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씨오 Apr 19. 2019

[축구, 그리고 숫자] EP 1: Key Pass

'플레이메이커'의 역량 Part 1

축구에서 제일 상징적인 등번호는 단연코 '10번'이다. 팀 내 에이스의 번호로 널리 알려진 10번. 세계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10번을 달고 활약했으며 '넘버 텐'이라는 단어는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플레이메이커'를 뜻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90~00년대 선수로는 지단, 토티, 리켈메 같은 선수가 있고 현역에서는 더 브라위너, 에릭센, 모드리치 등이 '넘버 텐'의 계보를 잇고 있다. 

역대 최고 '넘버 텐'으로 평가받는 마라도나 역시 10번을 달고 뛰었다 (출처: Prensa Futbol)

팀 공격의 중심이 되는 '넘버 텐'은 팀 내의 가장 영향력 있는 포지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플레이메이커 = 공격형 미드필더' 공식은 현대 축구에서는 점점 퇴색되가고 있다.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은 선수가 사이드에서 뛰는 경우도 많고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라는 후방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는 포지션의 비중도 커지고 있다. 비록 상징적인 '넘버 텐'과는 점점 멀어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매력적인 '플레이메이커'를 평가할 수 있는 데이터는 어떤 것이 있는지 한번 알아보자.


  표: 어시스트 (Assist)

2018년 4월 18일 기준 Playmaker Award 순위 (출처: EPL 공식 사이트)

작년 EPL은 "Playmaker Award"라는 이름의 상을 신설하고 한 시즌 어시스트가 가장 많은 선수에게 수여하기로 했다. 상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플레이메이커의 역량을 판단할 때 제일 흔하게 사용되는 지표는 어시스트다. 골을 넣는 공격수를 돕는 역할이다 보니 어시스트 개수로 평가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시스트는 축구에서 오래된, 아주 기본적인 데이터에 불구하고 어시스트 기록 하나로 플레이메이커의 역량을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시스트는 공격수가 패스를 골로 연결시켜야만 기록된다. 아무리 좋은 패스를 받아도 공격수가 골로 성공시키지 못하면 기록이 안된다. 결국 공격수의 역량이 포함된 데이터이며 온전히 플레이메이커를 평가할 수 있는 데이터는 아니다. 또한, 한 경기당 한 개의 어시스트가 기록될까 말까 하는 축구 경기 특성상 어시스트 개수만 가지고 선수를 평가하기에는 표본의 크기가 너무 작다.


 표: 키패스 (Key Pass)

비교적 최근 들어 기록되기 시작한 데이터가 바로 키패스(Key Pass, KP)다. 스포츠 데이터 전문 기업 Opta는 키패스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The final pass or pass-cum-shot leading to the recipient of the ball having an attempt at goal without scoring. 

슈팅으로 연결되기 직전 패스라고 볼 수 있다. 키패스는 공격수의 영향을 최소화하여 어시스트와는 다르게 패스를 제공한 선수의 역량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콜롬비아전에서 나온 이재성의 키패스 (출처: KFATV)

이 장면에서 이재성은 완벽한 타이밍의 스루패스로 황의조에게 골 기회를 제공하지만 골로 이어지지는 않아 어시스트는 기록하지 못했다. 어시스트 기록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이재성의 수준급 패스는 데이터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다만, 키패스 데이터를 보게 된다면 이재성의 패스가 기록되었을 것이고 경기를 안 본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이재성의 활약에 대해 알 수 있다. 이 차이점이 바로 키패스 데이터의 활용 가치이다.


EPL '도움왕'들의 키패스 데이터

EPL 어시스트 순위 (출처: EPL 공식 사이트)

EPL 공식 사이트에서 어시스트 기록 상위 10명의 선수 데이터이다. 공동 10위가 7명이나 됐지만 그중 출장시간이 제일 적은 아구에로를 상위 10명에 포함했다. 우선 이 선수들의 키패스 데이터를 보기 전에 이 선수들의 '90분당' 어시스트 기록을 계산하여 재 정렬했다. 


(*축구팬을 제외한 일반 사람에게 '90분당' 데이터는 생소할 수 있다. 주요 미디어에서도 선수의 기록을 골, 어시스트 등의 합계 기록을 전달하지 '90분당' 데이터를 얘기하는 건 드물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데이터 분석 관점에서는 합계, 또는 경기당 기록보다 '90분당' 데이터의 활용 가치가 더 높을 때가 많다. 이 글에서는 어시스트 합계 상위 10위의 '90분당' 데이터를 계산했으니 합계와 '90분당' 데이터를 함께 활용한 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90분당' 데이터 관련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어시스트 합계 상위 10명의 90분당 어시스트 기록

90분당 데이터로 정렬했을 때 제일 눈에 띄는 부분은 르로이 사네가 평균 90분당 0.5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에릭센, 아자르 보다 더 효율적으로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WhoScored를 통해 위 상위 10명의 선수들의 90분당 키패스 기록(KP90)을 산출하여 랭크를 매긴 뒤 90분당 어시스트 기록 랭킹(A90 Rank)과 비교해봤다. 

어시스트 합계 상위 10명의 90분당 키패스 기록

90분당 어시스트 기록과 비교했을 때 분명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이번 데이터까지 총 3 종류의 데이터(어시스트 합계 Top 10, 상위 10명 선수들의 90분당 어시스트, 해당 선수들의 90분당 키패스)만 보고 어떠한 확실한 결론을 낼 수는 없지만 몇 가지 가정은 할 수 있다.


1. 에단 아자르, 크리스티안 에릭센, 라이언 프레이저

아자르, 에릭센, 프레이저는 어시스트 합계 Top 3, 90분당 어시스트 Top 4, 90분당 키패스 Top 3에 랭크했다. 모든 데이터 측면에서 뛰어났던 이 세 선수는 이번 시즌 EPL의 플레이메이커로서 뛰어난 활약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르로이 사네

사네는 4번째로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으며 90분당 어시스트 기록은 0.53으로 독보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90분당 키패스 기록을 보면 10명 중 6위로 상위권 선수들에 비해 다소 뒤처진다. 키패스 데이터를 봤을 때 사네의 어시스트 기록은 팀 동료의 골 결정력의 도움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으며 이번 시즌 운이 많이 따라 이 어시스트 기록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3. 주앙 무티뉴

무티뉴의 90분당 어시스트 기록은 10명 중 최하위였으나 90분당 키패스 기록은 4위에 랭크했다. 사네의 상황과 반대로 무티뉴는 팀 동료 공격수가 마무리를 잘 못해줬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조한 90분당 어시스트 기록에 비해 키패스 데이터가 얘기하는 무티뉴는 여전히 실력 있는 플레이메이커이며 이번 시즌 울버햄튼 공격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롤로그에서도 강조했지만 어떠한 데이터도 100% 객관적일 수는 없고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한다면 데이터 분석을 통해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EPL 키패스 장인

90분당 키패스 기록 Top 5

WhoScored 사이트는 올 시즌 EPL 선수의 평균 출장 수 이상을 뛴 선수 데이터를 따로 필터 할 수 있고 이 선수들의 90분당 키패스 기록을 살펴보았다. (더 브라위너는 90분당 키패스 3.49개를 기록하며 1위에 해당되는 기록이지만 올 시즌 17경기 출전에 그쳐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다.) 키패스 데이터 상위 5명 중 무려 4명이 어시스트 합계 Top 10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던 선수들이다. 이 4명의 90분당 어시스트 데이터(A90)를 봐도 위에서 다뤘던 10명의 기록에 못 미친다. 


윌리안은 에릭센, 프레이저와 비교했을 때 무려 90분당 약 1개의 키패스를 더 기록했다. 아자르의 어시스트 기록에는 못 미치지만 아자르와 함께 첼시 공격의 중심이라고 충분히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제임스 매디슨 같은 경우도 90분당 3개 이상의 키패스를 기록하고 있으며 올해 레스터 공격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자르는 90분당 키패스 Top 5에도 이름을 올리며 EPL의 대표적인 플레이메이커임을 데이터로 한번 더 확인시켜준다.


플레이메이커 평가 (feat. 어시스트 & 키패스)

어시스트 기록만 봤었다면 위 4명 선수들의 활약에 대해서 모르고 넘어갔을 수도 있다. 물론, 더 많은 키패스를 기록한다고 해서 더 뛰어난 플레이메이커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시스트 기록과 함께 키패스 데이터를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방식으로 플레이메이커를 평가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데이터 분석의 장점이자 매력이다. 다음 글에서는 키패스 외에 또 다른 플레이메이커 평가 지표를 소개해 보겠다.


(배경 사진 출처: Football Whispers)

작가의 이전글 [축구, 그리고 숫자] EP 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