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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미 Feb 11. 2023

낙원이었나? 하와이는(2편)

출발 : 기내에서 일하는 딸을 보며

     

  겨울옷을 입고, 여름 나라로 가는 일은 번거롭다. 겨울옷을 보관해주는 곳도 있지만, 맡기고 찾는 일이 번거롭다. 난 추위를 잘 타니, 청바지 속에 두꺼운 털 스타킹을 신고, 티셔츠 위에 니트, 그 위에 짧은 패딩을 입었다. 어느 공항이든 도착하는 대로 스타킹과 니트, 패딩만 벗으면 춥거나 덥지는 않을 것이다. 남편은 더 추위를 탄다. 내복에 니트, 그 위에 폴라, 그리고 두툼한 겨울 양복을 입었다. 잠깐이니 참자! 추운 계절을 벗어나 따뜻한 곳으로 가니 이깟 불편함은 당연히 감수해야지! 쌀쌀한 날씨를 가로지르며 두 개의 트렁크를 끌고, 택시를 타고 보훈병원에서 내렸다. 9호선 전철로 김포공항에서 내려 공항철도로 환승, 아시아나항공이 있는 제1 공항 터미널로 이동했다. 환승해본 적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내린 곳(지하 4층) 맞은편이 공항철도였다. 환승 후 40분 만에 도착했다.     


  먼저 로밍부터 했다. 3만3천 원 남편과 둘이 묶어서 신청했더니, 딸과 일본서 신청한 로밍도 아직 남아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해지하고 다시 신청했다. 체크인을 위해 직원에게 문의하니, 비즈니스석 앞뒤로 나란히 있는 좌석이라고 한다. 비즈니스 라운지에 가서 간단하게 음료와 스낵을 먹고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로 들어가니, 유니폼 입은 딸이, 먼저 생긋 웃으며 우리를 맞이한다. 오늘따라 유난히 딸이 대견스러워 보인다. 비즈니스석에 앉으니 공간이 넓어 편안하다. 앞 공간에 담요와 베개, 슬리퍼가 비치되어 있고, 옆 공간에는 헤드폰과 파우치가 있었다. 파우치에는 빗, 양말, 립밤, 핸드크림, 일회용 치약이 있다. 전에 대한항공 380 비즈니스석을 이용했던 기억이 났다. 좌석도 90도 각도부터 완전히 누울 수 있도록 조절할 수 있다. 잠을 자도 편안하고, 옆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화장실을 갈 수 있다. 먼저 도쿄에 갈 때는 좁은 좌석에서 밥 먹느라 불편했다. 여덟 시간이 길게 느껴지진 않을 것 같다.     


  매니저가 편하게 식사하시라고 인사하고, 도착하면 기장님 아들과 함께 승무원 셔틀로 호텔로 함께 이동하자고 한다. 딸에게 그래도 되냐니까 예약한 택시를 얼른 취소하라고 한다. 택시비 30불이 절약되었다. 메일과 카톡으로 예약한 하나택시를 취소했다. 기내 비즈니스 담당 승무원 중 딸이 가장 막내다. 경력이 11년 되었지만, 비즈니스 담당을 하려면 경력도 있어야 하고, 시험도 패스해야 한다. 딸은 직급이 대리다. 매년 안전에 대한 시험, 외국어와 방송 시험을 치러야 한다.     

 

  고려대에서 미술 전공으로 입학한 딸은 입학 초기부터 유학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졸업이 다가오자 유학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주변에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의 전망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네가 돈을 벌어 유학 가라. 지금은 그리 전망도 좋지 않은 것 같아.”

  이 말 한마디에 딸은 군말하지 않고 마음을 바꾸었다. 사실 대학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졸업 때 총장 상도 받고, 장학금까지 받은 딸이다. 뉴욕에서 디자이너 인턴 경험도 쌓아서 장래에 대한 꿈이 많았을 것이다. 갑자기 항공사 승무원 시험에 친구와 같이 지원했다. 준비를 많이 한 친구는 떨어지고, 딸만 합격했다. 승무원 인턴 6개월 동안 성적이 우수해서 창의상도 받고, 부모 대표로 남편이 회사에서 건배사 했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때 유학을 보냈으면 이런 고생을 하진 않았을 텐데.    

 

  승객에게 식사를 서빙 할 땐 비행 중 터뷸런스로 무거운 카트에 다치는 일도 많았다. 한 번은 카트로 발목을 다쳐서 피가 흘러넘치니, 승객이 놀라서 밴드를 준 일도 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어도 걱정할까 봐 내게 말도 하지 않았다. 뜨거운 물에 화상 입은 일도 종종 있었다. 짐 올리는 칸에 승객들 트렁크와 소지품을 번쩍번쩍 들어 올리고, 식사 주문을 받으려 고객에게 무릎을 굽히는 딸을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      


  기내에서 특별한 일이 없기에 식사는 승객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코스별로 빵, 컬리플라워 크림 스프, 블랙 트러플 안심스테이크, 닭 다리 살 구이, 구운 연어요리, 치즈까지 거한 저녁 식사가 나온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얼마 되지 않아 또 아침 식사가 나온다. 아침 식사는 프렌치토스트, 송이 죽, 오믈렛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데 나는 오믈렛으로 신청했다. 8시간 비행에 두 번 식사하니 밥 먹다 보면 도착이다. 게다가 라면이나 샌드위치를 신청하는 사람도 있으니 승무원 쉴 틈이 없다. 딸은 ‘늘 무릎으로 기어서 번 돈’으로 샀다며 비행이 끝나면 엄마에게 스카프며 화장품을 선물해 주었다. 짠하다.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래도 딸 앞에서 엄마의 이런 심정을 나타내지 않으려 애썼다.

  ‘ 굳이 무릎까지 구부려 식사 신청을 받아야 하나? ’

  ‘ 무슨 코스 요리가 이렇게 많아? 승무원들 힘들게.’      


  딸은 자신이 근무하는 모습을 한 번도 찍지 못했다면서, 자신의 휴대전화로 일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책임감에 딸이 갤리에서 나와 움직일 때마다 찍었다. 선배와 일할 때는 초상권으로 찍지 못했다. 제주도를 갈 때 멀미한 기억이 있어서 멀미약을 챙겨 먹었다. 그래서일까? 감기는 눈꺼풀은 어쩔 수 없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담요를 덮고 잠이 들었다. 잠이 들만하면 딸이 후식이 나왔다고 깨우고,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깨웠다. 사실 딸이 밤새워 일하는데 편히 잠든다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이것저것 영화 채널을 돌리다가 ‘에덴의 동쪽’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비즈니스 좌석에 제공된 이어폰이라 그런지 생생한 영어가 귀에 쏙 들어온다. 제임스 딘의 목소리를 듣는 게 생소했다. 그의 음성이 좀 더 달콤할 거라 기대했나 보다. 근무 중 계속 엄마와 아빠를 신경 쓰는 딸이 안쓰럽다. 다음 날은 쉬지도 못하고 거북이 투어를 함께 하고, 그다음 날은 출국 비행이다.      


  딸이 남편과 나를 불러 기내에서 사진을 함께 찍었다. 딸은 신혼인데, 올해 아이를 가질 계획이라 휴직을 생각하고 있다. 엄마와 아빠에게 효도 티켓으로 여행 기회도 주고 가진 베네핏을 어떻게든 활용하여서 베풀고 싶었나 보다. 며칠 전 일본 여행도 그런 맥락에서 3박 4일을 함께 다녀왔다. 나와는 함께 다니지 못했지만 나보다 일찍 퇴직한 남편과는 여러 해 동안 스페인, 파리, 일본, 제주 등을 여행했었다. 회사에서 아빠와 함께 여행하는 딸이 신기한지 효녀라고 소문이 자자하게 났다.      


  드디어 도착, 착륙하자마자 기장님 아들을 먼저 셔틀버스에 태우고 함께 입국 장소로 이동했다. 아주 활달한 중학생이다. 박물관을 아빠와 가기로 했단다. 입국 심사는 하와이에 얼마간 있냐는 간단한 질문으로 마쳤다. 옆 심사대의 여자는 굉장히 오래 걸렸는데, 나중에 듣기로 돈을 얼마나 가져왔냐는 둥 아주 세부적인 것을 물었다고 한다. 짐을 찾고 옷을 대충 벗어 가방에 넣고 공항을 나왔다. 후덥지근할 줄 알았는데, 상쾌한 공기가 나를 맞았다. 드디어 하와이다. 푸른 나뭇잎이 가벼운 아침 바람에 넘실댄다. 기장님 아들과 함께 승무원 일행을 기다리는데, 딸의 전화가 왔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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