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어느 날, 문득 밥을 먹다 나의 젓가락질이 고민이 되었다. 아이가 생기면 엄마의 젓가락질이 우스워 보이지 않을까? 따뜻한 밥을 한 숟갈 뜨는 아이의 밥 위에 맛난 반찬을 올려주려고 하는데 “뚝~” 반찬은 떨어지고 양념이 여기저기 튀는 장면이 머리를 스쳐가자 혼자 고갯짓을 하며 “안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 상상이 들자 20년 넘게 해 왔던 젓가락질을 바르게 잡기 셀프 교정에 바로 착수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기 위해 잡는 법부터 집에서 틈틈이 콩알까지 옮기며 드디어 남들이 봐도 제대로 된 젓가락 질을 몸에 익혀가기 시작했고 얼마 뒤에는 밥상에서 숟가락보다 젓가락을 더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익숙한 습관이 눈에 거슬리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나의 글씨체였다. 학생시절 바르게 써보고자 했지만 생각이상으로 이쁘게 쓰기는 어려웠다. 이후 내가 선택한 것은 빠른 타자였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컴퓨터를 배웠는데 당시 친구들 중에서는 빨리 접한 편이었다. 학원을 다니며 컴퓨터 언어인 베이식을 배웠다고 하면 조금 감이 올려나? 이쁘지 않은 글씨체를 빠른 타자로 채우며 나는 그렇게 나의 부족함을 메꾸기보다 다른 방법을 찾아 나간 명석한(?)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대학시절까지 내 글씨체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악필도 아니었고 말이지.
시간이 흘러 직장생활을 하니 중간중간 손글씨가 쓰일 일이 많았다. 크고 작게는 갑작스러운 경조사 봉투 챙기기, 각종 회의 등등 이후 아이가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를 가면 신학기마다 손글씨로 적어가야 할 종이들이 속속 날아온다. 대부분은 여유 있게 와서 학교 홈페이지를 찾아가면 양식을 다운받아 컴퓨터로 작성해 보내기도 하며 순간순간 모면하기도 했다. 또 개인적으로 책을 즐겨 읽다 보니 좋아하는 글귀가 눈에 들어오면 어딘가 끄적여두고 싶어 진다. 대부분은 블로그등 SNS 남겨두지만 역시나 자신만의 메모장을 포기하기도 싫어 나만 보는 손글씨 독서기록장은 있었다.
심각한 것도 먹고사는데 문제가 되는 것도 누가 하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드문 드문 ‘아~ 좀 더 바르게!’ 라던지 , ‘조금 더 가독성이 있으면 좋겠는데’ 정도의 아쉬움은 늘 묻어났다.
그렇다.
올해는 이 아쉬움을 마무리 짓기로 한 것이다.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지만 늘 마음 한편에 아쉬웠던 나의 글씨체 교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물론 이전에 어쩌다 마음이 동하면 어느 해는 글씨체 교본 책을 사서 따라 하다 접고 또 어느 해는 유튜브나 영상 수업 등으로 따라 하다 접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뭔가 바꿔보려는 노력은 해왔다. 이번 해는 나만의 단정한 손글씨를 위해 선생님께 직접 배워보기로 했다. 이 정도까지 해보고도 안 되는 거면 아쉬움 마음도 더는 만들지 말자는 거다. 오래된 미련이기도 했고 동시에 나를 바꾸는 방법이기도 했다.
삶을 변화하고 싶어 퇴사를 했다. 하지만 정작 바뀌는 것은 월급을 받는 삶을 사느냐 아니냐였고 사회생활을 하느냐 아니냐였을 뿐이었다. 퇴사만 하면, 하고 기다렸던 것들을 해봤지만 to do list와 버킷 리스트였을 뿐, 인생 역전 이라던지 삶의 물고를 확 바뀌게 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정작 삶의 다르게 살고 싶다면 내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 공부하거나 배우고 싶어 했다. 경험과 배움이 부족하다고 외부에서 답을 찾으려고만 했다. 정작 내 몸에 붙어 있는 익숙한 것들은 둘러보지 못한 채 말이다.
올해는 인생을 바꾸겠다는,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커다란 목표는 설정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매일 하는 내 삶을 좀 더 업그레이드시켜 보기로 했다. 독서를 한다면 좀 더 깊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집밥을 더 맛있게 혹은 멋스럽게 먹을 수 있게, 다이어리든 가계부든 독서기록장이든 매일 쓰는 손글씨도 좀 더 보기 좋게, 새로운 것보다 하고 있는 것을 한 단계 품격을 높이거나 다른 방법으로 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글씨체 교정을 해보기로 했다. 빠르게 쓰던 습관을 버리고 천천히 또박또박! 나를 가꾸 듯 글씨체도 곧 나라 생각하며 가꿔보기로 말이다. 인생 말고 글씨체부터 바꿔 보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