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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치도치상 Apr 07. 2024

신념과 사실 중 우리는 신념을 택한다

정치적 신념과 인지 부조화 

투표의 계절입니다.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등원하고 아내와 저는 미리 투표를 하고 왔습니다. 오는 길에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 했고요. 아내와 저는 같은 당을 찍었습니다. 비밀투표라고 하지만 정치적 견해의 다름으로 가정에 불화가 일어나는 곳도 있다 하니 매우 다행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카페에서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우리 당이 아닌 상대 당의 후보가 내세운 공약이 너무 괜찮고, 우리 당의 후보가 그렇지 않다면 누구를 찍겠냐고요. 아내는 우리 당의 후보를 찍고 상대 당의 후보의 공약을 배우라고 전화를 할 것이라 했습니다. 저요? 매우 고심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 당의 후보가 내세운 공약이 상대 당의 후보의 공약에 미치지 못한다면 공약의 실천력도 그러할 것 같아서요. 고심을 거듭한 후에 우리 당을 찍어야겠죠? 


다행스러운 일인지 우리 당이나 상대 당이나 후보의 자질이나 공약 측면에서 크게 다를 건 없어 보이더라고요. 


레온 페스팅거 (Leon Festinger)는 오크파크 연구로 유명한 심리학자입니다. 1954년 일리노이 주 오크파크에서 한 사이비 종교집단은 외계인에게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종교집단은  12월 21일에 홍수가 날 것이며,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오직 독실한 신자들만이 비행접시에 의해 구조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페스팅거는 이 종교집단의 기사를 신문에서 읽고 자신의 이론, ‘인지 부조화’를 증명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12월 21일 “종말”이전과 “종말”이후에 종교집단을 방문하여 인터뷰를 합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종말”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종교집단의 신자들이 외계인에 대한 신앙을 저버렸을 것이라 예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페스팅거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인지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기들의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페스팅거의 예상처럼 세상의 종말에 대한 믿음과 종말이 실제 벌어지지 않은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들은 더 열렬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헌신 덕에 “세상이 종말을 면하게 되었다”라고 인터뷰를 합니다. 


페스팅거는 사람들이 자기 세계에 질서를 세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보았습니다. 질서의 핵심은 일관성입니다. 이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침 식사는 반드시 커피와 베이글을 먹어야 한다든지, 성당에 앉아야 하는 곳은 늘 동일한 좌석이어야 한다든지, 가게 문을 열고는 꼭 담배를 피워야 한다든지 습관을 형성합니다. 이 일관성이 어떤 외부적인 혹은 내부적인 상황에 의해 흐트러질 때 사람들은 불편해합니다. 


페스팅거는 신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보았습니다. 내 신념의 일관성을 흩트리는 현실 혹은 모순되는 증거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불편해합니다. 현실과 증거를 인정하게 되면 과거 믿었던 신념이 흔들리게 됩니다. 즉, 현실/증거와 과거 믿어왔던 신념 사이에 심각한 부조화 때문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페스팅거는 이 상태를 ‘인지 부조화’라고 명명했습니다. 


사람들은 ‘인지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의 신념과 현실/증거를 일관성 있게 해석하려고 노력합니다. 보통 신념을 버리지 않은 채 주어진 증거를 부정하거나 신념에 맞추어 현실을 왜곡한다고 페스팅거는 보았습니다. 마치 사이비 종교 집단이 자신들의 믿음과 헌신 덕에 세상이 종말을 면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그는 보았습니다. 


저는 정치적 신념 역시 인지 부조화 과정을 거친다고 봅니다. 우리라는 인간이 "이성적인" 혹은 "상식적인" 판단을 하면 좋겠지만 보통 그렇지 않다고 레온 페스팅거가 이미 얘기를 한 바 있습니다. 정치적인 신념과 다른 사실 알게 되더라도 인지 부조화를 느끼고 객관적 사실에 대해서 불편한 감정을 느낍니다. 내가 오랜 시간 지녀온 일관성(정치적 신념)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어진 사실을 부정하거나 현실을 왜곡하여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저는 인지 부조화가 일어나지 말아야 하거나 객관적 사실을 받아들이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심정적으로 불편한 것은 불편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신념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어 온 것이니까요. 단지 우리가 그러하니 상대의 인지적 부조화 과정 역시 인정해 주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정치인들이 곧잘 얘기하는" 더 나은 세상이 실제로 오지 않을까요? 정치적인 올바름이 아니라 서로에게 너그러워지는 걸로요. 


어쨌든 어떤 당이 되었건 누가 되었건 반드시 투표는 하셨으면 합니다. 


참고 자료

콜린 외 공저. 심리의 책.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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