음식을 기다린다. 달라진 게 있다면 조금 더 다정하게 감사를 표현하고 자식들에게 보낼 택배 싸는 엄마의 마음을 더 헤아리려 한다는 것이다. 조만간 엄마 손맛 100%인 고구마순김치를 먹으러 가야겠다. 그리고 역시 이맛이라며 엄지척을 날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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