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부수는 사람들, 토스팀 이야기'
치과의사 출신의 대표이사가 이끄는 스타트업은 모바일 송금 서비스로 시작하여 지금은 국내 최고의 금융플랫폼을 제공하는 IT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어느 곳보다 보수적인 금융업계에서 혁신을 이뤄낸 토스는 플랫폼으로서의 가치와 더불어 모바일 사용자 경험(UX)과 기업 문화 또한 IT 업계에서 주목 받고있다.
스타트업의 도전 정신과 열정을 선망하는 한 사람으로서 비바리퍼블리카(토스)는 동경의 대상이다. 토스팀의 이야기를 담은 '유난한 도전'을 읽고 나서 토스팀의 도전들이 얼마나 더 대단하고, 치열하고, 유난했는지 알 수 있었다. 토스의 팬이자 스타트업의 PM으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몇 부분을 뽑아봤다.
세상이 받아들이는 문제의 크기보다, 우리가 느끼는 문제의 크기가 너무 컸던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 서비스가 '옳다'고 주장하게 되는거죠. 제품은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 쓰는 사람은 전혀 늘지 않았어요.
(p.26)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한다. 자기 제품을 너무 사랑하다 보니 제품이 풀려고 하는 문제와 제품의 잠재력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특히 경험이 적을수록 이런 상황에 빠지기 쉽다. 유능한 PM의 가장 기본적인 자격요건이 "문제 정의" 능력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이승건 대표 또한 1년 4개월의 시간, 그리고 2억 2천만원이라는 비용을 지불하고 첫 서비스가 실패한 후에야 얻은 교훈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나의 자아는 지워버리고, 이제부터는 성공하는 거 찾을래. 어깨 힘 빼자. 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들어주는 장사꾼이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이렇게 모였고 슬프게 끝내고 싶지 않으니까. (p.29)
누군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은 비현실적인 낭만이라고 이야기한다. 나 또한 그러한 낭만이 있고 스타트업 환경에서는 어느 정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승건 대표도 아마 이런 낭만을 갖고 창업을 시작했을 테지만 조직의 수장으로서 팀원들을 챙겨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안정적인 치과의사의 길을 뒤로하고 창업을 하였으나, 결국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돈을 버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단순히 대표의 자리에 있어서 해야 했던 타협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사치인지 스스로 고민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끝난 건가?' 싶으면 재치 있는 메시지가 떴다. '송금이 완료되었습니다. 정말로요.' (p.64)
2015년 2월, 토스의 모바일 송금 서비스가 정식 출시 되었을 때 송금을 완료한 후에 보여지는 메시지이다. 토스는 국내에서 UX 라이팅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IT 기업이지 않을까 싶다. 사용자 친화적이고 재치있는 문구로 주목받는 토스가 서비스를 처음 런칭했을 때부터 이런 재치있는 문구를 선보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초창기부터 '토스다움'이 꾸준히 이어지는 것이 대단하고 이런 토스 DNA가 현재 토스의 제품원칙, UX 라이팅 원칙, 기업 문화의 기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위험천만한 여정에 참가할 사람 모집" 적은 임금, 혹독한 추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의 수개월, 상시적인 위험,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을지 미지수, 성공할 경우 명예와 인정이 뒤따름. (p.90)
초창기 시절에 토스 구인 공고에서 인용된 영국 모험가의 남극탐험대원 구인공고이다. 최근 들어 많은 이들에게 IT 스타트업은 매력적인 업무환경으로 비춰지고 있다. 자율출퇴근제, 자유로운 기업 문화 등 MZ 세대가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갖고 있다. 다만, 소수의 잘나가는 스타트업(사실 이미 안전성을 갖춘 기업은 '스타트업'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다)을 제외한 많은 스타트업의 내부 상황을 살펴보면 결코 아름답지 않다. 투자사들의 투자금을 태우며 언제 흑자전환을 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성과를 내고 성장을 해야 한다. 야근이 일상이 될 수도 있고 월급이 밀리거나 고용보장성이 보장되지 않는 시기를 겪기도 한다. 이승건 대표가 초기의 토스를 남극탐험과 비교한 이유이다.
물론, 스타트업이 성공한다면 명예와 인정이 뒤따른다. 그리고 스톡옵션을 통해 금전적인 보상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성공을 통해 스타트업 단계를 '졸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수많은 스타트업은 소리소문없이 실패하고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에 합류하길 원하는 사람들은 결국 위에서 언급했던 '낭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수가 겪는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 싶은 마음. 편안함에 안주하기 보다는 한 분야에서 작게나마 혁신을 이루고 싶은 열정. 그리고 이 불확실하고 치열한 과정을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함께라면 해낼 수 있다는 믿음. 이런 낭만을 갖고 모이는 곳이 스타트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패를 부정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 토스팀은 언제나 더 빨리 실패를 선언하고, 거기서 배워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p.102)
"빨리 실패할 용기를 가진다"는 토스팀의 핵심가치 중 하나이다. 경력이 적든 많든, 능력이 얼마큼 뛰어나든, 누구나 실패는 두렵다. 의미 있는 실패를 장려하고, 실패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이 핵심가치가 가장 멋있게 다가왔다.
... 이제는 말하는 사람만 계속 하는 분위기가 됐다. 공론장에서 이승건의 말이나 결정에 반대하는 의견은 줄어들었다. 이제 막 100명을 넘긴 토스팀은 이승건에게 직접 말을 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양분되었다. 회사에 오래 다닌 사람들의 의견이 더 존중받고 비교적 최근에 입사한 팀원들은 발언권이 제한된다고 느꼈다. (p.147)
스타트업의 성장통, 또는 과도기라고 많이 표현한다. 스타트업 특성상 잘나가는 조직은 빠르게 성장하고 직원 수도 빠르게 늘어난다. 이런 가파른 성장 과정에서 초기멤버들과 새로 입사하는 직원들과의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기 마련이다. 새로운 멤버들과 비교했을 때 초기멤버들은 회사와 제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대표 및 경영진들과의 관계도 더 친밀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 또한 20명 미만인 스타트업에 합류해서 100명 이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경험했었다. 또 반대로 이미 80명 이상의 직원이 있는 스타트업에도 합류해 본 경험이 있고 책에 나온 내용들을 직접 경험했다.
이런 성장통 시기에 중요한 것은 확립된 기업 문화, 그리고 기존 멤버들의 마인드라고 생각한다. 팀 규모가 작으면 굳이 기업 문화를 확립하거나 명시할 필요가 없다. 규모가 작고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생긴다 해도 해결이 쉽다. 하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확립된 기업 문화가 없으면 명확한 채용 기준을 세우기 어렵고, 채용된 직원들도 적응이 힘들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 멤버들의 오픈마인드가 중요하다. 예전과는 환경과 상황이 달라졌다는 점. 달라진 만큼 이전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당연하게 변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점. 이를 인지하고 기존 멤버와 신규 멤버들이 원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기용님의 EO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원래 있던 사람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기는 거 같아요."
토스에서는 초창기부터 근무하던 최준호 개발자가 사내 문화의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고자 이승건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승건 대표 또한 열린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 문제해결에 나섰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토스팀은 50명에서 100명, 100명에서 500명, 그리고 2,000명이 넘는 조직으로 잘 성장해나갈 수 있었고 성장의 기반이 되는 기업 문화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이렇게 제품을 할지 말지, 예산을 얼마나 쓸지, 팀원 채용이 얼마나 필요한지 등 사실상 단위 조직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PO가 가진 권한과 책임은 막강해요.
p.159
PM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2016년쯤만 해도 국내에서 PM이나 PO는 꽤 생소한 직무였다. 국내에서는 쿠팡과 토스가 PO(Product Owner)를 많이 채용하고, 또 PO 개념을 많이 알린 두 기업이 아닐까 싶다.
토스는 온/오프라인에서 PO Session 등을 통해 꾸준히 PO 개념을 알리고, PO를 양성하고, 실력 있는 PO를 발굴해가고 있다. 아직 PO의 개념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PO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스타트업이 있는 반면 그 어느 스타트업보다 PO 직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토스는 PO들에게 매력적인 회사일 수밖에 없다. 토스의 사일로 조직구조 또한 PO에게는 일하기 좋은 업무환경이다. 프로젝트 마다 바뀌는 팀 구조 보다,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여서 해결하려는 문제의 맥락을 이해하는 팀원들과 꾸준히 호흡을 맞출 수 있는 환경은 PO 입장에서 큰 장점이다.
하지만 위 책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PO가 일하기 좋은 환경인 만큼 대단한 권한이 주워지고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마음껏 역량을 뽐낼 수 있는 환경과 함께 막강한 권한과 책임을 제공하는 토스는 결국 실력 있는 PO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되는 것 같다.
"증권사를 아예 처음부터 설립해보죠." (p.213)
주식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도전했던 펀드운용사 인수에 실패하자 이승건 대표는 직접 증권사를 차리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팀 동료들은 이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이승건 대표는 무엇이든지 과감히 도전했던 토스팀이 "야수성"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팀원들의 동기부여를 위해 이승건 대표는 직접 금융위원장을 만나고 증권업 혁신의 필요성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팀원들에게 공유하며 설득한다.
가장 먼저 이승건 대표가 잃지 않았던 "야수성"에 감탄했다. 이미 금융플랫폼으로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고 토스팀원들도 어느 정도 안주하는 상황에서 이승건 대표는 달랐다. 증권사 설립과 운영이 쉽지 않다는 것은 그 어느 팀원보다 더 잘 알았을 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초창기에 여러 번의 실패를 딛고 성공을 맛본 경험도 도움이 됐을 것이고 무엇보다 어떤 것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토스팀원들을 향한 굳은 신뢰가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증권사 설립 진행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금융위원장과 대화를 통해 팀원들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했던 방식 또한 훌륭한 리더의 면모를 보여준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6개월을 돌아보면, 저는 동료들과 신뢰를 잘 쌓고 싶었고, 토스페이먼츠에 멋진 비전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토스페이먼츠 리더로서 저 자신에게 30점밖에 줄 수 없습니다. 그걸 받아들이되 희망은 버리지 않으려고 해요.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게 바로 저고, 이번에도 곡선을 그리면서 갭을 줄여나갈 겁니다." (p.248)
토스페이먼츠팀의 리더를 맡게 된 김민표님은 본인과 팀원들 간의 신뢰관계, 친밀감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느끼자 스스로의 능력과 자격을 의심했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고 정면 돌파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팀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본인이 부족했던 점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전달했다. 그리고 동시에 본인의 능력에 대해 어필하고 더 발전된 모습을 약속했다.
여러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리더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PM으로서 때로는 팀을 리드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었다. 여느 조직도 그렇겠지만 불안정한 환경의 스타트업 특성상 조직 내 리더의 중요성, 그리고 리더와 팀원들의 신뢰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매 순간 깨닫는다. 리더가 자신의 부족함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어려워하는 다소 아쉬운 리더도 있지만, 그보다 자칫하면 팀원들이 능력 없는 리더라고 판단 할 수도 있는 계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김민표님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전달하면서 다양한 실패를 극복해온 사례들도 함께 공유했다. 팀원들에게 솔직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자신감도 함께 보여주면서 팀원들의 신뢰를 얻은 현명한 리더의 면모를 보여줬다고 생각된다.
고객보호팀 신설은 어쩌면 윤기열이 나서서 주장할 일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일반적인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일지라도, 더 나은 제안을 발견했을 때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p.270)
스타트업은 동일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정을 갖고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만큼 회사의 목표, 함께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전사에 공유되는 것이 중요하고 경력, 나이, 직무 등을 떠나 모두가 그것에 공감하면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인 만큼 꼭 본인의 직무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더라도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여러 방면에서 제안을 할 수 있고 이런 문화가 장려되어야 한다. 토스의 이 사례 또한 윤기열님의 열정과 더불어 저런 제안을 해도 안전한 환경이 마련되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의견을 낼 수 있고 존중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끔 형성된 토스의 기업 문화가 빛을 발한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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