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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 Dec 30. 2020

우리의 찬란한 일상들, 로즈 와일리전

우리의 일상들이 이렇게 찬란했나, 하고 


오랜만의 예술의 전당이었다. 평소보다 허전한 느낌의 로비를 지나 입장을 하기 위해 열을 재고 체크인을 했다. 마스크를 쓰고 어떻게 여름을 보내냐고 생각했던 것이 벌써 반년 전. 어느새 일 년을 꽉 채워 다시 겨울이 돌아왔다. 괜히 콧등이 시큰해져 온다. 


코로나는 아직도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집 밖으로 나오는 것도 오랜만이라 낯설게 느껴지는 마스크 때문에 숨도 버겁다. 괜히 연말과 연초에 의미를 부여해서인지, 올해의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언제나처럼 향유하던 일상이 더 그리워진다. (예술을 향유하는 것도 아니고 일상을 향유하다니. 하지만 이제는 코로나 전의 일상에 향유를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조심스럽고 소중한 마음으로 아마도 올해 나의 마지막 전시가 될 로즈 와일리 전을 보고 왔다. 로즈 와일리는 '할머니 화가'라는 별명을 얻으며 최근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작가다. 1934년 생이니 올해 86세의 나이인데, 젊었을 때부터 작가로 활동한 것이 아니라서 그녀의 경력이 더 눈에 들어온다. 


로즈 와일리는 원래 그림을 좋아했지만 아이를 키우는데 집중하다가 아이들이 자란 후에 여유가 생겨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40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해, 76살의 생일을 앞두고 <가디언>지에 '영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언급되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입구 옆에 놓여 있던 로즈 와일리 모티브 케이크






I want to be known for my paintings 

– not because I'm old



느지막한 나이에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문장을 쓰려다 완성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늦은 나이냐는 의문을 차치하더라도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나이가 아니라 작품으로 알려지고 싶다는 그녀의 말처럼 나이보다는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할머니 화가라는 별명을 살짝 걷어내도 로즈 와일리의 그림은 맑은 찬란함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로즈 와일리의 그림들은 그녀의 유쾌함을 담은 듯 발랄하다. 하이틴 영화 속 소녀처럼 귀엽고 톡톡 튄다. 작품 앞을 살짝 스치기만 해도 재잘재잘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곳곳에 로즈 와일리의 모습이 붙어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전시장의 전체적인 톤이 핑크빛인 것도, 들어서자마자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이 분위기에 한몫했다. (전시를 축하하기 위해 보내온 영상 같았다.) 그녀의 정체성으로 가득한 공간을 걷는 느낌이었다. 







천진난만한 일기 같은 전시를 가득 채운 것은 대부분 로즈 와일리가 일상에서 영감을 받은 그림이다. 그녀는 일상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을 그림의 소재로 썼다. 영화, 책, 역사, 뉴스, 잡지, 스포츠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물이나 장면들이 캔퍼스 위를 뛰어논다. 알고 있는 이가 나오면 재미있고 모르는 이가 나오면 궁금하다. 그렇기에 더 목을 쭉 빼고 살펴보게 되나 보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전시라서 오랜만에 컬렉팅 하는 것처럼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흔적으로 남겼다. 가장 처음 카메라를 빼어 들었던 것은 바로 <Queen of Pansies (Dots)>(2016).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작품이다.  



Queen of Pansies (Dots), 2016, Rose Wylie





쫑쫑거리는 노란색과 깊은 보라색의 팬지꽃에 둘러싸인 여왕이 인상적이다. 눈을 감고 있는 여왕의 모습은 드레스의 형태와 주황색의 은은함 때문에 어쩐지 당근케이크가 생각나기도 한다. 옷이 인상적이어서 찾아보니 소 마르쿠스 헤라르츠가 그린 여왕의 초상을 본 것 같다. 초상의 여왕이 당당하고 위엄이 넘치는데 비해 로즈 와일리의 여왕은 온화하고 다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러 캔버스를 이어 붙여 그리기 좋아하는 로즈 와일리 답게 두 개의 캔버스가 나란하다. 왼쪽에는 엘리자베스 1세가, 오른쪽의 캔버스에는 팬지꽃과 글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정중앙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뜻하는 약자 ER이 쓰였고, 오른쪽 위에는 팬지의 뜻이 프랑스어 팡세(생각)에서 유래했다는 오필리어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녀의 작품을 보자마자 영국적인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딱 그 증거를 찾은 것 같아 신이 났다. 영국의 여왕과 셰익스피어의 오필리어. 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세계를 슬쩍 내비치는 느낌이다. 


이 작품에서 로즈 와일리 특유의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넓은 면에 꽉 들어찬 선명한 색감, 자유롭게 쓰인 글씨, 정확한 윤곽선으로 구분되는 형태가 그렇다. 덕분에 예술의 뻔한 고상함이 아니라 아이들의 그림 같은 천진한 담백함이 돋보인다. 


이렇게 그림을 그린 이유는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작품에 그려진 것 이상의 메시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생각한 대로 그린 것을 보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즈 와일리 작품 속 인물이나 사물들은 정확히 특정되어 그려진다.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이 화폭에 옮겨지기 때문에 로즈 와일리 느낌이 한 스푼 섞인 대상들을 보는 것이 꽤 재미있다. 





Kill Bill(film notes), 2007, Rose Wylie




영화광인 로즈 와일리에게 영화는 캔버스에 오를 매력적인 소재다. 영화를 보고 남기는 Film Notes는 일종의 번역 작업인데, 영화 장면을 재현하고 왜곡하는 방식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입힌다. 


이 작품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Kill Bill' 속 살해 장면을 그린 작품 'Kill Bill(film notes)'이다. 역시 두 개의 캔버스가 붙여져 있는데, 제목이 적힌 그림과 주인공 베아트릭스 키도의 머리카락이 슬쩍 보이는 그림의 시야가 다르다. 영화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야를 로즈 와일리가 재해석해 그려 넣은 것이다. 


언뜻 보면 같은 그림을 연달아 그린 것 같지만 창문과 창문 밖의 달의 모습, 그리고 시체의 머리 방향 등을 살펴보면 상당히 치밀하게 분석하여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키도의 금발이 보이는 그림은 우리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어준다. 왼쪽의 그림이 단순히 살해 장면을 목격한 감상을 준다면 오른쪽은 살인을 했을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시체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지 않았던 이라도 이 순간에 감도는 긴장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Scissor Girl


로즈 와일리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금발머리의 여성이 다리를 쭉 벌리고 있는 그림들이다. 영국의 인기 토크쇼인 <그레이엄 노튼 쇼>가 시작할 때 오프닝을 자세히 보면 바비 인형처럼 보이는 인형들이 쓱 지나간다. 잠깐 슬로 모션이 되는 사이 금발머리 인형이 다리를 일자로 쭉 찢은 모습이 보이는데, 로즈 와일리는 여기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Hullo, Hullo, Following-on After the News, 2017, Rose Wylie (Photo by Soon-Hak Kwon)



오프닝 영상의 전후로 물속에 장난감들이 풍덩 빠지는 모습이 있어서 물속을 표현하기 위해 문어를 같이 그렸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동안 잘 보이지 않는 팔을 아예 생략해 그리기도 했다. 


강조된 속눈썹과 금발머리, 휙 찢어진 다리의 형상을 로즈 와일리는 점차 가위에 연상시켰다. 이러한 작품들을 Scissor Girl라고 총칭한다. 3관은 테이트 모던 VIP룸 작품들을 전시한 것이라 촬영이 불가능했는데 이 곳에서 다리를 가위에 비유한 색다른 조각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Sissor Girl, 2017, Rose Wylie



7관에서 만난 <Sissor Girl>(2017)는 아예 가위의 형상이 여성과 함께 그려졌다. 다른 그림들과 달리 완벽한 옆모습으로 한쪽 눈과 입술이 보이는 것이 특징적이다. 처음으로 표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물과 문어가 없는 대신 밤하늘을 상징하는 것처럼 까만 배경에 별이 그려졌다. 다른 작품들이 자유롭고 발랄한 느낌의 Scissor Girl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뛰어넘는 느낌 같았다면 이 작품 속의 모습은 금발의 소비되는 여성의 모습으로 내심 느껴지기 때문인지 자꾸 신경이 쓰였다. 빨간 입술과 강조된 눈 사이 공허해 보이는 눈동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위를 뜻하는 Scissor에서 c가 빠져 Sissor가 되었다는 점도 특징이다. 




Six Hullo Girls, 2017, Rose Wylie



<Six Hullo Girls>(2017)에서는 여섯 명의 Scissor Girl와 문어 두 마리가 보인다. 특히 문어의 빨간색 눈이 인상적이다. 다리를 확 찢은 여성들의 밑으로 만화적인 선이 그어져 있어 동작의 역동성이 느껴진다. 발레를 하거나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색감이 마음에 들었는데 티켓과 포스터가 이 그림이라 좋았다. 






성실함으로 쌓아올린 일상들






마지막 작품까지 다 본 후에, 로즈 와일리의 아뜰리에를 살펴보고 전시장에서 나왔다. 권순학 작가가 그녀의 작업실을 파노라마로 촬영해 입체적인 공간으로 재현한 것이었다. 빈말로도 잘 정돈되었다고 할 수 없는 작업실 모습을 보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방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물론 신문지와 물감이 널브러져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 곳에 쌓여 있는 것은 게으름보다는 성실함과 노력이다. 전시 내내 로즈 와일리의 작품을 보며 느낀 감상이었다. 이 글에서 몇 개의 회화만 소개했지만 입체적인 조각 작품을 포함해 정말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러 캔버스를 활용하는 만큼 한 벽을 꽉 채우는 거대한 작품들도 많다. 보기에 쉽고 발랄한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넓은 캔버스를 장악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크고 많은 작품들을 그려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로즈 와일리의 그림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일상이라는 이름의 유쾌함을 알려준다. 매일 같이 만나는 TV쇼, 영화, 역사, 스쳐간 사람들에 대해서 그녀는 자기만의 다채로운 색깔을 입힌다. 캔버스에 옮겨진 일상의 조각들은 새삼스럽게 우리가 이런 세상을 살고 있었나 두리번거리게 만든다. 


코로나로 일상이 사라져 하루의 대부분을 모니터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좁은 이 바운더리 안에도 소중한 일상이 있을 거라는 마음이 쑥쑥 자라났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가령 어제 본 넷플릭스의 어떤 드라마라던지.





로즈 와일리는 유명해지기 전처럼 지금도 매일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도 묵묵히 틔워왔던 싹은 이제는 나무로 단단히 자라고 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발견한 일상의 조각들로 더 큰 그림들을 그려가면서. 오늘 로즈 와일리의 작품에서 주워가는 조각을 내 캔버스에 소중히 붙여본다. 무언가 차곡차곡 쌓아가면 언젠가 그처럼 빛을 보겠지 하고. 마스크에 막히는 숨은 답답하지만 어쩐지 속은 탁 트이는 어느 날이었다. 어디론가 훅 날아가는 듯한 그녀의 Scissor Girl들이 꽤 오래 머릿속을 떠다녔다.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로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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