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으로 그린 여름날
이수지 작가의 개인전, Summer Concerto
정말 오랜만에 제정신으로 전시를 관람했다.
(사실 그렇게 제정신은 아니었지만…)
아이를 낳고 몇 번인가 전시 관람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모두 허탕에 그쳤다.
아이가 5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전시를 알차게 관람했다고 후기를 남길만한 그런 날이 온 것이다.
그날은 유독 길었다.
일단 아침부터 ‘파도야 놀자!’를 그린 작가의 그림을 보러 가자며 아이를 꼬드겼고, 택시를 타고 출발.
구름 낀 한남동 언덕을 오르다가 힘들다 보채는 아이를 등에 업고 전시장에 도착했으며, 아이와 둘이 바닥에 널브러져 앉아 층층마다 전시되어 있는 책을 읽어주며, 아이에게 ‘미술 전시는 재밌는 것’이라는 뉘앙스를 전달하고 나서야 성공적인 미술 전시 관람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은 그 모든 땀과 더위와 지친 마음을 시원하게 식혀줄 만큼 상쾌했다.
알부스 갤러리 2층의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작가의 신작 ‘여름이 온다’를 아이와 함께 읽는 내내 검고 명쾌한 선으로 그려진 인물들의 명랑한 미소에 우리 둘 다 깔깔깔 웃었다.
그리고 아이가 책이 재밌다며 사달라고 조르는 통에, 꽤 두꺼운 그 책을 그 자리에서 질러버렸다.
[여름이 온다] 이수지 / 비룡소
그야말로 파랑으로 그린 여름날의 협주곡이다.
파란 커튼을 배경으로 연주자들이 연주하고 있는 무대가 열리며 푸른 하늘이 나타나고, 원색의 사람들이 시원한 파랑의 물놀이를 시작한다. 파랑의 물줄기는 군청색의 비구름을 부르고, 짙푸른 인디고가 번개로 번쩍이고 자유로운 연필선의 바람이 우웅대며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 사이 주홍빛의 우산이 우리의 시선을 이리저리 이끌다가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를 알리는 능소화처럼 처음의 그 푸른 하늘 아래 톡 떨어지며 마무리. 여름이 왔다.
선명한 파란색 여름이 아름답다.
파랑을 사랑하는 작가의 그림책을 파란색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포스터 두 장 다 사 올걸 후회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