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체 간격에 대하여
글씨체를 잘 쓰기 위해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놀란다. 사람 사는 것과 다를게 하나 없기 때문이다. 글씨체를 잘 쓰기 위해서는 우선 내 글씨체를 분석한다. 그래야 개선할 부분이 명확히 나오기 때문이다. 바르게 글씨를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지 내 글씨체의 문제점을 찾아본 적이 없던 나는 이 순간에도 당황했다. 너무 당연한데 한 번도 글씨체에 이 당연함을 대입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말이다. 내가 얼마나 글씨체라는 형상에 대하여 가볍게 생각하고 살았는지 실제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생활 응용력이 없는 사람인지도 말이다.
제삼자가 되어 나의 글씨체를 바라보니 지적거리가 한가득 이었다. 자음, 모음 모두 글자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기울어 쓰고 있어 통일감이 없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전체적으로는 답답해 보였다. 가독성 따위는 개나 줘버려. 아~ 이래서 내가 다이어리를 쓰다 말았구나, 이래서 내가 필사노트를 쓰고 두 번은 펼쳐보지 않는구나! 그간 나의 행동들도 이해가 되었다. 알아야 이해가 된다는 말은 어디든 적용된다.
글씨를 쓸 때 자음과 모음의 통일감도 중요하지만 거리도 중요하다.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글자와 글자 사이의 간격 자간, 단어와 단어 사이의 간격 띄어쓰기,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 행간이 바로 글자의 중요한 간격, 거리를 일컫는 말이다. 내 글씨는 바로 이런 글자 간의 거리를 어느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정스럽다 못해 바글바글 붙여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글자는 답답스러울 수밖에.
글씨를 쓰는 일은 한 글자 완성하기 위해 획 하나부터 자음과 모음의 공간도 고려해야 한다. 신선했다. 그리고 충격이었다. 글자도 공간이 필요하구나.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고려하면서 써야 하는구나. 적당히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며 생각했던 인간관계처럼 글자도 한 획 한 획 적당한 거리를 찾아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글자는 꽤 괜찮은 공식이 있어 그 공식대로 꾸준히 연습하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그 의지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지만 말이다. 다시 말하면 서두르지 말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안다고 한 번에 고쳐지는 것이 아닌 나쁜 습관처럼 글씨체도 안다고 바로 바뀌지 않으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나의 간격을 익혀 나가야 한다. 글씨체에도 나만의 규칙들이 하나씩 정해지면 다시 손에 익을 때까지 욕심을 버리고 물러서서 연습을 해야 한다. 간격도 통일감이 필요하다. 내 글씨체에 맞는 나만의 간격을 찾아도 같은 간격이 유지될 수 있도록 새로운 감각이 새롭지 않을 때까지 손이 익혀야 한다.
여전히 내 글씨체는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지키지 못한 글씨가 내 눈을 어지럽힌다.
왜 이리 붙은 거야.
중심은 어디로 잡은 거야.
배우면 뭐 해!
의지가 약해 점점 나에게 독한 피드백을 날리고 있다.
에헴.... 이게 뭐라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줄려고 하는지. 글자도 적당한 간격이 필요한데 적당한 거리는 나 스스로에게도 필요하다. 오늘 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때, 내일 또 조금 더 잘 쓰면 되는 거지. 상처 주지 않을 만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