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 Mar 25. 2024

소아과에서 만난 무표정 엄마




콜록콜록. 환절기 맞이 감기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저녁부터 이어진 아이 둘의 기침 소리가 새벽까지 이어져 아침이 되자마자 똑닥 앱을 열어 소아과 대기를 걸어두었다.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오전이었다. 오후에는 비가 아주 많이 올 예정이라고 안전 문자까지 왔다. 5명 대기자가 남은 것을 확인하고 출발했기에 시간을 잘 맞추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5명이 줄어들지 않아 짜증이 솟구치던 그 순간. 내 눈에 한 엄마가 들어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엄마의 무표정에 눈길이 갔다. 소아과 대기실에 있던 많은 보호자들은 짜증이 반쯤 섞인 표정이다. 무료하고 무력하고 걱정스러운 누구나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그 엄마는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고 복도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쌍둥이 유아차에 손을 얹은 모습으로. 유아차 안에는 돌이 갓 지났을법한 남자 쌍둥이가 쪽쪽이를 입에 문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칭얼거리지도 않고 잘 앉아있구나 생각을 하기도 했다. 간간이 눈길이 가서 지켜보아도 같이 온 일행은 없었다. 아이들이 어디가 아파서 왔을까? 한 명만 아픈 걸까 둘 다 아픈 걸까? 속으로 궁금했다. 그러다 우리 차례가 되었고 나는 곧 그 엄마를 잊었다.     



두 아이를 이끌고 진료를 보고 나니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 약국에서조차 대기가 길어 남편은 지하 주차장 2층에서 차를 가져오기로 하고 나는 약을 탄 후 병원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수북한 약봉지 두 개를 가방에 쑤셔 넣으며 곧 차를 타고 귀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약국을 나와보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문득 아침에 받은 안전 문자가 떠올랐다. 들어오고 나가는 차들로 주차장이 엉망이라 조금 더 기다려 달라는 남편의 전화가 왔다.      




우리처럼 주차장에서 빠져나올 차를, 혹은 우산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병원 입구가 북적였다. 주차장에서 한 대씩 나오는 차를 골라서 타고 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짧은 기다림을 보내었다. 꼬마 한 명이 “아빠차다!” 소리쳤는데 옆에서 엄마가 “저 차 아니야.”라고 대답해서 사람들이 조금씩 웃었다. 쏟아지는 빗소리와 알록달록한 우산들 콜록대는 기침 소리와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모인 사이로 거대한 유아차가 한 대 섰다. 뚜벅뚜벅 한 치의 망설임이 없는 발걸음으로 걸어와 한발짝만 더 나서면 비를 쫄딱 맞을게 뻔한 곳에 유아차가 멈춰 섰다. 무표정의 엄마와 그녀의 쌍둥이 유아차였다. 그녀 곁에는 여전히 동행자 없었고 안타깝게 우산도 없어 보였다. 한 시간 전쯤엔 나 혼자 그녀를 훔쳐보았지만 이제는 모두가 그녀를 주시하고 있다. 비가 와도 와도 너무 많이 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갈지 모두가 숨죽여 지켜봤다.      



 약국에서 탄 약봉지를 크로스백에 넣은 뒤 유아차 밑 바구니에 가방을 밀어 넣었다. 가방 옆 커다랗고 두꺼워 보이는 담요를 꺼내어 쫙 펼치더니 훌륭한 솜씨로 쌍둥이 유아차 위를 가지런히 덮었다. 그리곤 유아차를 양손에 꽉 쥐었고 그다음엔, 그다음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장대비 속으로 뛰쳐 들어갔다. 마치 그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처럼 정직하고도 일정한 보폭으로 달려갔다.       



 “아...” 여기저기서 작은 탄식이 들려왔다. 내가 낸 소리는 아니지만 내가 낸 소리인 줄 알았다. 달리는 모습이 전문 달리기 선수처럼 너무나 멋졌지만 이 날씨에는 달리면 안 되었다. 방금 막 약봉지를 타온 아픈 아이들을 데리고 빗속 달리기는 더더욱. 나는 적어도 그녀가 혼자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너무 어렸고 또 두 명이었고 또 비가 왔으니까. 그 엄마가 입고 있던 검정 치마 끝자락이 펄럭이며 사라지던 그 순간까지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얌전히 잘 누워있던 두 아이의 칭얼거림이 빗속 저 멀리서 들려왔다. 내 머릿속은 온통 무표정 엄마의 뒷 이야기로 가득 찼다.      


 엄마는 어디로 달려갔을까. 그쪽은 주택가도 아니고 아파트도 없는데. 혹시 도롯가에 주차를 해놓았을까. 부다 비를 맞지 않아도 되는 곳에 주차를 해두었기를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두 아이를 유아차에서 꺼내 카시트에 태워야 하는 그 수고로움을 빗속에서 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빗물과 함께 눈물을 흘려버리지 않는 상황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쌍둥이를 키운다면, 돌이 갓 지난 두 아이가 아프다면, 적어도 동행자가 한 명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함께 올 사람이 없었을까. 외로운 엄마일까. 적어도 평소에는 그녀를 도우는 손길이 항상 있었는데 그날만 혼자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를. 아이들이 많이 아프지 않고 주말을 건너갔기를.           


나는 요즘도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그 엄마가 생각난다. 유아차를 손에 쥐고 뜀박질을 시작하던 그 순간이 슬로모션으로 펼쳐지며 옅은 우울감이 나를 치고 들어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 태어나는 머리카락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