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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설아 SMILETOOTHLESS Jul 13. 2020

살림에 관하여

2020.07.13

생활에는 필연적으로 먼지가 나기 마련이다. 이 세상 누구도 먼지 없이 말끔한 생활을 하는 이는 없다. 먹으면 싸야 하고, 설거지가 쌓인다. 입는 것은 빨래 거리가 되고, 자는 곳에도 구김이 생긴다. 수면 위에서 인간다운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는 수면 아래서 누군가 끊임없이 이는 먼지를 쓸고 닦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살림은 곧 영원히 풀 수 없는 저주와 같다.  

코로나 19로 지난 몇 개월간 재택근무를 하다가, 지난주부터  on-site근무로 전환되었다. 지난 몇 개월간 편도 1시간 반의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었으니 책이라도 몇 권, 그림이라도 몇 장 더 그렸으면 좋았을걸-하고 꼭꼭 채우지 못했던 빈 시간을 후회했다. 하지만 다시 아침에 나가 해가 지고 나서야 집에 들어오는 생활로 돌아와 일주일이 지나 새삼 깨달았다.

‘아, 나는 지난 몇 개월간 살림을 했구나.’

거실에 널린 아이의 장난감 쪼가리, 개지 못한 빨래, 여름이라 쉽게 상할까 봐 급하게 냉장고 속으로 밀어 넣어 놓은 국냄비까지. 시간을 들이면 들일 수록 눈앞에서 지워지는 살림이란 행위는 손을 놓아야만 그제야 티가 난다.

갑갑하긴 하지만 포기할 건 포기하고, 그냥 살던 대로 살자. 날리는 먼지 속에서 산다고 죽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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