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나의 감정에 대하여
서은국 교수는 “행복은 생존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했을 때 인간이 보상으로 느끼는 쾌락”이라 정의했다.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현학적으로 표현한 덕분에, 행복이 대단히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이해하지만 서은국 교수는 반대의 입장에서 의견을 펼친다.
사실 행복은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지 않아요. 인간의 생존을 위해 진화한 기능일 뿐이에요 라고
하루종일 나가서 사냥하는 일은 힘들지만, 그렇게 사냥해온 먹이를 가족들이 같이 먹는 모습을 볼 때 말도 못할 행복감을 느낀다. 그래서 내일 또 나가서 사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행복감을 원동력으로 인간은 생존해왔다.
여기서 행복의 또 다른 특징에 대해 유추할 수 있다. 행복감은 지속될 수 없다. 지속성을 가지는 행복은 목표을 위해 인간을 움직이게 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에 안주하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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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시대 인간의 목표가 “생존”이었다면, 이 시대의 목표는 조금 다르게 규정될 듯하다. 제3국이나 내전을 겪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현대 사회는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어 생명 부지를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 먹고 사는 것은 어떻게든 가능하겠지만, 내 생각엔 이젠 “남들만큼” 먹고 사는 것이 문제다. 사람들은 남들만큼 먹고 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목표 자체가 비교를 전제로 하기에 너무나도 상대적이고, 처한 환경, 속한 집단에 따라 변화무쌍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현대인의 행복은 무 자르듯 명확하지 않다. 알랭 드 보통은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인의 불안이 증폭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각설하고 목표는 달라졌지만 행복의 본질은 동일하다. 달성하기 쉽든 어렵든 간에 목표를 위해 하기 싫은 일들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계속 달릴 수 있도록 스스로를 위해 주는 당근이 “행복”이다. 이 역시 지속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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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 행복은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인간 사이의 행복은 개개인의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정의할 수 없지만, 다른 개체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느끼는 행복에 대해 정의해볼 수 있겠다. 서은국 교수는 실험 결과 두가지 항목에서 모든 인간은 가장 높은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1. 관계
인류라는 종을 통틀어서 본다면 인간은 누구보다 “사회적으로 진화”한 동물이기 때문에 관계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혼자서 무언가를 할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할 때 행복감이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외향성(mbti e)이 높은 사람이 행복감을 느끼기 유리한 조건를 가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내 최애 강의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어떤 것의 가치는 그것이 들어냈을 때 알 수 있는데, 삶의 가치는 삶이 제거된 상황(죽음)에서 알 수 있다. 인간이 죽어서 남기는 것은 두가지다. 거기서부터 단서가 시작된다. 하나는 유전자이고, 두번째는 타인에게 남은 나에 대한 기억이다. 진화적으로 우리는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살아가며, 고차원적으로 우리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기억은 사후에도 누군가가 존재하고 나를 떠올려줄 때 가치가 있기에 우리의 삶은 관계에 의존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 강의는 지금도 마음에 박혀있다. “우리는 추억하기 위해 살아간다.”
2. 음식
무척이나 본능적이다. 그 어떤 행위를 해도 맛있는 걸 먹는 것만큼 짜릿하지 않다는 것이다.
종합하면 인간이 행복감을 극대화하는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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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를 충분히 쌓는다면, 남들만큼 살게 되면 그때 더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던 이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행복은 목표 달성 지점에 있지 않다.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대단한 것들이 필요하지도 않다.
도움이 되었던 자료들
- 서은국 <행복의 기원>
- 김영 <예술과 과학>
- 루비왁스 <A mindfulness guide for the frazz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