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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필삼선을 아시나요?

요즘 고등학생들의 입시 마인드

2023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수능일이 되면 몇 년 전 수능 감독교사로 갔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3교시 부감독으로 고사실 뒤편에 붙박이 자세로 서서 좌우로 고개를 돌리고 열심히 눈알을 굴리며 감독을 하고 있었다. 과학탐구영역에서 물리 ll를 풀던 남학생이 한 문제가 안 풀렸던지 시험 시간이 끝나갈 무렵 초조함에 다리를 떨고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나까지 긴장되었고 마음속으로 혼자만의 소리 없는 응원을 시작했다.


- 10 정도 남았는데 답안지에 마킹해야 . 어휴 그래 일단 마킹해서 다행이다. 그렇지 다시 차분히  풀리던 문제 생각해봐. -


감독을 하면서도 저 학생이 못 푼 저 한 문제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시험 종료 종이 울릴 시간이 다돼 갈 때쯤 그 학생은 문제가 풀렸고 정답을 확신했는지 안도감과 기쁨으로 조용히 주먹을 쥐고 짧게 파이팅 액션을 취했다. 나 역시 그제야 마음이 놓였고 곧바로 종료 종이 울렸다. 내가 시험 본 것도 아닌데 그 학생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며 감정이 이입되어 뭉클해졌다. 시험장 밖 어디에선가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었을 부모님의 정성이 통했을지, 마침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발휘되었을지, 우주의 모든 기운이  학생을 도왔는지 모르겠으나 그 학생의 수능 성적이 기대만큼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고3 사이에서 유행하는 신조어가 있다.

재필삼선.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는 말이다.

내 조카 역시 수능 성적이 아쉽다며 재수를 필수로 선택했고, 재수 기숙학원에 수천만을 바친 후에도 성적이 아쉬워? 아니 더 떨어져 삼수를 선택했다.

재필삼선의 사례는 가까이에서도 많았다. 고2까지의 내신도 별로고 고3 첫 모의고사를 보고 나면 슬슬 재수를 생각하는 학생들이 나온다. 그 학생들의 고민은 '남은 시간 어떻게 성적을 올리지, 지금 여기서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이지?'가 아니다.


재필을 생각하는 고3은 여름방학부터 '아, 엄마한테 재수한다고 어떻게 말하지?'가 고민이다. 2학기가 시작하고 수시 원서를 접수할 때 6장의 수시 카드는 필요 없는 상황이 된다. 수시전형에 쓸 마음도 없고 사실 성적도 자신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속마음은 숨긴 채 정시로 승부 보겠다며 일단 큰소리친다. 어영부영 수능까지 치르고 역시 계획대로 특정 영역이 불수능이어서 평소 점수대로 안 나왔고 이 성적에 맞춰 대학 가느니 재수를 해야겠다며 작전을 개시한다.




조카가 재수를 결정했을 때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우리 두 아들도 재수를 이야기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나는 대학 재수가 아닌 임고 재수생 생활을 피눈물 흘리며 해봤기에 내 생각을 말했다.


"평소 태도를 보면 재수시킬 놈과 아닌 놈 알 수 있을 거야. 내 기준에 재수는 최선을 다했고 실력자가 수능 당일 컨디션 난조나 실수로 한 두 개 더 틀려서 실력 발휘를 못했을 때 하는 거야. 아쉬우면 일단 대학 1학기 다녀보고 정말 간절하면 반수 하면 돼. 물론 반수를 선택하더라도 그 시간과 비용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해. 공짜는 없어.''


재수를 필수로 선택했으면서도 바로 시작하지 못하고 수능 이후 성인들의 문화는 밤낮없이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 대학 캠퍼스 생활을 1년 후 자신의 모습이라 착각하여 미리 대학생으로 함께 즐겨가는 재수생들의 현실을 많이 봐왔다. 정말 이를 악물고 공부하여 힘든 시기를 버텨낸 학생들은 좋은 결과를 받아야 한다.




나의 두 아들은 학교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일이 학생으로서 지켜야 할 성실이라고 교육시킬 것이다. 때로는 슬럼프도 오고, 지치기도 하겠지만 그럴 땐 잠시 쉬어가더라도 기본적인 태도와 자세는 제대로 인지하고 있어야겠지. 공부와 대학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 앞에서는 공부든 하고 싶은 일이든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그 시기에 하고 싶은 일을 꿈꾸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두 아들은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재필삼선은 너희들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니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기대하는 결과가 있다면 노력하고 애쓰는 과정을 보여주렴. 엄마, 아빠는 아낌없이 응원할 준비가 되어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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